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선 35세에 위없는 깨달음을 이룬 후 45년간 수많은 대중들을 교화하셨다. 그 중에는 왕, 바라문, 장군은 물론 수행자, 학자, 상인, 천민, 살인자, 기녀에 이르기까지 지위도 연령도 각양각색이었다. 하지만 부처님의 고요한 눈빛에서 한량없는 위안을 얻었고 그 분의 말씀에서 삶의 깊은 이치를 깨달았다는 점에선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본지는 초기불교 연구자인 이자랑 박사의 ‘붓다를 만난 사람들’을 통해 대중들의 눈에 비친 부처님의 새로운 면모를 격주로 전달한다. 편집자
붓다 만나 살인 멈추고 수행자로 거듭
인욕-정진하는 용기야 말로 참된 참회
‘잘 왔구나, 비구여(ehi bhikkhu).’
이는 불교승가에 구족계 의식이 아직 체계화되지 않았을 때, 새로운 출가자를 받아들이며 부처님께서 한 말씀이다. 초전법륜을 시작으로 쿠시나가라에서 열반에 드는 순간까지 이어진 45여 년에 걸친 교화 기간 동안, 인도 곳곳에서 갖가지 사연을 안고 방황하던 많은 이들이 부처님과의 만남을 통해 진리를 깨닫고, 입단 허락과도 같은 이 말과 함께 부처님의 따뜻한 품 안으로 들어왔다. 그 많은 수행자들 가운데, 특히 희대의 살인마에서 성자로 다시 태어난 ‘앙구리마라’ 비구의 극적인 이야기는 아무리 극악무도한 죄를 짓고 나락에 떨어져 허덕이는 인간이라 할지라도, 진정한 참회와 인욕을 통해 새로운 삶을 열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 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부처님은 이른 아침, 신통으로 세상을 내려다보고 계셨다. ‘스스로의 무지를 모른 채 잘못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없는가.’ 내버려 두면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접어들어 더 이상 어쩌지도 못하는 상태로 빠져들지도 모를 이들을 염려하며 세상 곳곳을 살피던 부처님께서는, 사위성 근처 숲에서 피범벅이 되어 돌아다니고 있는 앙구리마라를 발견하셨다. “내가 가면 저 자는 출가하여 평안을 찾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가지 않는다면, 마지막 손가락 하나를 얻기 위해 어머니까지 죽이는 죄를 범하여 구제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그를 구해주자.” 부처님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앙구리마라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셨다.
앙구리마라는 부처님 당시 16대국 가운데 하나였던 코살라국의 수도인 사위성 주변에서 살인을 일삼으며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던 흉적이었다. 그는 생물에 대해 무자비한 흉적으로, 날마다 살육을 저질러 항상 손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고, 사위성 주변의 마을들은 점차 폐허가 되어 갔다. 앙구리마라란 손가락 목걸이라는 의미이다. 사람을 죽여 그 손가락을 꿰어 목에 걸고 다닌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렇다면, 무슨 사연으로 앙구리마라는 이렇게 끔직하고 엽기적인 행동을 하게 된 것일까?
앙구리마라는 원래 코살라국 파세나디왕의 왕실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각가, 어머니는 만따니였다. 그의 이름은 생명을 해치지 않는다는 뜻을 지닌 아힘사까였다. 아버지는 아힘사까에게 학문과 기예를 익히게 하기 위해 탁실라에 사는 한 바라문 밑으로 유학을 보냈다. 뛰어난 자질과 성실함으로 아힘사까는 스승과 스승의 아내로부터 각별한 총애를 받으며 면학에 힘쓰고 있었는데, 이를 질투한 다른 제자들이 앙구리마라가 스승 몰래 스승의 아내와 정을 통하고 있다는 모함을 했다. 결국 음모에 넘어간 스승은 극도의 배신과 분노를 느끼며,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복수하고자 마음먹었다. 어느 날 스승은 아힘사까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아힘사까야, 아직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특별한 가르침이 있는데, 네게만 가르쳐 주마. 한 번 실천해 보겠느냐?” “물론입니다. 열심히 실천하겠습니다.”
스승이 일러준 특별한 가르침이란, 바로 천명의 남녀를 죽이고 그로부터 손가락 한 개씩을 모아 목걸이를 만들어 오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곧 아힘사까의 학업을 완성시켜 주는 마지막 단계라고 했다.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말에 순간 망설였으나, 아힘사까는 학업을 완성시켜 진리를 깨닫고 싶은 마음에 스승의 말을 믿고 실천하기 위해 사위성으로 들어갔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보이는 대로 칼을 휘두르고 손가락을 잘랐다. 이렇게 999명을 죽인 후, 마지막 한 명을 채우기 위해 사위성 근교의 한 숲에 숨어 있었다. 이 때였다. 부처님께서 그를 발견하고 만나기 위해 숲 속으로 들어가신 것은.
