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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 나도 그랬다.

淸潭 2016. 9. 11. 10:14

그 시절 그 때 그 이야기를 아시나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어렵던 그 시절

어떻게 살았는지---- 꿈만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꿈 이야기 같지만

그 시절 그 때 그 이야기는 분명 꿈 이야기가 아니었다.

한편의 구전으로 전해질 전설 같은 이야기----

그 시절 그 때 그 이야기를


“우리는 이렇게 살았단다.”


그래서 너희들이 모르는 그 가난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 너희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

가난이 다시 올까봐 겁이 나서 하는 말이다.

그 당시 어느 집 이야기다.

방 한 칸에 아버지 어머니 아이들 네댓 명

한 이불을 덮고 살았다.

초저녁에 지핀 군불이 새벽녘엔 방이 식어

온돌방이 냉방이 된다.


어머니가 그 추운 아침에 부엌의 찬기를

맞으며 아침밥을 짓는다.

방이 따뜻해진다.

아랫목으로 몰린 아이들이

서로 엉켜 잠을 자다가 눈을 감은 채 일어난다.

추운 방에서 새우잠을 자다 보니 몸의 피로가

안 풀려서 그런 것이다.

세수하고 학교에 가라는 어머니 독촉에

세수를 하는 폼이 얼굴에 물만 바른다.

막내는 대충이다.


코딱지도 떨어지지 않게 세수를 한 막내를

어머니가 다시 세수를 시킨다.

막내는 아프다고 얼굴에 붙은 때를 떼자니 아픈 것이다.

아침밥이라야 시래기 국에 묵은 김치 한가지다.

그 시절 온 식구가 한 이불속에서 살았다.

한 이불속의 정이 흠뻑 배었다.

미운 정 고운 정이--

그래서 가족의 정이 퍽도 깊었다.

슬픔도 기쁨도 함께 했던 한 이불의 정이었다.


남의 얘기냐고요?

오십 년 전만 해도 우리들의 삶이 바로 그랬다.

지금 한 이불에 한 사람-- 침대, 방 한 칸

그래서 생각도 각각이 되어 이해심도 없다.

지금도 그 어려운 시절을 생각을 해보면

그 시절로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없지만

그 티 없는 가족의 정을 생각하면 금방이라도

되돌아가고 싶어진다.

가족의 따뜻한 정이 그립다.


그 시절 그 때 고생스럽던 이야기는 잊혀지고

그래도 그 때 그 시절 그 이야기가 듣고 싶어진다.

함께 고생을 나누었던 그 때 그 시절 그 사람들이

마냥 그립기만 하다, 그립다.

1970년대까지도

우리 삶이 그랬지--

그 시절 웃지 못 할 이야기 한편 할까~!

이 이야기는 음담이 아니며 유머도 아니다.


어느 가난한집 부부, 열 살, 일곱 살, 다섯 살, 세 살

아이 넷 부부 여섯 가족이 한방에 한 이불에서 살았지--

그 부부도 거사를 하고 살아야지--

그 거사를 하면서 아버지가 하는 말이 “좋아? 좋아?”

물었더래--

이불이 들썩 거리니 바람이 이불속으로--

눈감고 부모의 낌새를 눈치 챈

일곱 살 아들 녀석이 한마디

“엄마 빨리 좋다고 해버려, 추워 죽겠구만!!!”

어려운 그 시절

민초들의 삶이 그랬더래

바로 이 삶이 흙수저 삶인 것을


요즘 방송에 장관 청문회에서 호되게 당한

장관 후보자, 나도 흙수저 출신이었다고

증권 매니저 20억 부자가

자기도 웨이터, 별별일 다해서

흙수저 출신이라고--

이 사람들아~ 자네들은 흙수저 출신이 아닐세~!

금년 여름 지독했던 더위,

아들은 에어컨을 켜면

아이들 눈치 보던 아버지는 에어컨을 끈다.

아버지라고 덥지 않겠는가?

아버지는 전기세, 그놈 때문에--

왜~ 그 시절 고생을-- 참는 것으로

대신 했기에--


<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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