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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통장

淸潭 2016. 6. 5. 10:32

“민연아 빨리 일어나... 학교가야지”

“왜 지금 깨웠어! 아, 짜증 나!!!

 

“미안해... 엄마가 몸이 좀 안 좋아서...”

“아씨... 또 감기야?

그놈의 감기는 시도 때도 없이 걸려?!”

 

“늦게 깨워서 미안해 자... 여기 도시락”

“됐어! 나 지각하겠어! 갈게”

 

도시락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그대로 집을 나섰다.

뛰어가면서 살짝 뒤를 돌아보니

엄마는 떨어진 도시락을 주워 담고 있었다.

 

평소보다 엄마의 얼굴이 안 좋아 보였다.

뭐... 엄마가 아픈 건 늘 있던 일이기에

신경 쓰지 않고 다시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서 다음 주에 수학여행을 간다고 했다.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고

가난한 우리 집과 엄마도

잠시 동안 잊고 싶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서

누워있는 엄마를 보자

인상이 찌푸려졌다.

 

“민연아 왔어...?”

“엄마! 나 다음 주에 수학여행이야”

“어... 수학여행...? 얼만데...?

 

엄만 돈부터 물어봤다.

사실 나도 우리 집 형편 때문에 가야될지

말아야 될지 고민하고 있었다.

 

“8만 원”

“8, 8만 원씩이나...?”

“8만 원도 없어?! 우리가 무슨 생 거지야!?”

 

식구는 엄마와 나뿐이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가난이 너무 싫었고

가난한 엄마도 싫었다.

 

엄마는 잠시 한숨을 쉬더니

장롱서랍에서 통장을 꺼냈다.

 

“여기... 여기서 8만 원 빼가”

 

난 고맙다는 말도 없이

당장 시내은행으로 달려갔다.

통장을 펴보니

100만 원이 들어있었다.

이걸 여태 왜 안 쓰고 있었는지...

 

8만 원을 인출하고 92만 원이 남았다.

아직 많이 남았기 때문에 더 써도 될 것 같았다.

갑자기 반 애들이 가지고 있는 핸드폰이 생각나서

통장에서 40만 원을 빼서

최신형 핸드폰을 샀다.

 

즐거웠다.

난생처음 맛보는 즐거움과 짜릿함이었다.

핸드폰을 가지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남은 돈을 다 인출해서

요즘 유행하는 예쁜 옷을 사고

엄마가 잘라준 촌스러운 머리를 바꾸고

수학여행에 필요한 물건을

무조건 닥치는 대로 고르고 샀다.

 

그리고 지긋지긋한 집에 가니

엄마가 또 누워있었다.

 

내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일어난

엄마에게 통장을 건네자

잔액은 살피지도 않고

바로 장롱서랍 속에 넣었다.

 

기다리던 수학여행 날이 되고

친구들은 쫙 빼입고 온 나를 부러워했다.

 

수학여행 날만큼은

엄마와 가난, 그리고

집 생각을 하지 않아서 좋았다.

 

수학여행이 끝나고...

2박 3일이 어쩜 그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또다시 그 지긋지긋한 구덩이를 들어가야 한다...

 

“나왔어!”

 

“................”

 

집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나왔다니까!?”

“................”

 

신경질이 나서 짜증이 나서 문을 쾅 여니

엄마가 자고 있었다.

내가 오면 웃으며 인사 받던 엄마가

딸이 왔는데도 인사도 안 받고 잠만 자고 있다.

 

‘혹시 내가 돈 많이 썼다는 거 알고 화난 걸까?

쳇... 어차피 내가 이기는데 뭐’

 

엄마를 깨우려고 흔드는데

엄마가 차가웠다.

 

갑자기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미친 듯이 마구 흔들어 깨워보려 해도

엄마는 눈을 뜨지 않았다.

 

얼른 장롱서랍에서 통장을 꺼내

엄마의 눈에 가져다 대고 울부짖었다.

 

“엄마!

나 다신 이런 짓 안 할게

안 할 테니까 제발 눈 좀 떠!!”

 

그런데 통장에서 무언가가 툭 떨어져

조심스럽게 펼쳐보았다.

엄마가 쓴 편지였다.

 

...............................................................

 

사랑하는 딸 민연이에게

 

내 딸 민연아...

엄마가 미웠지?

가난이 죽도록 싫었지?

 

미안해...

 

이 엄마가 배운 것도 없고 가난해서

너한테 줄 거라고는 이 작은 사랑

쓸모없는 몸뚱이 밖에 없었어.

 

엄마가 병에 걸려서

먼저 이렇게 가서 미안해...

 

실은 수술하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대

근데 돈이 어마어마하더라.

 

그래서 그까짓 수술 안하면

우리 민연이 사고 싶은 거 다 살 수 있으니까

엄마가 수술 포기한다고 했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악화되어서

이젠 몇 달 안 남았네.

 

우리 딸

이 못난 나를

엄마라고 생각해줘서 너무 고마워

 

엄마가 민연이 제일 사랑하는 거 알지?

 

우리 민연아

사랑해.

 

-엄마

 

추신:

옷장 속에 잘 찾아봐

밑에 서랍에 통장 하나 더 있을 거야

엄마가 너 몰래 일해가면서

틈틈이 모은 2000만 원이야.

 

우리 민연이...

이제 가난 걱정 안하고 살아서 좋겠네.

 

......................................................................

 

편안하게 눈을 감고 있는 엄마를 보니

자신이 너무 미웠다.

 

그동안 엄마를 미워했던 것보다 100배

아니 1000배

정말 끝도 없이 자신이 미워지고 비참했다...

 

“왜 나같이 못난 딸을 사랑 했어

어...?

 

내가 펑펑 쓴 그 돈 수술비...

왜 진작 말 안 했어... 어...?

왜 말 안 한 거야.

 

엄마가 정성껏 싸준 도시락도 내팽개쳤는데

엄마한테 신경질 내고 짜증 부렸는데...

 

엄마 너무너무 미워했는데

그렇게 밉고 나쁜 딸을 왜 사랑한 거냐고

엄마 바보야?

왜 날 사랑했어... 왜... 왜...

 

이젠 그렇게 보기 싫었던

누워있는 엄마 모습조차 볼 수 없겠네.

엄마가 싸준 도시락도 못 먹고...

 

맨날 깨워주던 엄마 목소리를 못들을 거 아냐.

 

엄마가 다시 한 번 살아나면...

하느님이 진짜 다시 한 번

나한테 기회를 주신다면 나...

 

그땐 엄마한테 잘해 줄 자신 있는데

그럴 수 있는데...

 

미안해

정말 미안해

미안해...

 

엄마 사랑해!!!”

 

<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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