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룻터경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때 붓다께서는 사밧티 시에 이르러 제타비나 숲에 있는 아나타핀타까 장자의 정원에서 지내셨다. 그곳에서 붓다께서는 “비구들아”라고 하시며 비구들을 부르셨다. “예 붓다시여”라고 하며 비구들은 붓다께 답하였다. 붓다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고통의 강을 건너게 하는 종교적) 나루터들은 (모두) 세 가지에 포섭된다. 그 나루터들은 슬기로운 자들이 서로 따져 보고 의논하고 토론한 (끝에 시설한 것이므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르쳐 보지만 (종교적으로) 어떤 쓰임새도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셋이란 어떤 것들인가.
비구들아, 어떤 수행자나 사제들은 다음과 같이 보고 말한다. “어떤 사람이든지 그들이 느끼는 바, 즐거움 또는 괴로움 또는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닌 느낌들은 모두가 전생에 지은 업을 원인으로 한다고. 비구들아, 또 어떤 수행자나 사제들은 다음과 같이 보고 말한다. ”어떤 사람이든지 그들이 느끼는, 바 즐거움 또는 괴로움 또는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닌 느낌들은 모두가 유일신의 창조를 원인으로 한다"고, 끝으로 비구들아, 어떤 수행 수행자나 사제들은 다음과 같이 보고 말한다. “어떤 사람이든지 그들이 느끼는 바, 즐거움 또는 괴로움 또는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닌 느낌들은 모두가 원인도 연고도 없는 것이다”고,
비구들아, 먼저 나는 “어떤 사람이든지 (...) 느낌들은 모두가 전생에 지은 (업)을 원인으로 한다‘라고 보고 말하는 수행자 또는 사제들에게 가서 말하였다. ”여러분, 그대들은 진실로 어떤 사람이든지 그들이 느끼는 바, 즐거움 또는 괴로움 또는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닌 느낌들은 모두가 전생에 지은 업을 원인으로 한다고 보고 말하는 것이오“
나의 질문을 받은 그들은 “그렇습니다‘고 긍정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렇다면 그대들은 살생자가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전생에 지은 업이 원인이다. 또 도둑이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전생에 지은 업이 원인이다. 또 청정하지 못한 짓을 하는 자가 된다 하더라도, (그것도) 전생에 지은 업이 원인이다. 또 거짓말쟁이가 된다 하더라도, (그것도) 전생에 지은 업이 원인이다. 또 험담을 하는 자가 된다 하더라도, (그것도) 전생에 지은 업이 원인이다. 또 거친 욕을 하는 자가 된다 하더라도, (그것도) 전생에 지은 업이 원인이다. 또 쓸데없는 말을 하는 자가 된다 하더라도, (그것도) 전생에 지은 업이 원인이다. 또 욕심쟁이가 된다 하더라도, (그것도) 전생에 지은 업이 원인이다. 또 악독한 자가 된다 하더라도, (그것도) 전생에 지은 업이 원인이다. 끝으로 사악한 견해를 지닌 자가 된다 하더라도, (그것도) 전생에 지은 업이 원인이다’라고
그리고 비구들아, 전생에 지은 업을 견실하다고 집착하는 자에게는 “저것은 해야 한다” “이것은 해서는 안 된다”와 같은 의욕도 없을 것이며 정진도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될 것을 진실 되고 참되게 파악할 수 없다면, 그런 자는 기억은 흐려져 있고
(감관은) 지켜지지 않은 상태로 지내는 자이다.
비구들아, 이것이 이상과 같이 보고 말하는 수행자나 사제들에 대한 법도에 맞는 첫 번째 비판이다.
비구들아, (다음으로) 나는‘ 어떤 사람이든지 (...) 느낌들은 모두가 (유일)신의 창조를 원인으로 한다’라고 보고 말하는 수행자 또는 사제들에게 가서 말하였다. “여러분, 그대들은 진실로 -어떤 사람이든지 그들이 느끼는 바, 즐거움 또는 괴로움 또는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닌 느낌들은 모두가 (유일)신의 창조를 원인으로 한다- 라고 보고 말하는 것이오.”
그리고 비구들아, (유일)신의 창조를 견실하다고 집착하는 자에게는 ‘이것은 해야 한다‘ ’이것은 해서는 안된다‘와 같은 의욕도 없을 것이며 정진도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될 것을 진실되고 참되게 파악 할 수 없다면 그런 자는 기억은 흐려져 있고
(감각은) 지켜지지 않은 상태로 지내는 자이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도 법도에 맞추어 볼 때 수행자라고 주장할 수 없다. 비구들아 이것이 이상과 같이 보고 말하는 수행자나 사제들에 대한 법도에 맞는 두 번째 비판이다.
비구들아, (끝으로) 나는 “어떤 사람이든지 (....) 느낌은 모두가 원인도 없고 연고도 없는 것이다”고 보고 말하는 수행자나 사제들에게 가서 말 하였다. “여러분, 그대들은 진실로 -어떤 사람이든지 그들이 느끼는 바, 즐거움 또는 괴로움 또는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닌 느낌들은 모두가 원인도 없고 연고도 없는 것이다.- 라고 보고 말하는 것이오.”
