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조계종

조계종, 8대 총림 운영현황

淸潭 2013. 7. 13. 19:29

조계종, 8대 총림 운영현황 등 점검

 

 

총림 사찰이란! 우리나라에서는 원래의 전통 총림으로 다섯 곳의 큰 사찰이 있으며 다섯 곳의 큰 사찰이라 하여  오대 총림(五大 叢林) 사찰이라고 하였으며, 유명 사찰이라하여 명찰(名刹)이라고 하는 것으로 5대 총림 사찰을 살펴 보면.


영축총림 : 양산 통도사
해인총림 : 합천 해인사
조계총림 : 전남 송광사
덕숭총림 : 예산 수덕사
고불총림 : 전남 백양사

 

불교계에 새로운 총림(叢林)으로 정해진 사찰

 

대한불교 조계종 제 9교구 본사인 동화사
대한불교 조계종 제 13교구 본사인 쌍계사
대한불교 조계종 제 14교구 본사인 범어사

새로운 총림으로 사격(寺格) 되었다. 

 

총림이란 뜻에서 총(叢)은 많은 수행자들이 한 곳으로 모여 있다는 뜻이며 림(林)은 그 수효가 많다는 어울림의 뜻을 수풀의 울창함으로 비유하였다. 

 

총림이란 사찰 자체에서 전문하는 수행 도량인 사원(四院)을 갖추어야 한다.

(1)참선을 전문하는 선원(禪院)

(2)경전을 전문하는 강원(講院)

(3)계율을 전문하는 율원(律院)

(4)염불을 전문하는 염불원(法堂)

의 종합 사원을 갖춘 절을 총림이라 한다. 

 

우리나라의 대찰 또는, 명찰이라 하는 삼보 사찰을 보면


불보사찰 :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 놓은 경남 양산 통도사
법보사찰 : 목판 팔만대장경을 모셔 놓은 합천 해인사
승보사찰 : 전등 16국사가 배출 되어진 전남 승주 송광사이다,


 

팔대총림 (1) 해인총림 해인사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10

가야산은 일명 우두산(牛頭山)이라고도 불리는 해동제일의 명산으로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룬 성도지 붓다가야(Buddha-kaya)의 가야에서 따온 이름이다. 신라 제40대 애장왕 3년(서기 802) 순응(順應)과 이정(利貞) 두 스님에 의해서 창건된 해인사는 고려 태조 왕건의 도움으로 크게 불사를 일으켰으며, 조선 성종 21년(서기 1490) 성종의 모후 인수대비의 도움으로 대대적인 중수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조선 숙종 21년(서기 1695)의 화재 이후 고종 8년(서기 1871)까지 176년 동안에 무려 일곱 차례의 크고 작은 화재를 당하는 피해를 입었으나 천만다행으로 장경각을 비롯한 팔만대장경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고 있으며, 지금의 큰 법당인 대적광전(大寂光殿)은 순조 18년(서기 1818)에 세워진 건물로 최근(서기 1971)에 지붕을 비롯해서 벽화, 단청 등을 대폭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해인사가 한국불교의 중심도량이 된 것은 1967년 조계종사찰 중에서 제일 먼저 총림이 되면서부터이다. '속불혜명(續佛慧命) 전법도생(傳法度生)'의 이념아래 출가수행자로 하여금 전미개오(轉迷開悟)하고 보살도를 실천하여 불국토의 실현에 이바지할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교육목표로 1955년에 문을 연 법보전문강원은 1987년 승가대학으로 승격되어 지금까지 수많은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다.


총림은 원래 강원과 선원, 율원 등을 두루 갖추어야 하지만 해인사는 선원이 그 중심이 되고 있는데, 퇴설당(堆雪堂)과 선열당(禪悅堂), 조사전(祖師殿)을 선원으로 사용하다가 지금은 동쪽 숲 속의 소림원(少林院)을 선원으로 사용하고 있고 삼선암(三仙庵)과 약수암(藥水庵), 보현암(普賢庵)은 비구니스님들의 수행처이고 원당암(願堂庵)과 용탑선원(龍塔禪院)은 재가불자들의 선방으로 이용되고 있다.


