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수사모

“新體詩 효시 일엽스님이 썼다”

淸潭 2010. 6. 1. 14:07

“신체시 효시 일엽스님이 썼다”

손상좌 월송스님 세미나서 주장

한국인물전기학회는 지난 5월26일 수덕사 황하정루에서 개화기 최초의 여성해방운동을 주창했던 비구니 일엽스님의 생애와 정신세계를 조명하는 세미나를 열었다.

                                                                                               

 

일엽스님 詩 ‘동생의 죽음’

‘해에게서…’ 보다 1년 앞서

“국문학사 재조명” 제기

 

우리나라 최초의 신체시는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아니라 이보다 1년 앞서 발표된 일엽스님의 ‘동생의 죽음’이 신체시의 효시라고 봐야 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인물전기학회(회장 최종고)는 지난 5월26일 덕숭총림 수덕사 황하정루에서 신학문을 수료하고 개화기 최초의 여성해방운동을 주창했던 한국 최초의 여류시인이자 불문에 귀의해 한국 비구니계의 큰 별로 추앙받고 있는 일엽스님의 생애와 정신세계를 조명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날 손상좌 월송스님은 일엽스님의 생애와 사상을 주제로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월송스님은 “12세 되던 1907년에 일엽스님은 ‘동생의 죽음’ 이라는 시를 쓰는데 이것은 최초로 알려진 1908년 최남선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 보다 1년을 앞선 것이어서 신체시의 효시로 봐야 마땅하며 국문학사에서 분명히 고쳐져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스님은 또 “일엽스님은 1919년 3ㆍ1운동이 일어났을 당시에는 집에서 전단지를 작성하여 살포하는 등 독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는 것을 가까스로 모면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월송스님은 “일엽스님의 생애와 사상을 살펴보면 크게 4가지 면모로 구분할 수 있다. 근대 문학 태동기의 문학도의 모습과 개화기의 여성해방운동가, 시대를 앞서간 서구자로서의 사상가, 종교인의 모습으로 〈화엄경〉선재동자의 구도기처럼 일생을 통해 순차적으로 나타나는 모습들은 결국 완성된 종교인의 모습으로 일생을 마침으로 극적이고 비장감마저 드는 한편의 인간사”라고 말했다.

 

일엽스님은 이화학당을 졸업하고 일본 동경으로 유학을 다녀온 후 한국 최초의 여성잡지 <신여자>를 창간하는 등 개화기 신여성으로서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1928년 만공스님 문하로 득도하고 1971년 입적할 때까지 평생을 수덕사에서 스승의 가르침대로 철저한 수행과 더불어 후학들을 제접했다.

 

수덕사 주지 옹산스님은 “일엽스님은 글의 깊이가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문학을 하는 스님이라고 각인되어 있는데 만공스님의 지도를 받은 수행자로서 한국불교에 큰 족적을 남긴 비구니 선사”라고 말했다.

 이시영 충남지사장 lsy@ibulgyo.com

 

[불교신문 2627호/ 6월2일자]

2010-05-31 오전 11:53:02 /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