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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신' 양준혁, 은퇴가 더욱 아쉬운 이유

淸潭 2010. 9. 20. 08:28

'양신' 양준혁, 은퇴가 더욱 아쉬운 이유

OSEN | 입력 2010.09.20 07:32

 


[OSEN=박현철 기자]그저 스타플레이어 한 명의 은퇴가 아니다. 자칫 리그의 양적-질적 발전이 없다면 그는 결국 '불세출의 거성'으로 남게 될 것이다. 선수 본인에게는 영광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결코 좋은 현상으로 보기 어렵다.

지난 19일 대구구장. 프로 18시즌 동안 3할1푼6리 351홈런 1389타점이라는 대단한 기록을 세운 삼성 라이온즈 양준혁(41)은 SK와의 경기에서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며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안타는 없었으나 땅볼을 때려내고도 1루로 악착같이 뛰어가는 그의 모습은 분명 아름다웠다.

양준혁의 통산 타율은 3할3푼1리를 기록한 타격의 달인 장효조에 이어 전체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며 그의 누적기록은 도루(193개, 역대 14위)를 제외하면 거의 전 부문 통산 1위에 위치했다. 상대적으로 기복이 크지 않았고 선수생활에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지 않았던 그의 자기관리와 탁월한 실력을 대번에 알 수 있는 기록.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1982년 출범 이래 29번째 시즌의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한국 프로야구지만 과연 훗날 어떤 대타자가 양준혁의 대기록을 넘어설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만한 타자가 나타날 수 있을 지 의문시된다. 실력 면이 아니라 누가 리그의 터줏대감으로서 양준혁처럼 포효할 것인지 여부 때문이다.

▲ 젊은 유망주, 빅리그를 바라보다

2008시즌 도중 고감도 타격을 자랑하는 김현수(두산)를 바라보던 김경문 두산 감독은 "자기 관리도 철저하고 충분한 재능을 갖췄다. 양준혁의 기록을 갱신할 만한 타자라고 생각한다"라고 극찬한 바 있다. 단 여기에는 국내 리그에 잔류한다는 조건 하에.

1994년 LA 다저스에 입단한 '코리안 특급' 박찬호(피츠버그)의 출현 이래 야구 꿈나무들은 국내 무대만이 아닌 해외 무대를 바라보며 꿈을 키웠다. 1996년 주니치에 입단한 '무등산 폭격기' 선동렬 현 삼성 감독 이래로 일본 야구 또한 국내 야구팬들의 관심사 중 하나가 되었다.

앞서 언급된 김현수 또한 해외 무대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심이 대단하다. 김현수는 "앨버트 푸홀스(세인트루이스)도 좋아하고 예전에는 토드 헬튼(콜로라도)를 좋아했다. 빅리그에서 내 본보기가 되는 선수는 무수하다"라고 밝혔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시시때때 검색하고 영상을 보려고 노력해요. 국내에도 훌륭한 선배들이 많지만 이승엽(요미우리) 선배가 일본에 진출한 후에는 일본야구도 거의 빼놓지 않고 봤습니다. 2군에 있을 때도 꼭 챙겨봐서 그 때 요미우리에 있던 게리 글로버(SK)의 영상도 자주 봤어요".

김현수 뿐만 아니다. 최근의 중-고교 유망주들은 물론 대학 선수들 또한 빅리그로의 진출을 하나의 커다란 꿈으로 상정하고 있으며 1차지명 폐지로 인해 유망주의 해외 진출을 막을 방도를 마련하는 데도 어려움이 크다. 지난 8월 16일 신인지명을 통해 한화에 5순위로 입단한 스위치히터 외야수 김용호(성균관대)의 경우는 일본팀인 요코하마와 오릭스가 영입을 검토하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여기에 있다. 양준혁에 버금가는 좋은 타자로 성장할 만한 유망주들은 분명 탄생하고 있지만 이들이 해외진출 대신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로 남을 것인지 여부가 불투명하다. 더 값진 명예와 고연봉을 추구하는 프로 선수인 만큼 리그를 장악하고도 남을 만한 타자 유망주들의 자아 실현점이 빅리그를 향한 데에 팬들도 비난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 야구 인프라 확충-선수 처우 개선, 일말의 해결책

