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시식(1) {화 엄 시 식}華 嚴 施 食 화엄이란 온 우주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가 사는 어느 곳 하나 화엄법계가 아닌 곳이 없다. 그러므로 모든 세계는 부처님의 법을 펴는 도량이며, 의식을 집전하고 천도재를 할 수 있는 도량이 되는 것이다. 화엄시식은 법계 곳곳의 수많은 영가들이 본래로 돌아가지 못하고 혹은 자기의 갈 길을 가지 못하고 헤매는 경우가 많다고 보아, 화엄법계 전체의 영가 중에서 인연 있는 영가를 천도하려는 목적이 있다. 관음시식이나 상용영반 등에서는 천도재를 개설하는 재자가 특별하게 정해져 있고 초청하는 영가도 특정적이다. 이에 비해 화엄시식은 천도재를 개설하는 재자도 다수이고 초청하려는 영가도 불특정의 다수를 대상으로 한다. 또한 천도재를 올리는 장소가 규모를 갖춘 여법한 가람이 아니라, 절 이외의 다른 곳일 때 행해진다. 따라서 많은 신도들이 동참기도를 입재하거나 회향할 때 주로 사용하며, 일반적인 기도법회나 상가에서 발인 시에도 쓰인다. 【원문】 ○{거불}擧佛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나무관세음보살}南無觀世音菩薩 {나무대세지보살}南無大勢至菩薩 {나무접인망령인로왕보살마하살}南無接引亡靈引路王菩薩摩訶薩 (3번) ○{착어}着語 {불신충만어법계}佛身充滿於法界 {보현일체중생전}普現一切衆生前 {수연부감미부주}隨緣赴感靡不周 {이항처차보리좌}而恒處此菩提座 ○{청혼}請魂 {거 사바세계}據 娑婆世界 {차사천하}此四天下 {남섬부주}南贍部洲 {해동}海東 {대한민국}大韓民國 {산}山 {사}寺 {청정수월도량}淸淨水月道場 {금차}今此{지성}至誠 ({해당법회}該當法會){지신}之辰 {설향단전}設香壇前 {봉청재자}奉請齋者 {동참재자}同參齋者 {각각등복위}各各等伏爲 {상세선망}上世先亡 {광겁부모}曠劫父母 {누대종친}累代宗親 {제형숙백}弟兄叔伯 {자매질손}姉妹姪孫 {각열위열명영가}各列位列名靈駕 {차사}此寺 {최초창건이래}最初<H7A1>建以來 {중건중수}重建重修 {조불조탑}造佛造塔 {불량등촉}佛糧燈燭 {내지}乃至 {불전내외}佛殿內外 {일용범제집물}日用凡諸什物 {화주시주}化主施主 {도감별좌}都監別座 {조연양공}助緣良工 {사사시주 등}四事施主 等 {각열위열명영가}各列位列名靈駕 {차도량 내외}此道場 內外 {동상동하}洞上洞下 {일체}一切 {유주무주}有主無主{고혼}一切 {제불자등}諸佛子等 {각열위열명영가}各列位列名靈駕 {내지}乃至 {철위산간}鐵圍山間 {무간지옥}無間地獄 {일일일야}一日一夜 {만사만생}萬死萬生 {수고함령등}受苦含靈等 {각열위}各列位{열명영가}列名靈駕 {내지}乃至 {겸급법계}兼及法界 {사생칠취}四生七趣 {삼도}三途{팔난}八難 {사은삼유}四恩三有 {유정}有情{무정}無情 {애혼제불자등}哀魂諸佛子等 {각열}各列{위열명영가}位列名靈駕 {유원 승불신력}唯願 承佛神力 {내예향단}來詣香壇 {동첨법공}同霑法供 {증오무생}證悟無生 ○{공양게}供養偈 {보방광명향장엄}普放光明香莊嚴 {종종묘향집위장}種種妙香集爲帳 {보산시방제국토}普散十方諸國土 {공양일체대덕존}供養一切大德尊 (1배) {우방광명다장엄}又放光明茶莊嚴 {종종묘다집위장}種種妙茶集爲帳 {보산시방제국토}普散十方諸國土 {공양일체영가중}供養一切靈駕衆 (1배) {우방광명미장엄}又放光明米莊嚴 {종종묘미집위장}種種妙米集爲帳 {보산시방제국토}普散十方諸國土 {공양일체고혼중}供養一切孤魂衆 (1배) {우방광명법자재}又放光明法自在 {차광능각일체중}此光能覺一切衆 {영득무진다라니}令得無盡陀羅尼 {실지일체제불법}悉持一切諸佛法 (1배) {법력난사의}法力難思議 {대비무장애}大悲無障 {입립변시방}粒粒遍十方 {보시주법계}普施周法界 {금이소수복}今以所修福 {보첨어귀취}普沾於鬼趣 {식이면극고}食已免極苦 {사신생락처}捨身生樂處 【역문】 ○부처님의 명호를 거듦 거룩한 아미타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대세지보살님께 귀의합니다. 