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 죽는 일보다 더 큰 것 있으랴. 온갖 일 바람결에 날려 보내고 오늘도 구름 따라 홀로 앉으니 四(사)방에서 학이 날아 춤을 추네.’ - 경허 선사
한국 근대 선불교의 중흥조 경허 스님이 선의 묘미를 짧은 글로 풀어냈다면, 그 선시를 다시 그림으로 표현한 이가 있다. 동국대학교 미술학부 김대열 교수. 경허 스님의 법맥이 흐르는 수덕사 선미술관에서 경허 스님의 선시를 수묵화로 표현한 작품 전시회가 열린다. 3월 26일~4월 15일 열리는 ‘禪之妙美(선지묘미)’ 전은 선미술과 개관 기념 기획전이다.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김 교수의 그림은 한지에 수묵 기법으로 조성돼 있다. 각각의 그림에는 짧은 선시가 제목 대신 붙어 있다. 경허, 만공 스님 두 선사의 시를 표현한 그림이 주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 선의 황금시대를 풍미했던 중국의 역대 고승 선시까지 20여 점도 이번 전시회에서 처음 공개되는 신작이다. 깊은 산과 하나가 된 수행자의 모습, 닭, 학, 새의 간결하면서도 역동적인 묘사는 선사들의 번뜩이는 언어와 닮아 있다.
시를 다시 그림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두고 “선해(禪海)에서 노를 젓는 일”이라고 밝힌 김 교수는 선시를 방향키 삼아 이 시대의 시각 언어를 찾는 항해사다. “선시를 읽으며 오랫동안 사유를 거듭하다보면 어느 날 문득 형상이 떠올라 단 몇 분 만에 그림을 완성하는 경우도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또한 그는 “선적인 깨달음은 마음으로만 전할 수 있다고 하지만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의 감각을 통해 전달하는 방법을 찾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고 싶다”고 전시의 감회를 전했다.
![](http://www.beopbo.com/article/upfiles/1269910267.img.jpg) |
김대열 作 ‘학이 춤을 추네’. 경허 스님의 선시를 그림으로 옮긴 작품이다. |
수덕사는 김 교수에게 특별한 도량이다. 그의 고향은 충남 예산군 수덕사와 가까운 청양군이다. 이에 사찰은 늘 고향을 떠올리게 했다. 이후 경허, 만공 선사의 수행처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뭣꼬’를 화두삼아 30년 넘게 수행해 온 그에게 더욱 귀한 인연으로 작용했다. “늘 (나를) 새롭게 하는 가람에서 작품을 전시하게 돼 오히려 조심스럽다”는 말에 고향을 향한 그리움, 깨달음에 대한 진중함이 묻어있다.
한편, 수덕사 선미술관에서는 이번 기획전과 함께 고암 이응노 화백의 작품과 지난 2008년 입적한 수덕사 방장 원담 스님의 선필 15점도 공개, 전시한다. 041)337-6565
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1042호 [2010년 03월 30일 0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