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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연평해전 13주년을 맞아 유도탄고속함 해상기동훈련이 지난 27일 서해상에서 실시됐다. 훈련에 참가한 박동혁함 장병들이 해상에 헌화하고 있다. 해군은 오늘(29일) 경기도 평택 2함대사령부에서 유가족·참전장병 등과 함께 13주년 기념식을 거행한다. [사진 해군] 영화 ‘연평해전’을 관람한 최영순 중령. 제2연평해전 당시 참수리-358 경비정장이었다. [정용수 기자]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6명의 해군 용사 이름을 딴 유도탄고속함인 윤영하함·한상국함·조천형함·황도현함·서후원함·박동혁함(아래부터)이 지난 27일 서해상에서 실시된 해상기동훈련에 동시에 참가했다. 이날 훈련은 제2연평해전 13주년을 맞아 우리 해군의 NLL 및 영해 사수 의지를 다지고 북한의 도발에 대비한 작전수행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실시됐다. 해군 1함대와 2함대에 각각 세 척씩 배치돼 있는 함정들은 이날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사진 해군] 지난 26일 낮 12시30분 강원도 동해시 천곡동의 한 영화관. 영화 ‘연평해전’이 끝나자 해군 1함대 특전대대(UDT/SEAL) 대대장인 최영순(43·학군 41기) 중령이 나왔다. 그는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 당시 참수리-358정 정장(艇長·당시 대위)으로 참수리-357정과 편대를 이뤄 북한 해군 경비정(684정)과 싸웠다. 이번에 영화 ‘연평해전’의 시나리오를 감수했다. 영화 속 최윤정 대위의 실존 인물이기도 하다. 연평해전 13주년을 앞두고 그를 만나 당시 상황을 들어봤다. - 영화와 실제가 어떤가. “대부분 일치한다. 내가 여자 대위(최 대위)로 설정된 것과 고속정장에 전입한 날짜가 연평해전 직전이라는 점은 사실과 다르다. 영하(해전 당시 전사한 고 윤영하 소령)와 나는 2001년 1월에 고속정장이 돼 임기를 마치기 직전이었다. 거의 마지막 작전에서 피해를 당한 거다.” 그는 윤영하 소령과 형제처럼 지냈다고 한다. 최 중령은 “근처에 갈 때마다 윤영하 소령의 묘를 찾는데 영하의 묘비 번호가 4376이고 내 휴대전화 끝번호가 3476인 걸 보면 아마 끊을 수 없는 인연인 것 같다”고 말했다. - 영화에선 일방적으로 당하는 걸로 나온다. “북한 경비정이 오랫동안 기습공격을 준비했던 것 같다. (연평해전) 일주일여 전인 20일 북한 전마선(작은 목선)이 NLL을 넘었는데 평소보다 많은 사람(5~6명)이 타고 있었다. 길을 알려줘도 자꾸 남쪽으로 가더라. 염탐이었던 듯하다. 연평해전 당일 북한 684정이 NLL을 넘길래 영하와 차단기동을 했다. 내가 앞서서 북한 경비정을 가로질러 가는데 함정의 모든 포가 (영하가 탄) 357정을 겨냥하고 있더라. 영하가 다가오자 북 경비정의 모든 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교전 규칙 때문에 반격을 못했나. “이미 북한이 공격을 했으니 교전 상황이어서 (358정은) 바로 응사를 했다. 357정에서도 대응사격을 하더라. 그러나 무전으로 영하를 불렀는데 답하지 않았다. (정장은 경비정 지붕에서 지휘하는데 북한의) 초탄 공격에 희생당한 것 같았다. 북한이 급소를 노리고 공격한 듯하다. 북한 경비정도 문제가 생겼는지 왼쪽으로 돌더라. 그래서 따라 가면서 ‘도그 파이트’(꼬리 물기)를 하며 싸웠다. 당시 500m 정도로 너무 근접해 있어 함포(40mm) 사격이 어려웠다(함포 유효 사거리는 1㎞ 이상). 북한은 이것도 계산했던 것 같다.” 당시 윤 소령을 포함해 357정 승조원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당했다. - 357정 구조가 빨랐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북한 경비정이 (북으로 다시) 기수를 돌리는 걸 확인하고 구조에 나섰다. 전사자와 부상병들을 우리 배 갑판으로 옮겼다. 357정 부정장인 이희완 중위(현재 소령)의 오른쪽 다리가 지혈되지 않는다는 무전이 왔다. 의무병이 ‘다리에 힘줄만 붙어 있는 상황인데 잘라야 한다’고 하더라. 생명을 구하는 게 우선이라 자르라고 했다. 내 다리를 자르는 고통의 결단이었다. 구조를 마치고 기지로 돌아와 바닷물로 갑판을 청소하는데 357정 대원들의 피로 바다 주변이 핏빛으로 변했다.” 연평해전은 2002년 한국과 터키가 월드컵 4강전을 펼치는 날 발생했다. - 영화를 개봉하면서 다시 조명을 받는다. “오죽했으면 당시 전사한 한상국 중사의 부인(2005년 미국으로 이민 갔다 2008년 귀국)이 이민을 결심했겠나. 당시 월드컵에 취해 전사한 가족을 돌볼 정부와 국민은 없는 듯했고 전사자 가족들만 슬퍼한 것 같다.” 동해=정용수 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상업적 게시판 등)] ▒☞[출처] 중앙일보 |
자랑스러운 내 아들아… - 29일 경기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제2 연평해전 13주년 기념식에서 전사 장병 유가족들이 전사한 6용사의 얼굴이 새겨진 동판을 어루만지며 애도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영화 연평해전 영향으로 제2 연평해전과 6용사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고 했다. /오종찬 기자 자랑스러운 내 아들아… - 29일 경기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제2 연평해전 13주년 기념식에서 전사 장병 유가족들이 전사한 6용사의 얼굴이 새겨진 동판을 어루만지며 애도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영화 연평해전 영향으로 제2 연평해전과 6용사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고 했다. /오종찬 기자 국방장관, 추모사 첫 낭독 - 한민구(가운데) 국방장관과 정호섭(오른쪽) 해군참모총장이 29일 경기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제2 연평해전 13주년 기념식에서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국방장관으로는 처음으로 추모사를 낭독했다. /뉴시스 (사진 왼쪽부터)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6용사의 계급은 戰死후 1계급 특진 추서됐다.) 