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숭총림 수덕사 |
덕숭낭자와 수덕도령의 애틋한 전설이 서려있는 수덕사(修德寺)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에 있으며, 1984년에 종합수도장을 겸비한 덕숭총림(德崇叢林)으로 승격되었다.
산과 바다가 조화를 이루고 낮은 구릉과 평탄한 들녘이 서로 이어지며, 계곡이 골마다 흘러내리는 이곳은 옛부터 소금강(小金剛)이라고 일컬어 왔다. 여기에 불조(佛祖)의 선맥(禪脈)이 면면히 계승되고 많은 고승 석덕(碩德)을 배출한 한국불교의 선지종찰(禪之宗刹) 수덕사가 자리하고 있다. 특히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어 불자들이 사시사철 줄을 잇고있다. 수덕사는 백제 위덕왕(威德王,554~597) 재위시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내 옛 절터에서 발견된 연화문와당과 평와편은 백제시대 창건설을 방증할 수 있는 자료이다. 문헌에 수덕사가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삼국유사(三國遺事)’와 ‘속고승전(續高僧傳)’으로 백제의 고승 혜현(惠現)이 수덕사에서 주석하며 <법화경(法華經)>을 지송하고 <삼론(三論)>을 강(講)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당시 수덕사의 사격(寺格)이 갖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의 수덕사는 관련 문헌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내용을 파악할 수 없으나 다행히도 충렬왕 34년(1308)에 건축된 대웅전과 통일신라말기 양식을 모방한 삼층석탑, 수덕사 출토 고려자기, 수덕사 출토 와당 등 여러 유물이 남아있어 대가람으로서 융성하였던 면모를 볼 수 있다. 16세기 전반에 편찬된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권19 ‘덕산현(德山縣) 불우조(佛宇條)’에 덕숭산내에는 취적루와 불운루의 2개의 누각이 있다. ‘재덕숭산 사유취적불운이루(在德崇山 寺有翠積拂雲二樓)’라는 기록으로 보아 당시 수덕사는 대웅전 이외에 2개의 누각이 있을 만큼 대가람의 면모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으로 대부분의 가람이 소실되었으나 수덕사 대웅전은 다행히 옛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1937~40년 보수 당시 발견된 대웅전 동측 내부 전면에 기록된 ‘단청개칠기(丹靑改漆記)’에 의하면 중종 23년(1528)에 대웅전 색채보수, 영조 27년(1751), 영조 46년(1770)에 대웅전 보수, 순조 3년(1803)에 대웅전 후면의 부연보수와 풍판의 개수 등 4차례 대웅전 보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673년 조성된 수덕사 괘불과 18세기 제작된 수덕사 소종은 조선후기 수덕사의 꾸준한 불사활동을 보여주는 유물들이다.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세워진 수덕사 대웅전은 연대가 확실하고 조형미가 뛰어나다는 점에서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건물로서, 정면3칸 측면 4칸으로 지붕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기둥의 중간부분이 부풀려진 배흘림기둥 위에만 공포를 올린 주심포계통의 건물이다. 간단한 공포구조와 측면에 보이는 부재들의 아름다운 곡선은 대웅전의 건축미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데 특히 소꼬리모양의 우미량은 그 중 백미로 꼽을 수 있다. 내부에는 천장을 가설하지 않은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고 과거에는 바닥에 전돌이 깔렸으나 현재는 우물마루가 깔려있다. 외부에 그대로 노출된 가구에 새로 단청을 입히지 않아 나무가 간직하고 있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수덕사 대웅전은 건물의 기능미와 조형미가 잘 조화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조 건축물 중 하나이다. 그리고 특히 측면 맞배지붕의 선과 노출된 목부재가 만들어내는 구도는 수덕사 대웅전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조형미와 역사적 가치로 인해 국보 제49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현존하는 건물 중 백제적 곡선을 보여주는 유일한 목조건축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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