망령을 인도하시는 인로왕 큰보살님께 귀의합니다. ○진리의 말씀 법계에 충만하신 부처님 몸은 일체 모든 중생 앞에 드러내시고 인연 따라 감응하여 두루하시니 늘 머무는 이곳이 보리좌로다. ○인연 있는 모든 영가를 청함 사바세계 이 사천하 남섬부주 해동 대한민국 산 사 청정한 도량에서, 오늘 지극한 정성으로 향단을 마련하고 청하옵는 재자와 동참재자 각각의 먼저 가신 부모와 누대종친, 원근친척 형제숙부, 자매질손의 각각의 모든 영가들과 이 도량을 최초 창건한 이래 중건하거나 중수하거나 불탑을 세우거나 불전에 공양미를 올렸거나 등과 초를 올린 이들, 불전 안팎에 쓰여지는 모든 집기들을 화주하고 시주한 이, 도감 별좌들과 인연 지은 이들이나 양공이 되었던 이들, 네 가지로 시주한 이를 비롯한 모든 영가들과 이 도량 안팎의 위 아래 마을의 주처가 있거나 주처가 없는 외로운 혼의 모든 불자 영가들과 내지 철위산의 다섯 무간지옥에서 하루낮 하루밤에 만 번 죽고 만 번 사는 온갖 고통을 받는 모든 영가들과 더불어 법계의 모든 중생과 네 가지로 태어나는 일곱 갈래의 세계와 여덟 가지 어려움의 지옥아귀축생의 삼악도와 네 가지로 은혜 입은 영가, 삼악도와 팔난에 빠진 일체의 정이 있거나 없는 슬프고 외로운 불자등 각각의 모든 영가들을 청하오니,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이 향단에 내려와서, 다 같이 법공양을 받으시고 무생법인을 깨달으소서.빛을 놓아 향으로써 장엄을 하니 온갖 향연 휘장처럼 드리워지고 시방세계 국토마다 널리 흩어서 두루두루 부처님께 공양합니다. 빛을 놓아 맑은 차로 장엄을 하니 온갖 다향 휘장처럼 드리워지고 시방세계 국토마다 널리 흩어서 두루두루 영가들께 공양합니다. 빛을 놓아 쌀을 내어 장엄을 하니 온갖 향미 휘장처럼 드리워지고 시방세계 국토마다 널리 흩어서 두루두루 고혼들께 공양합니다. 빛을 놓아 부처님 법 가림 없으니 이 광명이 모든 중생 깨닫게 하고 다함없는 다라니를 얻도록 하여 세세생생 모든 불법 지녀지이다. 법의 능력 생각으론 따질 수 없고 대자대비 베푸심엔 장애가 없네. 곡식 낱알 온 세상에 풍성하여서 법계 중생 모두에게 베풀어지네. 오늘 예서 닦여지는 수승한 복은 아귀 나찰 귀신계에 널리 보태져 먹고 나면 심한 고통 모두 면하고 괴로운 몸 버리고서 극락 나소서. 【진행】 거불은 법주와 바라지가 함께 요령과 목탁으로 진행한다. ‘불신게’는 법주가 요령을 세 번 흔들고 혼자서 불신게를 외우면서 ‘이항처차보리좌’에서 요령을 내린다. 거량 및 청혼은 법주가 합장 반배를 하고 나서 청혼문을 낭독한다. 문장을 낭독하다가 ‘영가’를 부르는 부분에서 요령을 한 번씩 내려주고 마지막 ‘증오무생’ 부분에서 요령을 내린다. 공양게는 법주와 바라지가 함께 요령과 목탁을 사용하여 진행하는데 ‘공양일체대덕존’ 하는 부분에서 요령과 목탁을 내리면서 반배를 하면 된다. ‘공양일체고혼중’까지 삼배를 하고 나면 법주와 바라지가 함께 일자목탁으로 십념까지 진행한다. 【해설】 거불을 다른 의식해설에서 극락삼귀의라고 하였다. 모든 의식을 삼귀의로 시작되는데, 어째서 삼귀의로 시작하는가 만약 사람이 어디를 가려면 첫째는 그곳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둘째는 그곳에 가는 방법을 알아야 하고, 셋째는 그 방법으로 가 본 사람이 있어야 그곳이 어디인지, 또 정말 갈 수 있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이렇게 그곳에 간 분과 가는 방법과 그 방법에 의해 간 사람들을 믿고 의지하면 분명히 그곳에 갈 수가 있다. 이것이 삼보로, 삼보에게 몸과 마음을 바쳐 귀의하는 것이다. 피안의 세계인 극락세계가 있고, 그 세계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아미타 부처님과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께 귀의해야 한다. 즉, 아미타불과 관음·세지 양대보살님과 하나로 통해야만 극락세계로 갈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목적, 즉 천도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반드시 제일 먼저 극락삼귀의를 통해 극락세계의 주인들과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 법신게의 ‘불신충만어법계 보현일체중생전’은 ‘법계에 충만하신 부처님 몸은 일체 모든 중생 앞에 드러내시고’라는 말이다. 