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별곡(星山別) / 정 철
성산별곡(星山別曲) / 정 철
[1]
엇던 디날 손이 성산의 머믈며셔
어떤 지나가는 손님이 성산에 머물면서
서하당 식영정 주인아 내 말 듯소.
서하당 식영정 주인아, 내 말을 들으시오.
인생 세간(世間)의 됴흔 일 하건마난
인생 세간에 좋은 일이 많건마는
엇디한 강산(江山)을 가디록 나이 녀겨
어찌 당신은 강산을 갈수록 낫게 여겨
적막 산중의 들고 아니 나시난고
고요하고 쓸쓸한 산중에 들어가 나오시지 않는가?
송근(松根)을 다시 쓸고 죽상(竹床)의 자리 보아
소나무 밑동을 다시 쓸고 죽상에 자리를 만들어
져근덧 올라 안자 엇던고 다시 보니
잠시 잠깐 올라 앉아 어떠한가 다시 보니,
천변(天邊)의 떳난 구름 서석(瑞石)을 집을 사마
멀리 하늘가에 뜬 구름은 서석을 집을 삼아
나는 듯 드는 양이 주인과 엇더한고
나가는 듯 들어가는 모양이 주인의 풍류와 어떠한가?
창계(滄溪) 흰 믈결이 정자 알픠 둘러시니
푸른 시내 흰 물결이 정자 앞에 둘러 있으니
천손운금(天孫雲錦)을 뉘라셔 버혀 내여
천손운금(직녀가 짠 아름다운 비단 곧, 은하수)을 누가 베어 내어
닛는 듯 펴티는 듯 헌사토 헌사할샤
잇는 듯 펼쳐놓은 듯 야단스럽기도 야단스럽구나.
산중의 책력(冊曆) 업서 사시(四時)를 모르더니
산 속에 달력이 없어 네 계절을 모르고 지냈는데
눈 아래 헤틴 경(景)이 쳘쳘이 절노 나니
눈 아래 펼쳐진 풍경이 철따라 저절로 생겨나니
듯거니 보거니 일마나 선간(仙間)이라
듣고 보고 하는 것이 일마다 신선의 세계로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20E52164A3376E96F)
[2]
매창(梅窓) 아젹 벼테 향기예 잠을 깨니
매화가 핀 창문에 비치는 이른 햇빛과 꽃향기에 잠을 깨니
선옹(仙翁)의 해욜 일이 곳 업도 아니하다
선비가 할 일이 없지도 않구나.
울 밋 양지 편의 외씨를 삐허두고
울 밑 양지 쪽에 오이씨를 뿌려두고
매거니 도도거니 빗김의 달화 내니
그것을 매고 돋우고 비올 때는 가꾸어내니
청문고사(靑門故事)를 이제도 잇다 할다
청문고사가 지금도 있다고 하겠구나.
망혜(芒鞋)를 뵈야 신고 죽장(竹杖)을 흣더디니
짚신을 바삐 신고 죽장을 옮겨 짚어가니
도화 픤 시내 길히 방초주(芳草洲)의 니어셰라.
복숭아꽃 핀 시냇길이 방초주까지 이어졌구나.
닷봇근 명경(名鏡) 중(中) 절로 그린 석병풍(石屛風)
잘 닦은 맑은 거울과 같은 물 속에 저절로 그려진 바위 병풍
그림애를 버들 사마 서하(西河)로 함끠 가니
그림자를 벗으로 삼아 서하로 함께 가니
도원(桃園)은 어드매오 무릉(武陵)이 여긔로다
무릉도원이 어디인가, 여기가 별천지로구나
![](https://t1.daumcdn.net/cfile/cafe/110E52164A3376E96E)
[3]
남풍이 건듯 부러 녹음(綠陰)을 혜텨 내니
남풍이 문득 불어 녹음을 헤쳐 내니
절(節) 아는 괴꼿리난 어드러셔 오돗던고
계절을 아는 꾀꼬리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희황(羲皇) 벼개 우희 픗잠을 얼픗 깨니
희황 베개 위에 풋잠을 얼핏 깨니
공중 저즌 난간(欄干) 믈 우희 떠 잇고야
공중에 서 있는 난간이 물 위에 떠 있는 듯 하구나
마의(麻衣)를 니믜 차고 갈건(葛巾)을 기우 쓰고
삼베옷을 걷어 올리고 칡을 만든 두건을 비껴쓰고
구브락 비기락 보난 거시 고기로다.
몸을 구부렸다 난간에 기대었다 하며 보는 것이 고기로구나.
