초곡재의 처녀귀신 곡성설화 / 설화
곡성군 겸면 괴정마을에는 마을의 상징인 400여 년 묵은 느티나무가 있다.
그래서 괴정마을이라 부른다. 괴정마을에서 초곡마을로 넘어가는 고개가 초곡재다.
일제강점기 때 일이다.
어떤 총각이 괴정마을에서 초곡마을로 넘어가는데 급하게 가다보니 소변이 마려웠다. 그래서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서 숲길 은밀한 곳으로 들어가 소변을 보았다. 얼마나 참았는지 한참을 소변을 보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없었는데 누굴까 생각하며 뒤돌아보던 총각은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머리를 풀어헤친 처녀귀신이 서있었기 때문이다.
바지춤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걸음아 나살려라 하고 달아난 총각은 숨이 다 넘어간 상태로 다시 괴정마을로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이 총각에게 무슨 일이냐 물었지만 반은 넋이 나간 총각은 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한참을 멍하니 있던 총각이 그때서야 정신을 차린 듯 마을 사람들에게 처녀귀신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마을 사람 가운데 한 명이 피식 웃으며 반박하였다.
“아니,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단 말이야! 그것도 백주 대낮에 귀신이 나타났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그러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말이 맞다며 총각이 헛것을 보았다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분명히 귀신을 보았는데도 아무도 믿지 않자 총각은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분명하다니까요?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리고 고개를 넘지도 않고 다시 돌아와 거짓말을 한단 말이에요?”
그러자 다시 마을 사람들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그 말도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실없는 거짓말을 하기 위해 멀쩡하게 넘던 고개를 다시 돌아왔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때 마을 어르신 가운데 한분이 다가오더니 말씀하셨다.
“그럴 수도 있지. 옛날부터 초곡재에 처녀귀신이 나타난다는 말이 있어.”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 괴정마을에 수연이라는 낭자가 살고 있었다.
그다지 예쁜 얼굴은 아니었지만 마음씨가 고운 수연이는 동네 총각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수연이는 재 너머 초곡마을에 사는 석동이라는 도령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지난 해 가을, 곡성 고을에 남사당패가 들어와 온 고을 사람들이 모여 한바탕 잔치가 벌어졌을 때 수연과 석동은 우연히 만나 사랑을 꽃피우게 되었다.
그런데 양반 댁 자제였던 석동과는 달리 평범한 집안의 딸이었던 수연이를 석동 도령 집에서 반대하였다.
“수연 낭자, 비록 집에서 반대를 하지만 내 마음은 변치 않을 것이오.”
내심 불안해하는 수연 낭자에게 석동 도령은 다짐을 하듯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수연낭자는 그런 석동이 미더웠는지 석동 도령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석동 도령은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맞선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집안에서 반대를 해도 영원히 변치 않을 것 같았던 석동이가 제법 지체 높은 양반 댁 규수와 맞선을 보고는 마음이 달라졌다. 점차 수연이를 멀리 하더니 급기야 혼인을 한다는 것이다.
수연 낭자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만나자고 석동 도령에게 기별을 하였다. 늘 만나던 초곡재에서 두 사람이 만났다. 그런데 평소에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나눴던 은밀한 곳이 아니라 석동 도령은 길가에서 수연 낭자를 기다렸다.
“도련님, 맞선을 본 것까지는 좋은데, 혼인을 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인가요? 헛소문이죠? 그런 일 없죠?”
계속되는 수연 낭자의 추궁에도 석동 도령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차라리 변명이라도 하지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석동 도령을 바라보는 수연 낭자의 눈에는 벌써 눈물이 고였다. 그러자 갑자기 석동 도령이 소변 좀 보고 온다며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석동 도령은 난처했는지 소변을 본다는 핑계로 자리를 피하고는 그길로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도령이 돌아오지 않자 수연 낭자는 맥이 빠져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한참을 망연자실한 채 앉아 있던 수연 낭자는 초곡재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수연 낭자가 실연을 당하고 목숨을 버린 뒤로 초곡재에서 처녀귀신을 보았다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연 낭자의 원혼이 처녀 귀신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마을 어귀에 느티나무를 심고 그 느티나무 앞에서 수연 낭자의 원혼을 달래는 제를 지냈다.
마을 사람들이 제를 지낸 뒤로는 처녀귀신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재를 지나는 총각이 초곡재에서 소변을 보게 되면 어김없이 처녀 귀신이 나타난다고 한다. 소변을 본다는 핑계로 도망을 친 석동 도령에 대한 한이 사무쳐서 소변을 보는 총각을 보면 수연 낭자의 원혼이 살아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초곡재를 넘으려면 반드시 소변을 보고 넘어야 한다고 한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 소장
[출처] 초곡재의 처녀귀신|작성자 월간 설화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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