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훤칠한 선비를 보고도 잠자리 생각을

淸潭 2016. 8. 25. 10:19

조선 성종 때의 문신. 학자(1439~1504). 성현(成俔) ()

용재총화(慵齋叢話) 5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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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군(李將軍)이 있었는데, 젊고 훤칠하여 풍채가 옥과 같았다.

그가 하루는 말을 타고 큰길을 지나가는데 길거리에 22, 3세쯤 되어 보이는 매우 아름다운 여자가 계집종 두어 명을 거느리고 장님에게 점을 치고 있었다. 장군이 눈짓을 하니 그녀 또한 장군의 풍모를 사모하는 듯이 서로 눈을 떼지 않았다. 장군이 졸병에게 그녀의 가는 곳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녀는 점치기를 마치더니 말을 타고 계집종을 거느리고 남문으로 들어가 사제동(沙堤洞)으로 향하였다. 그 집은 동네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큰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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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장군이 사제동에 들어가서 여염집에 출입하다가, 마침 그 동네에 사는 활공장이[弓匠]를 만났다. 장군은 무인(武人)이라 이내 서로 사귀어 나날이 이야기하고 놀면서 동네의 모든 집에 관하여 물으니 활공장이는 일일이 말하여 주었다. 장군은 또 묻기를,

저 산 기슭에 있는 큰 집은 무슨 성씨(姓氏).” 하니, 활공장이는,

재상 모공(某公)의 딸인데, 요사이 과부가 된 집이 올시다.” 하였다.

그 뒤부터는 장군이 오가는 사람을 보면 반드시 과부가 사는 집을 물었다. 하루는 한 소녀가 와서 불을 얻어 갔는데, 활공장이가,

지금 온 소녀가 과부댁 사람이니 장군은 그리 아십시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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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장군은 다시 활공장이를 찾아와서 사정을 말하고,

내가 그 여자를 사랑하여 잊을 수 없으니, 만약 그대로 인하여 성사하게 되면 사생(死生)을 그대의 명령대로 하겠소이다.” 하였다. 활공장이가 그 소녀를 불러 장군의 말을 전하고 돈과 옷감을 주었더니 소녀가 드디어 승낙하였다.

장군이 소녀에게 말하기를,

너를 매우 사랑하지만 일단 정회(情懷)가 있으니, 네가 내 청원을 들어주면 후하게 사례할 뿐만 아니라 너의 살림을 맡아 주겠다.” 하니, 소녀가, “말씀해 보십시오.” 하였다. 장군이,

요전에 내가 네 주인을 길에서 본 뒤로는 마음이 황홀하여 입맛을 잃었다.” 하니, 소녀가, “그것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하였다.

장군이, “어떻게 하느냐.” 하니, 소녀는

내일 저물녘에 우리 집 문 밖으로 오시면 제가 나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하였다. 장군이 약속한 대로 가니 소녀는 반가이 나와 맞이하여 제 방에 들이고 경계하기를, “서두르지 마시고 참고 기다리십시오.” 하며, 문을 닫고 잠가 버렸다. 장군이 두려워서 그 소녀에게 속지나 않았나 의심하였더니, 조금 있다가 안채에서 등불이 켜지고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주인 여자가 변소에 가는 모양이었다.

이때 그 소녀가 내려와서 장군을 끼고 들어가 안방에 있게 하고 다시 경계하기를, “참고 참으십시오. 참지 않으면 계획이 깨어질 것입니다.” 하므로, 장군은 캄캄한 방에 들어가 있었다.