나의 질문을 받은 그들은 “그렇습니다”라고 긍정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렇다면 그대들은 살생자가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고 연고도 없다. ....끝으로 사악한 견해를 지닌 자가 된다 하더라도 (그것도) 원인도 없고 연고도 없을 것이다‘라고.
그리고 비구들아, ‘원인도 없고 연고도 없다’라고, 집착하는 자에게는 “이것은 해야 한다” “이것은 해서는 안 된다”와 같은 의욕도 없을 것이며 정진도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될 것을 진실되고 참답게 파악 할 수 없다면, 그런 자는 기억은 흐려져 있고 (감관은) 지켜지지 않은 상태로 지내는 자이다. 다라서 어떤 경우에도 법도에 맞추어 볼 때 수행자라고 주장 할 수 없는 자이다. 비구들아 이것이 이상과 같이 보고 말하는 수행자나 사제들에 대한 법도에 맞는 세 번째 비판이다.
그러나 비구들아, 내가 설한 법이 있으니 그 법들은 어떤 유식한 수행자나 사제들도 비판 할 수 없고, 더럽힐 수 없고, 탓할 수 없고, 비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비구들아, 어떠한 법이 내가 설한 것으로서 어떤 유식한 수행자나 사제들도 비난할 수 없고, 더럽힐 수 없고, 탓할 수 없고, 비난할 수 없는 것인가.
비구들아, 여섯 계층이 있으니 내가 설한 법으로서 어떤 유식한 수행자나 사제들도 비난할 수 없고, 더럽힐 수 없고, 탓할 수 없고, 비난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비구들아, 여섯 부딪침의 포섭처가 있으니 (역시) 내가 설한 법으로서 어떤 유식한 수행자나 사제들도 비난할 수 없고, 더럽힐 수 없고, 탓할 수 없고, 비난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비구들아, 열여덟 가지 마음으로 담담히 행하는 수행이 있으니 역시 내가 설한 법으로서 어떤 유식한 수행자나 사제들도 비난할 수 없고, 더럽힐 수 없고, 탓할 수 없고, 비난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비구들아, 네 가지 거룩한 진리가 있으니 내가 설한 법으로서 어떤 유식한 수행자나 사제들도 비난할 수 없고, 더럽힐 수 없고, 탓할 수 없고, 비난할 수 없는 것이다.
비구들아, “여섯 계층이 있으니 내가 설한 법으로서 어떤 유식한 수행자나 사제들도 비난할 수 없고, 더럽힐 수 없고, 탓할 수 없고, 비난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내가 말하였거니와, *무엇에 입각하여 그렇게 말한 것인가. 비구들아, 여섯 계층이란 땅의 계층, 물의 계층, 불의 계층, 바람의 계층, 허공의 계층, 그리고 식별의 계층을 말한다. 따라서 비구들아, “여섯 계층이 있으니 내가 설한 법으로서 어떤 유식한 수행자나 사제들도 비난할 수 없고, 더럽힐 수 없고, 탓할 수 없고, 비난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내가 말하였거니와, 바로 이것에 입각하여 그렇게 말한 것이다.
비구들아, “여섯 부딪침의 포섭처가 있으니 내가 설한 법으로서 어떤 유식한 수행자나 사제들도 비난할 수 없고, 더럽힐 수 없고, 탓할 수 없고, 비난할 수 없는 것이다.”고 내가 말하였거니와, 무엇에 입각하여 그렇게 말한 것인가. 비구들아, “여섯 부딪침의 포섭처란 눈의 부딪침의 포섭처, 귀의 부딪침의 포섭처, 코의 부딪침의 포섭처, 혀의 부딪침의 포섭처, 몸의 부딪침의 포섭처, 그리고 의지의 부딪침의 포섭처를 말한다. 따라서 비구들아, ”여섯 부딪침의 포섭처가 있으니 내가 설한 법으로서 어떤 유식한 수행자나 사제들도 비난할 수 없고, 더럽힐 수 없고, 탓할 수 없고, 비난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내가 말하였거니와 (바로) 이것에 입각하여 그렇게 말 한 것이다.