율원(律院)은 조계종 종단의 기본교육과정을 이수한 비구스님으로 하여금 율장(律藏)을 전문적으로 연구케 하여 청정(淸淨), 지계(持戒)의 기풍을 확립하고 지덕을 겸비한 율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기관으로서 해인사에서 1977년 한국불교 최초로 1년 교육과정의 율원을 개원하였고 1999년에 다시 2년 교육과정의 전문 교육기관으로 개편해서 운영중이다

 

 

 

팔대총림 (2) 영축총림 통도사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진산리 583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로 법보(法寶) 해인사, 승보(僧寶) 송광사와 함께 불보(佛寶)로 삼보사찰(三寶寺刹)의 하나이다. 646년(선덕왕 15) 자장율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의 사리(舍利)·가사(袈裟)·대장경 등을 금강계단에 봉안하고 창건한 절이다.이와 같이 불사리와 대장경이 최초로 봉안된 사찰로 창건 당시부터 매우 중요한 절이었으며 이후 신라 율종(律宗)의 근본도량이면서 신라 승단(僧團)의 중심지가 되었다.

 

절의 이름은 승려가 되려는 출가자들이 모두 금강계단에서 득도하거나 모든 법을 깨달아 일체중생을 제도한다는 뜻, 또는 산의 형세가 부처가 설법하던 인도 영취산의 모습과 통한다는 뜻에서 비롯된 것이다.영축산(靈鷲山)은 석가모니부처님이 법화경을 비롯한 수많은 경전을 설법하신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에 있는 영취산과 모양이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독수리가 날개를 편 모습과 같다고 해서 취서산(鷲棲山)이라고도 한다.

 

통도사는 국내에 백여 개소의 말사와 해외에 십여 개소의 포교당을 관장하는 대 본산으로 선원(禪院)과 강원(講院) 및 율원(律院)을 모두 갖추어 1969년 총림이 된 사찰이다.

 

 

 

팔대총림 (3) 조계총림 송광사

 

 

전남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안길 100(구.신평리12)

송광사(松廣寺)라는 절 이름에 대하여 몇 가지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송(松)의 글자를 풀면 十八公이 되고 광(廣)은 널리 편다는 뜻으로 이를 풀이하여 '열 여덟 분의 큰스님이 나와서 불법을 크게 떨칠 절'이라는 뜻이다. 또 다른 이야기는 지눌스님이 절터를 닦을 때 나무로 깎은 솔개 날렸더니 국사전 뒷등에 앉아서 '솔갱이 절'이라고 한 말이 변한 것이라는 설과 산에 소나무가 많아서 송광사라 했다는 설이 있다.


송광사는 신라 말에 혜린(慧璘)선사가 창건 길상사(吉祥寺)라 하였고 고려 때 지눌스님이 정혜결사를 위하여 9년 동안 이 곳에 머물러 있을 때 대대적인 불사를 하고 수선사(修禪寺)로 고쳤다가 다시 조계산 송광사로 바꾸었다. 그 후 수 차례의 재난과 6·25 동란으로 인해서 폐허가 되었으나 1969년 총림으로 승격 된 이후 1983년부터 1990년까지 8년 동안 계속된 불사로 지금과 같은 위용을 갖추게 되었다.

 

 

 

팔대총림 (4) 덕숭총림 수덕사

 

 

수덕사(조), 충남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20

덕숭총림(德崇叢林) 수덕사(修德寺)는 충남 예산 덕숭산에 소재하고 있는 조계종 제7교구 본사로서 백제 위덕왕(서기 554-569년) 때 숭제법사(崇濟法師)가 창건하고 통일신라 때 원효대사가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을 뿐 그 이후의 역사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구한말 경허(鏡虛)스님이 이곳에 머물면서 새로운 선풍을 일으켰으며, 만공(滿空) 스님이 이 절을 중창한 이후 선찰로서 크게 번창하였다.


고려 제25대 충렬왕 34년(서기 1308)에 건축된 이 절의 대웅전은 건축연도가 분명하게 밝혀진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축물로 국보 제49호로 지정되어 있고 관음보살의 화신이 수덕각시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절을 세운 후에 바위 속으로 들어갔다는 전설이 담긴 관음바위와 고승대덕이 수도 정진하던 정혜사(定慧寺) 능인(能仁)선원을 위시해서 만공스님이 자연암벽을 다듬어 세운 높이 25척의 거대한 관세음보살상이 있다.


그리고 절의 서쪽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견성암(見性庵)은 우리나라 최초의 비구니 선방으로 전국에서 모여든 많은 비구니스님들이 수도하고 있으며, 그 아래쪽의 환희대(歡喜臺)도 비구니스님들이 머무는 곳이다. 수덕사는 원래 마곡사의 말사였으나 1962년 조계종 제7교구 본사로 승격하였고, 근대 선풍을 진작시킨 선지종찰(禪之宗刹)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아 1984년에 총림이 된 사찰이다.