얼마 안 되어 등불이 켜지고 떠드는 소리가 나더니 주인 여자가 들어왔는데, 계집종이 물러가자 주인 여자는 적삼을 벗고 낯을 씻고 분()을 바르니 얼굴이 옥()처럼 깨끗하였다. 장군은 생각하기를, “나를 맞으려나보다.” 하였더니, 세수하고 머리를 빗은 뒤 동()화로에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우며 술을 은주전자에 덥히기에 장군은, “내게 먹이려나보다.” 생각하고, 나가려 하다가 문득 그 소녀의 참으라고 한 말을 생각하여 적이 앉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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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조금 있다가 창문에 모래를 끼얹는 소리가 나더니 주인 여자가 일어나서 창문을 열고 한 거만한 사나이를 맞아들였다. 그 사나이는 들어서자마자 선뜻 주인 여자를 껴안고 희롱하므로, 장군은 섬뜩하여 나가려고 하였으나 도리가 없어 그냥 있으니, 조금 후에 그 사나이는 주인 여자와 나란히 앉아서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다가 모자를 벗었는데, 늠름한 까까중이었다.

장군은 그를 제지하리라 생각하고 방 속을 더듬어 긴 노끈 한 움큼을 쥐고 있다가, 중이 주인 여자와 함께 누울 때 장군이 돌출하여 노끈으로 중을 기둥에 묶어놓고 몽둥이로 마구 치니 중은 한없이 슬프게 부르짖었다.

그런 뒤 장군은 주인 여자와 한 번 즐기고 중에게 말하기를,

군중(軍中)의 신례(新禮)를 행하려 하니 네가 장만할 수 있겠느냐.” 하니, 중이, “명령대로 거행하겠습니다.” 하고, 신례(新禮)의 잔치 도구를 마련해 주었다. 그 뒤로 장군은 과부 집에 자주 왕래하고 과부 역시 장군을 사랑하여 여러 해가 되어도 변하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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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흥부원군(驪興府院君) 민공(閔公=민제.閔霽?)이 조회(朝會)에서 물러나오면 매양 이웃집에 가서 바둑을 두었다. 하루는 공이 미복(微服)하고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이 나오지 않으므로 공은 홀로 누각 위에 올라앉았었다.

어떤 녹사(綠事= 각 관아 실무행정 책임자)가 모시러 공의 집에 왔다가 공의 간 곳을 물으니 문동(門童), “공께서 외출하셨는데 가신 곳을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녹사도 새로 온 사람이라 역시 공의 얼굴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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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웃집에 가서 누각에 올라가 신을 벗고 다리를 문에다 걸치고 공에게 말하기를, “노인은 뉘십니까.” 하니, 공이,

이웃집에 사는 사람이오.” 하였다. 녹사가,

노인의 얼굴에 주름살이 많은데 어찌된 일입니까. 실로 가죽을 꿰매어 쪼그린 것이 아닌가요.” 하니, 공이,

타고난 바탕이 그런 걸 어찌하겠소.” 하였다. 녹사가 또,

노인은 글을 아십니까.” 하니 공이,

다만 성명을 기록할 정도요.” 하였다. 또 옆에 바둑판이 있기에 녹사가,

노인은 바둑을 둘 줄 아십니까.” 하니, 공이,

다만 행마(行馬)할 정도요.” 하였다. 녹사가,

그러면 한 판 두어 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하고, 드디어 바둑을 시작하여 상대하자, 공이 바둑을 들며 말하기를,

어디서 온 손님이오.” 하니 녹사는,

부원군을 뵈러 왔습니다.” 하였다. 공이,

나도 부원(府院)이 될 수 없겠소?” 하니, 녹사가,

암탉이 아직 울지 않았습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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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는 중에 조금 있다가 주인 영감이 나와서 꿇어앉아,

제가 영공(令公)께서 여기 오래 계신 줄 몰랐습니다.” 하고, 대죄(待罪)하여 마지않았다. 이에 녹사는 놀라 신을 쥐고 도망치니 공이,

이 사람은 비록 새로 들어온 향인(鄕人)이지만, 의기가 뛰어나서 보통 인물이 아니다.” 하고, 이로부터 그를 극히 후히 대접하였다.