은퇴 무대에서 양준혁은 "대구구장이 협소해 더 많은 팬들과 함께 하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다"라고 밝혔다. 그도 그럴 것이 대구구장은 이미 오래 전 '붕괴 위험'까지 우려되는 노후화 구장으로 꼽혔던 것이 사실. 그동안 조금씩 보완을 하기는 했으나 올림픽 금메달,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준우승 위업에 빛나는 나라의 프로 구장이라고 하기 부끄러울 정도.

경기 중에도 불편한 장면은 있었다. 양준혁이 수비를 위해 덕아웃에서 그라운드로 나서는 순간 언론매체의 카메라들은 분주히 3루 측 삼성 덕아웃 앞에 운집했다. 가뜩이나 덕아웃이 협소해 키가 큰 선수들이 몸을 구부려야 할 정도의 공간에서 굉장히 복잡한 장면이 연출된 것.

선수 양준혁의 마지막 모습을 화면 앞에서 보고자 하는 팬들에게는 당연한 기쁨이지만 다른 선수들에게는 불편이 아닐 수 없다. 잠실이나 문학구장처럼 선수 및 미디어의 운신 폭이 넓은 곳이었다면 상호 간의 불편함도 없었을 것이다.

현장의 선수들 또한 대다수가 "지방 구장은 시설이 낙후되어 마음껏 뛸 수 있을 지 여부조차 두려운 것이 사실이다. 선수에게는 몸이 재산이지 않은가"라며 불편함을 가감없이 털어놓았다. 리그의 자존심은 둘째치고 전체적인 선수 생명의 하향세까지 두려워할 정도라면 보완이 시급한 시점이다.

선수에 대한 배려와 처우 개선책 또한 필요하다. 사실 19일의 주인공이던 양준혁 또한 2001년 3할5푼5리(1위) 14홈런 92타점의 호성적으로 LG에서의 시즌을 마쳤으나 고연봉 대비 효용성에서 평가절하당하며 미아가 될 뻔하기도 했다. 다행히 김응룡 당시 삼성 감독(현 삼성 사장)이 손을 뻗었기에 뉴욕 메츠에서의 오퍼를 무용담처럼 이야기할 수 있었으나 만일 국내 단 한 팀조차 찾지 않았더라면 그의 대기록은 그저 먼 나라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일반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에다 세제 혜택 등을 통해 금전적 이점을 누리고 있는 스타 플레이어들도 있지만 한창 힘쓸 나이의 상당 부분을 야구에 쏟으며 희생하는 선수가 대부분이다. 또한 선수 연봉이 베일에 가려진 K-리그나 상대적으로 비시즌 기간이 긴 편인 프로농구와 비교하면 금전적 이득도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그래도 1군 스타들은 그나마 나은 편.

언젠가 미래의 주축을 꿈꾸는 2군 유망주들이 배트나 글러브를 못 쓰게 될 경우 자신의 월급에서 용품 비용만큼 차감된 금액을 받아드는 경우도 볼 수 있다. 2군에서 가능성을 보여주고도 이를 인정받지 못하고 신고선수 계약의 굴욕을 당하는 선수가 있는 것도 사실. 화려함 뒤에는 어두운 이면도 큰, '빈익빈 부익부'로 대표되는 곳 중 하나가 프로야구 시장이다.

범접하기 힘든 대기록을 잇달아 세우고 그라운드를 떠나는 양준혁은 분명 대단한 '거성'이다. 그러나 그의 뒷모습에 그저 손을 흔든 뒤 작별의 광장을 떠난다면 결국 남는 것은 없다. 언젠가 그 광장을 찾을 누군가를 위해. 그리고 이를 함께 지켜보는 팬들을 위해 양과 질을 동시에 갖춘 무대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farinell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