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 저 일을 생각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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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제명 작사‧작곡의 <고향생각>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달만 바라보니 외롭기 한이 없다 내 동무 어디 두고 이 홀로 앉아서 이 일 저 일을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 모든 노인에게는 바라볼 미래도 없고 돌아볼 과거만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닙니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나 눈을 감은 채 누워있으면 이 일 저 일이 저절로 생각납니다. 일제시대에도 평양에 전차가 있었고 노선은 하나, 어느 날 무슨 일로 그 전차를 탔는데 만원이었습니다. 어느 아주머니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학생, 왜 이렇게 나를 밀어요!” 거기에는 평양농업학교 모자를 쓴 상급생으로 보이는 능청맞게 생긴 학생이 서 있었습니다. 그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아주머니, 아주머니가 젊고 예쁜 여자도 아닌데 왜 제가 아주머니를 밀겠습니까?” 그 말을 큰소리로 하니까 전차 안에는 폭소가 터지고 그 아주머니는 매우 무안한 표정으로 아무런 댓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 장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 같은 전차에서 내가 국민학교 시절에 흠모하던 서문여고 교복 입은 전죽자(全竹子)의 얼굴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와 나는 상수국민학교의 같은 학년이었고 한 반 뿐이던 여학생 반에서 소문이 날 만큼 예쁘고 공부 잘 하는 아이였습니다. 나는 그를 보고 인사도 못하고 얼굴만 붉혔던 그 추억이 새롭습니다. 그 사람도 38선을 넘어 월남했는데 무슨 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들었습니다. 또 한 여학생 박정희(朴貞姬)도 전죽자와 같은 반이었는데 5학년 때 학예회를 할 때 ‘백호대’(白虎隊)라는 일본사극의 나는 남자 주연이었고 정희는 여자 주인공이었습니다. 여러 해 전에 KBS TV에서 정희는 서울 여의전(女醫專)에 다니다 이대(梨大) 음악과로 옮겨 피아노를 전공했는데 일찍 미국유학을 가서 서양남자와 결혼해 산다는 말만 들었었는데 KBS는 그 박정희를 수소문해서 마침내 찾았습니다. 그의 딸은 “엄마, 이번 기회에 서울에 가 봐”라고 권했지만 정희는 KBS의 섭외를,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거절하여 나는 정희를 다시 보지 못했고 ‘TV는 사랑을 싣고’ 뜨지 못하였습니다. 별의별 일이 다 생각나는 한 노인의 아름다운 새벽입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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