 

 

 

팔대총림 (5) 고불총림 백양사

 

 

백양사(조). 전남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26

고불총림(古佛叢林) 백양사(白羊寺)는 전남 장성군 백양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조계종 제18교구 본사로서 종정 큰스님 다섯 분이 배출된 이름난 사찰이다. 그러나 이 절의 창건연대와 연혁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전하는 것이 없고 다만 신라 때 어떤 스님이 이곳에 절을 지어 백암사라 하였다는 설과 백제 무왕 33년(서기 632)에 신라의 스님인 여환(如幻)선사가 절을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다.


창건 이후 백암사는 고려 덕종 3년(서기 1034)에 중연(中延)선사가 정토(淨土)법문을 선양하기 위해서 정토사(淨土寺)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이후 다시 백암사에서 정토사로 이름이 변경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지금의 백양사로 정착된 것은 조선 선조 8년(서기 1574) 이 절의 주지로 있던 팔원(八元)선사가 중건하면서 절 이름을 백양사로 고치고 자신의 법명을 환양(喚羊)이라 고친 이후부터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스님은 매일 법화경을 독송하였는데 그때마다 백학봉 밑에 사는 백양 한 마리가 내려와서 무릎을 꿇고 독경소리를 듣기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꿈에 그 백양이 스님의 독경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어 축생의 몸을 벗고 사람으로 환생한다고 하면서 절을 하고 물러갔는데 이상하게 생각한 스님이 뒷산을 산책하다가 백양의 시체를 발견하고 절 이름과 함께 자기의 법명도 바꾸었다고 한다.'


그러나 백양사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구한말 이후 환응(幻應)과 만암(曼庵) 두 스님에 의 대작불사가 이루어진 이후이며, 특히 만암종헌선사가 이 절의 주지로 부임한 1916년에서 1927년까지 10년여의 불사에 의해서 대찰의 모습을 갖추었고, 1947년 주변 20여 사찰이 함께 참여하여 고불총림을 이루었으나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1996년 다시 총림이 되었다.

 

 

 

팔대총림 (6) 팔공총림 동화사

이상의 두 가지 창건설 가운데 신라 흥덕왕 7년(832) 심지 대사가 중창한 시기를 사실상 창건으로 보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동화사는 창건 뒤 현재의 대가람으로 정비되기까지 여러 차례 중창과 개축이 이루어졌다.

 

동화사는 신라말인 934년 영조 靈照선사, 고려 명종 20년(1190) 지눌보조 普照국사, 고려 충렬왕 24년(1298)홍진 弘眞국사에 의해 각각 중창 중건되었다.

 

보조국사는 호국불교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동화사 중창에 크게 공헌하여 동화사와 염불암에 영정이 모셔져 있다. 또 고려 말기 대표적인 고승인 홍진 국사는 동화사를 하안소 下安所로 삼고 대규모 중창을 이루었다.

 

현재 해탈교 건너편에 국사를 기리는 부도가 남아있다. 조선 시대에는 선조 39년 (1606) 유정 惟政사명대사, 숙종 3년(1677) 상숭 尙崇대사, 영조 8년(1732) 관허 冠虛, 운구 雲丘, 낙빈 洛濱, 청월 晴月 대사 등이 각각 중창 중건하였다.

 

대웅전을 비롯하여 천태각, 영산전, 봉서루, 심검당 등 현존하는 당우들은 대부분 조선조 영조 때 중창한 건물들이다. 지난 1992년 통일약사여래석조대불의 낙성을 전후해 동화사의 많은 당우들이 새롭게 지어졌다.

 

 

 

 

 

 

 

팔대총림 (7) 쌍계총림 쌍계사

 

 

 

창건 

쌍계사는 722년(성덕왕 21)에 대비(大悲), 삼법(三法) 두 스님이 당(唐)나라에서 육조(六祖) 혜능(惠能) 스님의 정상(頂相)을 모시고 와서 옥천사(玉泉寺)로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1217년 각훈(覺訓) 스님이 지은 「육조정상동래연기(六祖頂相東來緣起)」에 의하면 운암사의 삼법(三法) 스님이 평소 육조 혜능 대사의 덕을 흠모하던 중 혜능 스님의 입적 소식을 듣고 721년(성덕왕 20) 당에 건너갔다. 마침 먼저 와 있던 경주 백률사의 스님 대비 스님을 만나 그 도움으로 육조 혜능 대사의 정상(頂相)을 얻어 귀국하였다. 두 스님은 현몽에 따라 이곳에 와서 옥천사(玉泉寺)라는 절을 짓고 정상을 봉안하였는데, 이것이 쌍계사의 전신이다.

