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근목피(草根木皮)]도 없어서 굶었던 시절 41년생의 지난 날 이야기
2015.10.31.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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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이 군대 노무자로 징용을 간 후 그해 겨울과 봄에 우리 가족 모친과 어린 여동생 둘이는 극심한 춘궁기(春窮期)를 살아 나가야 했다. 「보릿고개」라고도 불리는 계절이다.
그 해 흉년이 들었기 때문에 얼마 안 되는 곡식과 이삭을 주어서 모아 두었던 먹을거리는 겨울이 되면서 일찍 떨어져 버렸고, 봄이 올 때까지 두어 달 동안은 끼니를 때울 수가 없게 되었다.
추운 겨울이어서 [초근목피]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그야말로 굶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배 고품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얻어먹을 수밖에 없었다.
모친과 나는 아침마다 나가서 밥 등 먹을거리를 얻어 와서 동생과 함께 끼니를 해결하는 것을 여러 날 했다. 나는 가까운 동네로 다녔고 읍내에 아는 사람이 많은 모친은 고개 넘어 다른 동네로 갔다. 친척집 친구집 등 나를 알만한 집을 피해 다니느라 신경을 많이 썼었다. 이렇게 해도 굶는 끼니가 더 많았고, 모친은 부황증까지 걸렸었다. 설 명절과 정월 보름 명절에는 제사를 지내고나서 제사 음식을 골고루 조금씩 모아서 대문밖에 내 놓는 음식(맺밥)도 걷어 와서 끼니를 해결했다.
지독하게 어려운 겨울을 이렇게 이겨내고 날씨가 풀리는 봄이 오고 들녘에 푸른 싹이 나면서는 초근목피로나마 끼니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초근(草根)으로는 봄이 되면 들녘에 나가서 나생이를 뿌리까지 캐서 익혀 먹고, 산에 있는 칡뿌리 도라지뿌리 더덕을 캐다가 삶거나 날것으로 먹었다. 목피(木皮)로는 소나무 겉껍질을 벗기면 그 속에서 나오는 부드러운 속껍질을 먹는 것이다. 밭에서 경작하는 보리의 부드러운 싹과 들녘 언덕에 있는 쑥을 뜯어다가 방앗간에서 제일 나중에 나오는 부드러운 쌀겨를 섞어서 죽을 쑤어먹었다.
밭에 있는 솜을 만드는 목화의 꽃송이가 피기 전 부드러운 속을 까먹기도 하고, 산에 피는 진달래꽃잎을 따서 먹으면서 허기를 달래기도 했다. 섬이어서 바닷가에 나가서 해조류를 뜯어 와서 익혀서 먹기도 하면서, 이렇게 먹을거리를 만들어서 굶주림을 해결하면서 보릿고개를 넘기는 그런 때였다.
요즈음 아프리카 국가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많은 어린이들 사진을 길거리에 전시해 놓고 구호의 손길을 구하는 행사를 자주 본다. 이 사진 속 어린이 모습은 골격이 드러나 앙상하고 배만 불룩하다. 두 눈은 더욱 커 보인다. 이런 사진을 볼 때마다 그때의 어린 동생들 모습이 이 아프리카 난민들의 어린이 사진과 꼭 같았었지,하는 옛날 생각이 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춘궁기를 겪으면서 자란 1950년대 나의 10대 시절이었다.
70여년의 내 생애에 이렇게 끼니를 굶었던 어려웠던 어린 시절과 지금의 풍요를 비교해 보면 정말로 짧은 세월에 경제발전을 이뤄낸 것은 우리 민족의 큰 자부심이고 자랑스러운 힘인 것이다.
지금의 [초근목피]는 건강식품으로 이 용어가 쓰이고 있는 세상이다.
부르면 옛날 배고팠던 생각이 나는「찔레꽃」이라는 노래가 있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요.
배고플때 하나씩 따 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밤 깊어 어두운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아프게 내려오시네.
밤마다 꾸는 꿈은 하얀 엄마꿈
산등성이 너머로 넘어오시네.
[출처] [초근목피(草根木皮)]도 없어서 굶었던 시절|작성자 아침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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