비구들아, “열 여덟 가지 마음으로 담담히 행하는 (수행)이 있으니 내가 설한 법으로서 어떤 유식한 수행자나 사제들도 비난할 수 없고, 더럽힐 수 없고, 탓할 수 없고, 비난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내가 말하였거니와 무엇에 입각하여 그렇게 말 한 것인가. (비구들아,) 눈으로 색을 보되 안심할 만한 색에 대해서도 담담히 행하고, 근심할 만한 색에 대해서도 담담히 행하고, 담담히 바라볼 만한 색에 대해서도 담담히 행해야 한다. 귀로 소리를 듣되....., 코로 냄새를 맡되...., 혀로 맛을 보되...., 몸으로 촉감을 느끼되...., 의지로 법을 식별하되...., 안심할 만한 법에 대해서도 담담히 행하고, 근심할 만한 법에 대해서도 담담히 행하고, 담담히 바라볼 만한 법에 대해서도 담담히 행해야 한다. 따라서 비구들아, ” 열여덟 가지 마음으로 담담히 행하는 수행이 있으니 내가 설한 법으로서 어떤 유식한 수행자나 사제들도 비난할 수 없고, 더럽힐 수 없고, 탓할 수 없고, 비난할 수 없다.“라고 내가 말하였거니와 이것에 입각하여 그렇게 말 한 것이다.
비구들아, 네 가지 거룩한 진리가 있으니 내가 설한 법으로서 어떤 유식한 수행자나 사제들도 비난할 수 없고, 더럽힐 수 없고, 탓할 수 없고, 비난할 수 없다.“라고 내가 말하였거니와 무엇에 입각하여 그렇게 말 한 것인가.
비구들아, 여섯 가지 계층을 취하여 모태에 들게 된다. 모태에 든 뒤에 이름과 색이 있다. 이름과 색을 기대어 여섯 포섭처가 있다. 여섯 포섭처에 기대어 부딪침이 있다. 부딪침에 기대어 느낌이 있다. 비구들아, 나는 느낌을 느끼는 자에 대하여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설정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집기다”라고 설정하고, “이것이 괴로움의 멸진 이다”라고 성정하고, “이것이 괴로움에 이르는 길이다”고 설정한다.
비구들아, 괴로움이란 거룩한 진리란 무엇인가. 태어남도 괴로움이고, 늙음도 괴로움이고, 병듦도 괴로움이고, 죽음도 괴로움이다. 슬픔-눈물-괴로움-근심-번민도 괴로움이고, 미워하는 자와 만나는 것도 괴로움이다. 사랑하는 자와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요약하면 다섯 가지 취착된 근간들이 괴로움이다.
비구들아, 이것이 괴로움의 진리이다.
그리고 비구들아, 괴로움의 집기라는 거룩한 지리는 무엇인가. 밝힘 아닌 것을(무명) 기대어 결합이 있다. 결합을 기대어 식별이 있다. 식별을 기대어 이름과 색(명색)이 있다. 이름과 색을 기대어 여섯 포섭처가 있다. 여섯 포섭처를 기대어 부딪침이 있다. 부딪침을 기대어 느낌이 있다. 느낌을 기대어 갈애가 있다. 갈애를 기대어 취착함이 있다. 취착함을 기대어 됨이 있다. 됨을 기대어 태어남이 있다. 태어남을 기대어 늙음과 죽음 (그리고) 슬픔, 눈물, 괴로움, 근심, 번민이 함께 나타난다. 이와 같이 하여 온통 괴롭기만한 괴로움의 근간이 집기하게 된다. 비구들아, 이것이 괴로움의 집기라는 거룩한 진리이다.
그리고 비구들아, 괴로움의 멸진이라는 거룩한 진리란 무엇인가. 밝힘 아닌(무명) 것에 대하여 남음없이 탐착을 떠나 (밝힘 아닌 것을) 멸하게 되면 결함이 멸한다. 결함이 멸하면 식별이 멸한다. 식별이 멸하면 이름과 색이 멸한다. 이름과 색이 멸하면 여섯 포섭처가 멸한다. 여섯 포섭처가 멸하면 부딪침이 멸한다. 부딪침이 멸하면 느낌이 멸한다. 느낌이 멸하면 갈애가 멸한다. 갈애가 멸하면 취착함이 멸한다. 취착함이 멸하면 됨(유)이 멸한다. 됨이 멸하면 태어남이 멸한다. 태어남이 멸하면 늙음과 죽음 (그리고) 슬픔, 눈물, 괴로움, 근심, 번민이 함께 멸한다. 이와 같이 하여 온통 괴롭기만한 괴로움의 근간이 멸하게 된다. 비구들아, 이것이 괴로움의 멸진이라는 거룩한 진리이다.
끝으로 비구들아, 괴로움의 멸진에 이르는 길이라는 거룩한 진리는 무엇인가. 바로 여덟 가지 거룩한 길이 있으니 곧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언어, 바른 직업, 바른 생활, 바른 정진, 바른 기억, 바른 삼매]]가 그것이다. 비구들아, 이것이 괴로움의 멸진에 이르는 길이라는 거룩한 진리이다.
비구들아, “네 가지 거룩한 진리가 있으니 내가 설한 법으로서 어떤 유식한 수행자나 사제들도 비난할 수 없고, 더럽힐 수 없고, 탓할 수 없고, 비난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내가 말하였거니와 (바로) 이것에 입각하여 그렇게 말 한 것이다.”
(붓다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마음이 흡족해진 저 비구들은 붓다의 말씀을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
- 나그네정선달 카페-
*나그네 정선달카페에서 불교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갖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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