나의 장인 안공(安公)이 임천(林川 부여(扶餘)) 군수가 되었을 때, 보광사(普光寺)에 대선사(大禪師) 아무개란 중이 있어 자주 와 뵈었다. 그 사람됨이 더불어 이야기할 만하므로 서로 친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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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은 시골 여자를 데려다 아내로 삼고 몰래 왕래하였다. 어느 날 그 중이 죽어서 뱀으로 변해 아내의 방에 들어와서, 낮에는 항아리 속에 들어 있고 밤이면 아내의 품에 들어가 그녀의 허리를 감고 머리는 가슴에 기대었는데, 꼬리 사이에 음경과 같은 혹이 있어서 그 곡진하고 정다움이 마치 전날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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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장인이 이 얘기를 듣고 그 여인에게 뱀이 든 항아리를 가져 오게 하여 중의 이름을 부르니 뱀이 머리를 내밀었다. 장인이 꾸짖기를,

아내를 그리워하여 뱀이 되었으니 중의 도()가 과연 이와 같으냐.” 하니, 뱀이 머리를 움츠리고 들어갔다.

나의 장인은 몰래 사람을 시켜 조그만 함을 만들게 하고 그 아내에게 뱀을 꾀어 말하게 하기를,

군수님이 그대에게 새 함을 주어 몸을 편안하게 하여 줄 것이니 빨리 나와요.” 하며, 치마를 함 속에 펴주니 뱀이 항아리에서 나와 함 속에 옮겨 누우므로, 건강한 아전 두어 명이 뚜껑을 덮고 못을 박으니, 뱀이 날뛰고 뒹굴며 나오려 했으나 나오지 못하였다.

또 명정(名旌)에 중의 이름을 써서 앞을 인도하고, 중의 무리 수십 명이 북과 바리때를 울리고 불경을 외며 따라가서 강물에 띄워 보냈는데, 그 후 그 아내는 아무 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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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령이 슬하에 여러 딸을 두었는데, 어느 날 문무백관들이 위의(威儀)를 갖추고 조서(詔書)를 맞이하게 되자, 남녀들이 물밀듯이 모여들어 구경하는데, 윤공의 딸들도 역시 화장을 하고 가보려 했다.

공은 딸들을 불러 세우고 가르쳐 달래기를,

너희들이 구경하는 것은 좋으나 내가 한마디 할 말이 있으니 들어봐라. 옛날에 어떤 임금이 8척이나 되는 나무를 뜰에 심어놓고 이것을 뽑을 사람을 모집하기를, ‘이 나무를 뽑으면 천금을 주겠노라.’ 하였더니, 조정의 모든 벼슬아치 중 힘센 사람들도 모두 뽑지 못하였다.

술사(術師)가 말하기를,

정녀(貞女)는 뽑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여, 이때에 성중의 부녀자들을 뜰에 모았는데, 어떤 사람은 바라다보고 달아나고 어떤 사람은 만져보고 물러가곤 하였다.

그런데 이때 한 여자가 스스로, ‘정절(貞節)이 있습니다.’ 하고, 그 나무를 어루만졌는데 움직이기는 하였으나 넘어뜨리지는 못하였다. 여자가 하늘을 우러러 맹세하여 말하기를,

평생의 절조를 하늘이 아는 바인데 이제 이미 이와 같으니 죽는 것보다 못합니다.’ 하더니, 울음을 그칠 줄 몰랐다. 술사가,

비록 숨길 행실은 없으나 반드시 그 외모를 사모하여 잊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오.’ 하니, 여자는 문득 깨닫고 말하기를,

그러합니다. 어느 날 문에 기대어 서 있을 때 한 선비가 화살을 허리에 차고 말을 타고 지나갔었는데, 눈은 가늘고 눈썹은 길어 아름다운 모습이 뛰어났기에, 저 선비의 아내 되는 사람은 참으로 복 있는 사람이리라고 생각한 일이 있을 뿐, 이 밖에는 조금도 사사로운 정이라곤 없습니다.’ 하였다. 그때 술사가, ‘이것으로도 넉넉히 이 나무를 뽑지 못하는 연유에 해당합니다.’ 하므로 그 여자는 다시 경건한 마음으로 맹세하고 나아가 드디어 나무를 뽑아낸 일이 있었다는데, 이제 너희들이 만약 훤칠한 선비를 보고도 잠자리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있겠느냐.” 하니, 딸들이 결국 가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