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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스님/오직 깨달음이 느림을 두려워하라
세계일화(世界一花).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마치 한송이 꽃처럼 서로 나누어져 있지 않다는 뜻이다. 화계사 조실로 계시면서 세계 각국에 한국불교의 꽃을 활짝 피운 숭산스님의 평생 화두였다. 숭산스님의 세계일화는 경허ㆍ만공ㆍ고봉 스님의 맥(脈)을 계승한 것이다. 때문에 숭산스님 제자들이 머무는 도량에는 한결같이 ‘세계일화’라는 글씨와 함께 경허ㆍ만공ㆍ고봉스님의 진영(眞影)이 걸려 있다. 숭산스님은 고봉스님의 유일한 출가제자이다.
평남 순천 출생으로 동국대를 졸업한 후 출가한 숭산스님이 고봉스님을 찾아왔다. 숭산스님이 마곡사에서 행자로 있을 때의 일이다. 고단한 생활에 지쳐있던 숭산스님이 저녁 무렵 고봉스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 인사를 했다. 고봉스님이 말문을 열었다. “머리 깎은 지 얼마나 됐느냐?” 숭산스님이 답했다. “몇 달 됐습니다.” 두 스님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래, 그러면 다리 좀 주물러라” “네, 스님” 한참을 다리를 주무르던 숭산스님이 미리 갖고 들어온 목탁을 내 놓으며 말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젊은 행자의 당돌한 질문에 고봉스님이 곧바로 응대했다. 고봉스님은 말없이 목탁채를 들고는 숭산스님을 때렸다. 숭산스님 왈(曰). “감사합니다.”
고봉스님과 숭산스님의 만남은 처음부터 범상치 않았다. 은사와 상좌의 대화가 계속됐다. “네가 부처님을 보았느냐”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럼, 왜 목탁을 갖고 왔느냐” 숭산스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너는 요즘 무슨 공부를 하느냐?” “천수주문(千手呪文)을 외우고 있습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는 전생의 업장을 녹여주고 소원성취는 하지만, 마음을 깨닫지는 못한다. 옛날에 조주스님은 ‘뜰앞의 잣나무’라고 하셨는데, 그 뜻을 아느냐” “모르겠습니다.” 숭산스님이 참선정진의 공부와 인연을 맺는 계기가 바로 이때였다. 고봉스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그러면, 이 문제를 한번 풀어보아라. 모르는 것은 어디까지나 모르는 것이고, 아는 것은 분명히 아는 것이니 생각으로 헤아리지 말고 철저하게 참구(參究)를 해 보거라.” 공부의 길을 안내 받은 숭산스님은 환희심이 났다.
이때 고봉스님은 숭산스님에게 행원(行願)이란 법명을 지어주었고, 제자로 받아들였다. 은사의 권유로 수덕사에서 정진하게 된 숭산스님은 법진스님, 덕산스님, 영음스님, 춘성스님 등 당대의 선지식들의 지도를 받았다.
고봉스님이 말씀하신 ‘좌선의 방법’ 요지는 다음과 같다. “좌선은 별로 용심(用心) 할 곳이 없다. 자성(自性)이 청정하면 닦아 놓은 거울이나 깨끗한 얼음과 같고 가을 허공과 같은 맑은 호수와 같다. 또한 법계(法界)가 마치 뱃속에 있는 것과 같다. 몸과 마음을 탈락하여 평안함을 얻으면 가슴속이 청량(淸凉)하여 비할 데가 없다. 하지만 여기에 만족하여 부처님이나 조사를 업신 겨기는 마음을 내면 이것은 크게 잘못하는 것으로 마군의 경계에 빠지니 납자(衲子)는 주의해야 한다. 참선을 하고자 하되 다만 병(病)과 약(藥)의 두 마구니로 인하여 하나를 잡으면 하나를 놓는 거와 같이 엇갈린다고 하니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깨달음이 느림을 두려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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