  

연혁 

옥천사가 창건된 뒤 100여 년이 흐른 840년(문성왕 2)에 진감(眞鑑) 선사가 당에서 신감(神鑑) 선사의 법을 잇고 귀국하여 옥천사 옛터에 육조 스님의 영당(影堂)을 짖고 절을 크게 확장하였는데, 이것이 곧 지금의 쌍계사다.진감 선사는 이곳에서 불교 음악인 범패(梵唄)를 가르쳤고, 이를 배우려는 이들이 구름같이 모였다고 한다. 정강왕(재위 886~887)이 이웃한 옥천사와 같은 이름이라 하여 절 이름을 지어서 내렸는데, 절 앞으로 두 계곡이 흐른다 하여 쌍계사(雙磎寺)라 하였다.


그 뒤의 역사는 자세히 전하지 않고, 조선시대에 들어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32년(인조 10)에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 스님이 중창하였다. 그 뒤 천휘(天輝), 태균(太均), 법훈(法訓), 화악(花岳) 스님 등이 중건하였다. 근래에 와서는 고산(杲山) 스님이 지금 가람의 규모로 중창하였다

 

쌍계사는 불교 음악 범패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곳이기도 합니다. 진감국사가 중국에서 불교음악을 공부하고 돌아와 우리 민족에 맞는 범패를 만들어, 많은 범패 명인들을 배출한 교육장이 바로 팔영루입니다.

 

정면5간, 측면3간의 2층 누문인 팔영루는 쌍계사의 창건주인 진감국사가 섬진강에서 뛰노는 물고기를 보고 팔음률로써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는 불교 노래인 어산(漁山) 범패를 작곡했다고 하여 이름 지어진 누각입니다.

 

최치원이 글을 지었다는 진감선사대공탑비에는 '그가 범패를 매우 잘하여 금옥 같은 소리가 구슬프게 퍼져 나가면 상쾌하기도 하고 애절하기도 하여 능히 제천(諸天)을 기쁘게 할 만하였다'라는 대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 인가 모르지만 쌍계사에는 범패 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팔영루에서 다시 범패가 울려 퍼지기를 기다려 봅니다.

  

 

 

팔대총림 (8) 금정총림 범어사

범어사는 신라 문무왕 때(678년), 의상대사가 해동의 화엄십찰중의 하나로 창건하였다.
화엄경의 이상향인 맑고 청정하고 서로 돕고 이해하고 행복이 충만한 아름다운 삶을 지상에 실현하고자 설립된 사찰이다.
해인사 통도사와 더불어 영남의 3대 사찰인 범어사는 역사적으로 많은 고승대덕을 길러내고
도인을 배출한 수행사찰로 오랜 전통과 많은 문화재가 있는 곳이다.


범어사는 의상대사를 비롯하여 원요대사 · 표훈대덕 · 낭백선사 · 명학스님과 그대에 경허선사 · 용성선사 · 성월선사 ·
만해한용운선사 · 동산선사 등 고승들이 수행 정진하여 명실상부한 한국의 명찰로서 그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1950년대 동산스님이 불교정화운동을 주도하였고, 한국근대불교를 이끌었다.

선찰대본산은 마음을 닦는 맑은 도량이라는 뜻이다. 참선을 통해서 마음속에 일어나는 갖가지 잡념과 망상을 쉬게하고 자신의 내면세계의 참다운 불성을 깨닫게 하도록 마음을 수행하는 근본도량이라는 뜻이다.
구한말의 범어사에는 오성월스님이 범어사 주지로 소임을 보고 있을 때 성월스님은 먼저 범어사를 선찰대본산으로 명명하고 당대에 최고 고승 경허스님을 범어사 조실스님으로 초빙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 어리석은 중생의 마음을 부처님의 마음으로 변화시키는 선수행 도량이다. 양산 통도사가 불보종찰이요, 합천 해인사가 법보종찰이며, 순천 송광사는 승보종찰이다. 그러면 범어사는 그 네번째 선종본찰로서 마음의 근원을 궁구하는 수행도량이어야 한다. 이것이 선찰대본산의 의미이다

 

 

 

가져온 곳 : 
카페 >송화가족
|
글쓴이 : 송화|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