한 사람을 더 채워야 한다는 생각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앙구리마라는 숲 입구에 서 있다가, 저 멀리 부처님께서 걸어오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옳거니 하며, 그는 칼과 화살을 챙겨들고 부처님의 뒤를 쫓았다. 한편, 부처님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천천히 보통 속력으로 계속 앞으로 걸어 나가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리 전속력으로 따라가도 앙구리마라는 부처님과의 사이를 좁힐 수 없었다. 한 때, 달리는 코끼리나 말조차도 쫓아가서 포획한 적이 있던 앙구리마라로서는 황당한 일이었다. 기를 쓰고 쫓아가다 지친 앙구리마라는 멈추어 서서 소리쳤다.
“멈춰라, 멈춰라.”
“앙구리마라여, 나는 멈추어 있다. 앙구리마라여, 너야말로 거기 멈춰 서거라.”
그러자 앙구리마라는 진리를 깨달아 진리를 공언하는 석자의 사문이 왜 이런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생각하며 이렇게 물었다.
“사문이여, 너는 걸어가고 있으면서 멈추어 서 있다고 하는구나. 너는 멈추어 서 있고,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앙구리마라여, 나는 생물을 해치거나 괴롭히는 일로부터 떠나 자비와 인욕을 성취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지혜를 지니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멈추어 서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너는 생물에 대한 자제가 없어, 살아 있는 것을 해치고 괴롭히며 자비와 인욕이 없다. 너는 네 자신을 돌아볼 줄 모른다. 그래서 너는 멈추어 있지 않다고 한 것이다.”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들은 앙구리마라는 문득 제 정신이 들며, 그 동안 자신이 저질러온 행동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앙구리마라는 후회하는 마음에 몸서리쳤다. 그리하여, 부처님 앞에 엎드려 진심으로 참회하며 출가의 청을 드렸다. 그런 앙구리마라를 부처님은 “잘 왔구나. 비구여”라는 따뜻한 말과 함께 제자로 받아들여 주셨다.
이후, 앙구리마라는 철저히 계율을 지키며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열심히 수행했다. 그러나 한때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흉적 앙구리마라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과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어느 날 사위성으로 탁발을 나간 앙구리마라를 알아 본 사람들은 그에게 흙덩어리와 몽둥이, 돌 등을 던지며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 앙구리마라의 머리에서는 피가 흘렀다. 발우도 깨지고 가사도 찢어졌다. 피범벅이 된 처참한 모습으로 앙구리마라는 간신히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돌아왔다. 저 멀리 다리를 절룩거리며 걸어오는 참담한 모습의 앙구리마라를 보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앙구리마라야, 참고 견뎌야 한다. 네가 지옥에서 수년, 수백 년, 수천 년에 걸쳐 받아야만 할 업의 과보를, 너는 현세에서 받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가슴 아프고도 감동적인 장면이다. 앙구리마라의 진정한 참회는 출가수행자로서의 삶과 함께 시작되었던 것이다. 오로지 일반인들의 존경으로부터 주어지는 보시물로 살아가야 할 수행자 앙구리마라에게 있어, 사람들의 핍박은 거의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안겨 준다. 발우에는 쌀 한 톨도 주어지지 않고, 온갖 욕설은 쏟아지고, 이리저리 두들겨 맞아 피멍이 든 온 몸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처참할 것이다.
앙구리마라로 인해 가족이나 친지를 잃은 사람들의 분노를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를 알고 계시기에 부처님은 측은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반드시 그 상황을 감수하여 자신의 업보를 스스로 씻어버려야 한다며 앙구리마라를 채찍하고 계신 것이다. 부처님을 만나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해서, 그래서 출가했다 해서 그가 이전에 지은 죄까지도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과의 만남, 그리고 출가는 앙구리마라가 참회하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계기였을 뿐이다. 자신의 업보를 청산할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며, 이를 위해 인욕하고 정진하는 용기야말로 진정한 참회이다. 그 동안 자신이 무지하게 저질러온 행위가 얼마나 남에게 고통을 주는 큰 잘못이었는가를 자각하고, 이에 대해 쏟아지는 비난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앙구리마라는 부처님의 진정한 제자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훗날, 앙구리마라는 해탈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이런 시구를 읊었다. “이전에 나태했다 하더라도 지금부터 부지런히 정진한다면,/ 그는 이 세상을 밝히리라. 마치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이전에 지은 악업을 선으로 감싼다면,/ 그는 이 세상을 밝히리라. 마치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이자랑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이자랑 박사는
동국대 인도철학과 및 동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에서 「초기불교교단의 연구-승가의 분열과 부파의 성립」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도쿄대학 외국인 특별연구원을 거쳐 현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율장에 나타나 부동주에 관하여」, 「승가의 추방에 관하여-멸빈」을 중심으로 「소소계에 관한 논쟁」, 「승가화합의 판단기준에 관하여」 등 논문과 『나를 일깨우는 계율 이야기 』, 『인도불교의 변천』 등 저술과 번역서가 있다.
1046호 [2010년 04월 28일 1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