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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은메달

淸潭 2010. 2. 17. 12:58

스피드스케이팅 5000m 은메달 이승훈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0m는 서양선수에게 체격 조건이 뒤떨어지는 아시아 선수들에게 '불가침(不可侵)의 영역'이었다.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이승훈(22·한국체대)이 ISU(국제빙상경기연맹) 월드컵 랭킹 9위까지 올라간 것이 일대 사건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물론 남자 5000m 이상 장거리에서 아시아선수의 올림픽 메달도 그동안 전무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난 14일(한국시각) 밴쿠버올림픽 5000m에 출전한 이승훈에게 메달을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승훈 본인도 "옆 선수의 페이스를 잘 쫓아가면 5위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12번째 조로 뛴 이승훈은 놀라운 막판 스퍼트 끝에 6분16초95로 은메달을 차지했다. 5000m 세계기록 보유자 스벤 크라머(6분14초60)에 2초35 뒤진 기록이다.

"아시아는 안 된다" 편견 깨

더욱 놀라운 것은 이승훈이 본격적으로 스피드스케이팅을 시작한 지 1년도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원래 '잘나가던' 쇼트트랙 선수였다. 작년 2월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3관왕에 오르며 승승장구했지만, 밴쿠버올림픽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2009년 4월)에서 탈락했다. 삶의 목표가 사라졌고 이승훈은 큰 충격을 받았다. 아버지 이수용(52)씨는 "좌절한 아들의 방황 때문에 집안 분위기가 지옥 같았다"고 했다.

3개월의 방황 끝에 이승훈이 선택한 것이 스피드스케이팅이었다. 스피드스케이팅용 스케이트화가 없어 남의 것을 빌려 신고 훈련을 시작했고, 전략적으로 장거리인 5000m를 주종목으로 삼았다. 500m 같은 단거리는 이규혁·이강석 등 선배들을 제치고 대표선수 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게다가 "장거리용 체력만큼은 자신이 있다"던 이승훈이었다. "(장거리가 약한) 아시아에서 다시는 나오기 어려운 선수가 되고 싶다"는 당찬 욕심에, 온몸을 던져 훈련에 임했다.

쇼트트랙의 코너링 기술 큰 도움

아시아 선수들에게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 경주가 '그림의 떡'이었던 것은 서양선수들에 비해 짧은 다리와 약한 기초 체력 때문이다. 500m 같은 단거리는 스타트에서 피치(pitch·다리로 얼음을 한번 밀어내는 동작) 수를 빠르게 하는 전략으로 체격 열세를 만회했다. 그러나 장거리에선 한걸음에 쭉쭉 치고 나가는 서양 선수들을 쫓아가지 못했다.

1m77의 크지 않은 이승훈이 체격의 열세를 만회할 수 있게 한 것이 바로 쇼트트랙에서 배운 코너링 기술이었다. 스피드스케이팅만 한 선수들에 비해 이승훈은 곡선 주로에서 최대한 속도를 냈다. 코너링 때 '스피드 손실'을 줄이는 데만 신경 쓰는 다른 선수들과 정반대 전술을 쓴 것이다. 이승훈은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훈련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개인적으로 쇼트트랙 훈련을 병행했다. 은메달을 안은 이승훈은 "쇼트트랙은 옛사랑이고, 스피드는 이제 첫사랑"이라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