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상제도 원상제도는 세조가 죽기 전에 예종 의 원만한 정사 운영을 위해 마련한 것으로 신하들에 의한 섭정 제도 였다. 왕이 지명한 원로 중신들이 승정 원에 상시 출근해 모든 국정 을 상의해서 서무를 의결하고, 왕은 형식적인 결재만 하는 제도였기 때문이다. 세조가 원상으로 지목한 세 중신은 한명회, 신숙주, 구치 관 등 측근 세력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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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의 짧은 치세 1468년에 유자광의 계략으로 '남이 의 역모 사건'이 발생하자 남이를 비롯하여 강순, 조경치, 변영수, 문 효량, 고복로, 오치권, 박자 하 등을 처형시켰으며, 이듬 해에는 삼포 에서 왜와의 개별 무역을 금지하였다. 또한 그 해 6월에는 각 도에 있 는 둔 전(병영에 예속된 전답)을 일반 농민이 경작할 수 있도록 했 다. 그리고 9월에 최항 등이 '경국대전'을 찬진했으나 반포하지 못하 고 2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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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순왕후 한씨 예종의 정비 장순왕후 한씨는 영의 정 한명회와 부인 민씨의 큰 딸이다. 성종의 비 공혜왕후의 친언니로 동시에 촌 수로는 그녀의 시숙모가 되는 셈이다. 그녀는 1460년에 당 시 세자로 책봉되어 있던 예종과 가례하여 세자빈에 책봉되었으나, 이 듬 해 원손 인성대군을 낳 고 건강이 악화되어 17세의 나이로 요절했 다. 그 후 1472년(성종3년)에 장순왕후에 추존되었다. 능은 공릉으로 경기도 파주에 있다. 공릉은 조성 당시 세자빈묘로 만들어졌기 때문 에 난간은 없고, 봉분 앞에 장명등과 혼유석만 놓여 있으며, 능 앞 양 쪽에 문석과 석마를 세우고 석양과 석호가 추가로 설치되어 능을 호위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안순왕후 한씨
안순왕후 한씨는 청주부원군 한백륜 의 딸이며, 1460년 한명회의 딸이었던 세자빈이 병사하자 1462년 예종 과 가례를 올려 세자빈에 책봉되었다. 그리고 1468년 예종이 즉위하 자 왕비에 책봉되었으나, 이듬해 예종이 병사했기 때문에 1 471년 인 혜대비에 봉해졌다. 그러다가 1497년(연산군3년)에 다시 명의대비로 개봉되었으며 그 이듬 해 죽었다. 그녀 의 소생으로는 제안대군과 현 숙공주가 있으며, 제안대군의 효성이 지극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 다. 그녀의 능은 창 릉으로 예종과 함께 경기도 고양시 서오릉 묘역 에 합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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