하루밤 비 끠운의 홍백련(紅白蓮)이 섯거 픠니
하룻밤 내린 비에 홍백련이 섞어 피니,
바람끠 업시셔 만산(萬山)이 향긔로다
바람 한 점 없어도 만산에 향기가 가득하구나
염계를 마조보와 태극(太極)을 뭇잡는 듯
염계(주돈이)와 마주보고 우주의 원리를 묻는 듯
태을진인이 옥자(玉字)를 헤혓는 듯
하늘의 선인이 옥자을 헤쳐놓은 듯
노자암 건너보며 자미탄 겨테 두고
노자암을 바라보며 자미탄(개울)을 곁에 두고
장송(長松)을 차일(遮日)사마 석경(石逕)의 안자하니
큰 소나무를 차일 삼아 돌바닥 길에 앉아보니
인간(人間) 유월(六月)이 여긔는 삼추(三秋)로다
인간 세상의 유월이 여기는 늦가을처럼 선선하도다
청강(淸江)의 떳는 올히 백사(白沙)의 올마 안자
푸른 강에 떠 있는 오리들이 흰 모래밭으로 옮겨앉아
백구(白鷗)를 벗을 삼고 잠 깰 줄 모르나니
흰 갈매기를 벗 삼아 잠 깰 줄 모르니
무심코 한가하미 주인과 엇더하니
아무 잡념없이 한가함이 주인과 (비교하면) 어떠한가
[4]
오동(梧桐) 서리달이 사경(四更)의 도다오니
오동나무에 비친 달이 사경(새벽2시경)에 돋아 오르니
천암만학(千巖萬壑)이 나진들 그러할가
많은 바위와 계곡이 낮인들 어찌 그렇게 밝겠느냐?
호주(湖洲) 수정궁을 뉘라셔 옴겨 온고
호주(서호에 있는 섬) 수정궁을 누가 옮겨 온 것인가?
은하를 띄여 건너 광한전의 올랏는 듯
은하수를 건너 뛰어 광한전에 오른 듯
짝 마즌 늘근 솔란 조대(釣臺)예 셰여두고
한쌍의 늙은 소나무는 낚시터에 세워두고
그 아래 배를 띄워 갈 대로 더뎌 두니
그 아래 배를 띄워 가는 대로 던져두니
홍료화(紅蓼花) 백빈주(白빈洲) 어느 사이 디나관데
강가의 붉은 여귀꽃과 하얀 마름꽃을 어느 사이에 지났는지
환벽당(環碧堂) 용(龍)의 소히 뱃머리예 다하셰라.
환벽당 용의 연못(용추계곡)이 배 앞에 닿았구나
청강(淸江) 녹초변(綠草邊)의 쇼 머기난 아해들이
청강 푸른 풀 주위의 소먹이는 아이들이
석양의 어위 계워 단적(短笛)을 빗기 부니
석양에 흥에 넘쳐 조그만 피리를 비스듬히 대고 부니
믈 아래 잠긴 용이 잠 깨야 니러날 듯
물 아래 잠긴 용이 잠깨어 일어날 듯
내끠예 나온 학이 제 기슬 더뎌두고 반공(半空)의 소소 뜰 듯
안개 사이에 나온 학이 제 깃을 벌리고 하늘로 솟아 날아오를 듯하다.
소선(蘇仙) 적벽(赤壁)은 추칠월(秋七月)이 됴타 호듸
소동파의 적벽(소동파가 적벽강에서 뱃놀이를 하고서 지은 글)은 가을 칠월이 좋다고 하나
팔월 십오야(十五夜)를 모다 엇디 과하는고
팔월 십오야를 모두 어찌 칭찬하는가
섬운(纖雲)이 사권(四捲)하고 믈결이 채 잔 적의
엷고 고운 비단같은 구름이 사방으로 걷혀가고 물결이 잔잔할 때
하늘의 도단 달이 솔 우희 걸려거든
하늘에 돋은 달이 소나무 위에 걸려 있으니
잡다가 빠딘 줄이 적선(謫仙)이 헌사할샤
강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빠진 적선(이태백)이 한 짓이 야단스럽구나
![](https://t1.daumcdn.net/cfile/cafe/191084164A3376885C)
[5]
공산의 싸힌 닙흘 삭풍(朔風)이 거두 부러
외롭고 텅빈 산에 쌓인 낙엽을 걷어들이듯 북풍이 몹시 불어
떼구름 거느리고 눈조차 모라오니
떼구름 거느리고 눈조차 몰아 오니
천공(天公)이 호사로와 옥(玉)으로 고즐 지어
조물주가 일 꾸미를 좋아하여 옥으로 눈꽃을 만들어
만수천림(萬樹千林)을 꾸며곰 낼셰이고
많은 나무와 수풀을 다시 꾸며 내는구나
앏 여흘 가리 어러 독목교(獨木橋) 빗겻는듸
앞 여울이 모두 얼어 외나무 다리가 가로 걸렸는데
막대 멘 늘근 즁이 어내 뎔로 갓닷 말고
막대 멘 늙은 중이 어느 절로 간단 말인가
산옹(山翁)의 이 부귀를 남다려 헌사마오
산 늙은이(김성원)의 풍류를 남들에게 떠들지 마시오
경요굴(瓊瑤窟) 은세계(銀世界)를 차자리 이실셰라
경요굴(달나라 아름다운 구슬의 굴=성산) 은세계를 찾아오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걱정되는구나
[6]
산중의 벗이 업서 한기(漢紀)를 싸하 두고
산 속에 벗이 없어 서책을 쌓아두고
만고(萬古) 인물을 거사리 혜혀하니
옛시대의 인물을 거슬러 세어보니
성현(聖賢)도 만커니와 호걸(豪傑)도 하도할샤
성현도 많을 뿐만 아니라 호걸도 많도다
하늘 삼기실 제 곳 무심(無心)할가마는
하늘이 사람을 만드실 때 아주 무심할까마는
엇디한 시운(時運)이 일락배락 하얏는고
어찌 한 시대의 운이 흥했다 망했다 하였는가
모를 일도 하거니와 애달옴도 그지업다
모를 일도 많거니와 애달픔도 끝이 없다.