지금까지 기념식중 가장 많은 유족·정치인 등 700명 참석 영화 '연평해전'이 기폭제 "국민들이 가슴으로 알게 돼" 제2 연평해전은 올해 공식적으로 승전(勝戰)임을 인정받고 완전한 명예 회복을 이뤘다. 해전 발발 13년 만이다. 제2 연평해전은 2002년 '서해교전'으로 불리며 그 의미가 격하됐었다. 남북관계와 월드컵에 밀려 뒷전이었고 '패전'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29일 13주년 기념식에서 '승전'을 공식 선언함으로써 제2 연평해전은 제 위상을 갖추게 됐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패전이 아니었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져 명칭이 '서해교전'에서 '제2 연평해전'으로 변경됐다. 1차로 명예 회복이 된 것이다. 그 후 7년 만에 2차로 완전한 명예 회복이 이뤄졌다. 이와 같은 위상을 반영하듯 29일 경기도 평택 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제2 연평해전 13주년 기념식에는 지금까지 2함대에서 열린 연평해전 기념식 가운데 가장 많은 정치인과 각계 인사가 참석했다. 전사자 유족과 참수리 357정 승조원, 한민구 장관, 정호섭 해군참모총장은 물론이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남경필 경기도지사 등 700여명이 몰렸다. 이와 같은 위상을 반영하듯 29일 경기도 평택 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제2 연평해전 13주년 기념식에는 지금까지 2함대에서 열린 연평해전 기념식 가운데 가장 많은 정치인과 각계 인사가 참석했다. 전사자 유족과 참수리 357정 승조원, 한민구 장관, 정호섭 해군참모총장은 물론이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남경필 경기도지사 등 700여명이 몰렸다. 최근 영화 '연평해전'이 나흘 만에 누적 관객 100만명을 돌파하며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데 따른 것이었다. 행사 참석자들 사이에선 시종 영화 연평해전이 화제가 됐다. 기념식엔 영화 연평해전의 김학순 감독과 참수리 357정 갑판장 역의 배우 김하균씨, 영화의 원작이 된 소설 연평해전을 쓴 최순조씨 등도 함께했다. 한 장관은 357정 정장 고 윤영하 소령의 부친 윤두호씨 등 유족들에게 "영화가 기폭제가 돼 국민들이 가슴으로 제2 연평해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 장관은 전사한 6용사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며 "대한민국은 제2 연평해전 전사자들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윤씨는 "최근 영화 개봉 등으로 제2 연평해전이 재조명돼 의미가 있다"며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념식 후 유가족들은 제2 연평해전 전적비 뒤편에 마련된 순직 장병의 얼굴 부조상을 어루만지며 자식을 가슴에 묻은 아픔을 달랬다. 고 조천형 중사의 유가족들은 조 중사의 딸(중1)을 부조상 앞으로 이끌며 "아빠가 여기 있다. 네 아빠가…"라고 흐느껴 주위를 숙연케 했다. 조 중사의 아내 강정순씨는 "딸이 백일 때 남편이 순직했다"며 "사진으로만 보다 최근 영화 연평해전을 본 뒤 아빠를 무척 자랑스러워한다"고 했다. 이어 유가족들은 전사자의 이름으로 명명돼 2함대에 배치된 신형 미사일고속함인 윤영하함, 한상국함, 서후원함, 조천형함, 황도현함 등을 둘러봤다. 한상국함을 찾은 고 한상국 중사의 유가족들은 고인이 조타장으로 최후까지 지킨 조타실을 찾아 그의 이름이 새겨진 전투모를 쓰고 회한에 잠겼다. 한 중사의 어머니 문화순씨는 "아들이 바다와 배를 무척 좋아했다. 조타장이 된 후 그렇게 즐거워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지금도 눈물을 참고 있다. 다시는 (북한에) 당하지 마라"고 한상국함 승조원들을 격려했다. 제2 연평해전 당시 참수리 357정 부정장으로 한쪽 다리를 잃은 이희완 소령은 "영화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올해는 추모 분위기가 예년과 다른 것 같다"며 "6용사의 정신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한편 이날 육·해·공군 본부가 있는 충남 계룡대 대강당에서 열린 영화 연평해전 상영회에는 육·해·공군 참모총장을 비롯한 장병 1500여명이 몰렸다. 고 윤영하 소령의 1년 후배인 오세성 중령은 "영화의 결말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시작할 때부터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며 "같은 시대 선후배들의 외로웠던 그때 이야기에 모두 애절함을 갖고 가슴으로 흐느꼈다"고 했다. 정호섭 해군참모총장은 "이 영화를 통해 전사자들의 고귀한 희생이 재조명받고, 국민들이 기억해 준다는 것에 대해 해군은 감사할 따름"이라고 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상업적 게시판 등)] ▒☞[출처] 조선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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