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감동글

아내의 눈이 되는 남편 '화제'

淸潭 2011. 5. 21. 17:23

 

아내의 눈이 되는 남편 '화제'

뉴시스 | 고은희 | 입력 2011.05.21 11:35 | 누가 봤을까? 50대 여성, 울산

 
【울산=뉴시스】고은희 기자 =‎ 둘이 하나가 되는 '부부의 날'인 21일 울산 남구문화원 뒤란. 선천성 망막색소변성증을 앓아 시력을 잃은 아내 김민서(43)씨는 자신의 눈이 돼주는 남편 고민욱(42)씨과 함께 싱그러운 5월의 신록을 만끽하며 각별한 부부애를 나눈다.

문화원 뒤란 여기저기에 놓인 장애물에 걸리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고씨는 아내의 손을 이끈다. 나무그늘 벤치에 나란히 앉은 금슬 좋은 부부는 봄 햇살 같은 미소를 짓는다.

1급시각장애인 김씨는 '시각장애인 시낭송가'로 울산의 시각장애인 시낭송가들과 함께 시낭송 시디북 '가슴으로 부르는 노래'를 발매해 시낭송가로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또 지난해 전국시각장애인 창작시 현상 공모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하는 등 문학인으로서 비상의 나래를 펴고 있다. 그는 이 모든 게 모두 남편의 외조 덕분이라며 수줍게 웃음을 띤다.

이 부부는 5년간 열애 끝에 한일월드컵이 열린 2002년 결혼에 골인했다. 당시 고씨는 수도권 지역에서, 김씨는 울산에서 활동하면서 애틋한 사랑을 키우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했다. 둘이 하나가 된 것 만으로 지나간 아픔을 묻어 버릴 수 있다고 전한다.

사진예술에 심취해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고씨는 아내에게는 어두운 터널 속 전등불과 같다. 망막색소변성증의 여파로 30대 초반에 급격하게 시력을 잃은 아내가 절망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용기를 심어주었다.

남편의 응원에 힘입어 김씨는 대학(중앙대) 때부터 키운 '시인'의 꿈을 안고 신춘문예에 도전하기 위해 매일 시작에 몰두한다. 특히 그는 시낭송이 최고 관심사다. 주옥같은 시를 오롯이 담아 가슴으로 전하는 낭송가가 되기 위해 연습에 매진한다. 연습벌레가 따로 없을 정도다.

"시는 호소력과 전달력이 빠르지요. 대중 앞에서 시낭송을 했을 때 그 감동은 공유되는 것이죠. 어둠에 갇혀있는 자신을 구원해 준 것도 시라고 생각합니다."

시낭송가로 무대에 서는 아내를 위해 고씨는 모니터링하고 까다로운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아니 조언이 아니라 심하다 할 정도로 고씨는 아내의 시낭송을 혹평한다. 이로 인해 말다툼도 숱하다.

"과하다고 할 정도로 호되게 하는 편이기는 해요. 하지만 더 완벽하게 잘할 수 있는데도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때는 나도 모르게 질타를 하게 되는 거지요. 아마 아내에 대한 애정이 깊어서 일겁니다."

김씨는 자신을 대신해 기꺼이 눈이 돼 주는 남편이 늘 고맙지만, 남편이 자신을 장애인으로 여기지 않고 혹독하게 대할 때면 눈물이 뚝뚝 흐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남편의 거침없는 지적이 있었기에 발전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전한다.

남편 고씨에게는 아내에 대한 믿음이 특히 강하다. 외아들(9)이 음악적으로 천재성을 띠고 있는데 이는 아내의 영향이라고 강조한다. 음악적인 감각이 남다른 아내의 끼를 아들이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들은 어린나이에 클래식 작곡을 척척해내 최근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테스트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고씨는 앞으로가 문제라며 슬쩍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 부부도 다른 부부와 마찬가지로 최대 관심사는 자녀교육이다. 김씨는 자신이 가진 달란트를 십분 발휘 해 아들에게 전수하는데 최선을 다한다. 자녀교육을 비롯해 소소한 일부터 큰일까지 부부는 서로 숨김없이 털어놓으며 의논한다.

때로는 의견이 충돌되기도 하지만 합일점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흔한 말다툼은 수도 없지만, 그럴수록 서로에 대한 믿음과 애정은 커져만 간다. 이들은 둘이 하나가 되는 숫자 21을 어느 순간 좋아하게 됐다고 밝혔다.

한편 울산시는 부부의 날을 맞아 지난 20일 달동 문화공원에서 부부 80쌍을 초청해 2011년 부부의 날 기념 '사랑愛 하모니'를 열었다. 이날 고씨와 김씨 부부는 행사에 초대돼 참여하면서 부부의 인연을 다시 한 번 새겼다.

gogo@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