기산(箕山)의 늘근 고블 귀는 엇디 싯돗던고
기산의 늙은 고불(나이많은 사람) 허유는 귀를 어떻게 씼었던가
박소래 핀계하고 조장이 가장 놉다
표주박 하나도 귀찮다고 떨친 후에 지조행장이 더욱 높구나
인심이 낫 갓타야 보도록 새롭거늘
인심이 얼굴 같아서 볼수록 새로운데
세사(世事)는 구롬이라 머흐도 머흘시고
세상의 일은 구름과 같아서 험하고도 험하구나
엊그제 비즌 술이 어도록 니건나니
엊그제 빚은 술이 얼마나 익었느냐?
잡거니 밀거니 슬카장 거후로니
주거니 받거니 실컷 마시고 나니
마음의 매친 시름 져그나 하리나다
마음에 맺힌 근심이 조금 풀리는구나
거믄고 시옭 언저 풍입송(風入松) 이야고야
거문고 줄에 시욹을 얹어 타니 풍입송 곡조가 끊어지지 않는구나
손인동 주인인동 다 니저 바려셔라.
누가 손님인지 주인인지 다 잊어버렸구나
장공(長空)의 떳난 학이 이 골의 진선(眞仙)이라
넓은 하늘에 떠 있는 학이 이 골짜기의 진짜 신선이라
요대(瑤帶) 월하(月下)의 행혀 아니 만나신가
옥으로 만든 누각 위, 달 아래에서 행여 그 신선을 만나지 않았는가?
손이셔 주인다려 닐오대 그대 긘가 하노라.
손님이 주인에게 말하기를, "그대가 진짜 신선인가?"하고 묻는구나
● <성산별곡> 정리
* 장르 : 가사
* 연대 : 1560년대(작자 25세)
* 주제 : 성산의 풍경과 식영정을 노래
* 배경 : 성산(星山-별뫼)은 송강이 을축사화로 인하여
귀양 다니던 아버지를 따라 10여년간 지냈던
전남 창평 지곡리(현재는담양군 남면 지곡리)이다.
이 가사는 성산의 풍경과 식영정(息影亭), 서하당(棲霞堂)을 중심으로 읊은 것
<성산별곡>은 조선조 사대부들의 전형적인 삶의 한 단면을 보여 준 작품이다.
작품에 관련된 인물들의 생애와 견주어서 좀더 정확히 표현한다면,
16세기 조선조 사대부들의 삶의 한 방식을 드러내 준 작품이라 하겠다.
조선조의 사대부들은 사유의 토지를 생활 근거로 하여 나아가
조정의 관료로서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이념을 실현하고자 하였고,
물러나면 수신제가(修身齊家)에 더욱 힘쓰면서 강호의 처사로서
자연을 벗삼아 여유로운 삶을 누렸다. 바로 이러한 사대부들의 생활의 양면성이
그들로 하여금 관료적 문학과 처사적 문학의 세계를 넘나들게 하였다.
이렇게 토지에 기반을 둔 생활 근거가 확고하게 마련되어 있었으므로
이현보나 송순, 윤선도 등과 같은 여유만만한 강호 생활이 가능했으며,
관료나 처사의 위치에 관계 없이 이른바 귀거래(歸去來)의
강호 생활을 높이 평가하는 관념적 풍조 또한 보편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 이상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성리학의 학문적 성격으로 보아
사대부들의 귀거래의 추구를 결코 그들의 본뜻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들은 현실에서 물러나 자연에 몰입한 듯,
현실에 대한 모든 미련을 떨치고 숨어 지내다가도,
때를 만나 기회만 오면 그 자연을 서슴지 않고 버리고 현실에 뛰어들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