온 우주는 모두 부처님의 몸이다. 일체 중생 앞에 나타난 모든 것은 또 다시 부처님의 몸 아닌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일체 중생들의 앞에 부처님이 몸을 나투신다고 말하는 것이다. 수행이 미진한 사람은 이 세상을 법계라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중생들은 분명히 중생의 몸과 마음을 갖고 사바세계에 살고 있다. 그런데 사바세계의 모든 현상들이 부처님의 현신이라고 하는 것이다. 불신게는 피안에 이르지 않으면 완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다만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부처님과 조사스님들이 깨달음을 이루고 피안의 세계로 건너가서 한 게송이니 만큼 신앙적인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수연부감미부주 이항처차보리좌’는 ‘인연 따라 감응하여 두루하시니 늘 머무는 이곳이 보리좌로다’이다. 무슨 말인가 이 말은 인연 따라 나에게 나타나는 모든 것은 부처님의 몸 아닌 것이 없으므로, 모든 현상이 진리의 나타남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본래 보리좌, 즉 정각의 자리에 항상 머물고 있는 부처님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망상을 갖고 사는 중생들에게는 엄청난 이야기다. 그러나 한꺼풀 망상을 벗은 차원에서 보면 너무나 자연스런 이야기이다. 설사 한꺼풀을 벗지 않았더라도 나타나는 모든 것은 다 진리이기 때문에 한치의 오차도 없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죄를 지으면 죄업이 쌓여서 괴로움이 오고, 착한 일을 행하면 선업이 쌓여서 복이 온다. 망념과 망상을 벗어 버리면 피안의 세계가 나타나고, 망념과 망상을 뒤집어쓰면 중생이 사는 사바세계이다. 번뇌를 가진 중생에게는 아무리 위대한 부처님이 계시다고 해도 부처님이 부처로 보이지 않는다. 제가 가진 틀대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화엄시식에서는 시식의 벽두에서부터 그런 틀을 때려 부숴버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야만 광활한 화엄법계를 대상으로 천도를 행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차원에서 화엄시식은 깨달은 사람이 아니면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의식이라고 할 수도 있다. 화엄시식은 다른 시식과는 달리 거량과 창혼 그리고 청혼이 별도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함께 뭉뚱그려 있다. 시식의 시작에는 천도재를 개설하는 청정도량의 이름을 아뢰고, 그 다음 재자들의 주소, 성명을 아뢰고, 천도의 대상인 영가들을 청하고, 더 확대하여 화엄법계 내의 모든 영가들과 삼생에 걸친 모든 인연 있는 영가를 청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을 모두 함께 청해서 영원히 태어남이 없는 법, 즉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어 생사해탈 하라는 주문이 따른다. 내가 존재하는 원인과 결과를 살펴보고 나에게 주어진 은혜를 생각하면, 기실 법계 내의 모든 존재는 나와 관련되어 있다. 좋은 인연은 좋은 인연대로, 나쁜 인연은 나쁜 인연대로 연관지어져 있는 것이다. 좋은 인연만 나에게 은혜를 미친 것이 아니라, 나쁜 인연도 나의 스승이거나 나의 업장을 소멸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함없는 모든 화엄법계 내의 중생들을 대상으로 화엄시식을 하는 것이다. 청혼문의 구체적인 해설은 다른 시식에서 해설하였으므로 다시 이야기하지 않는다. 공양하는 게송의 내용을 보면 향과 차와 쌀과 함께 법공양을 이야기한다. 향은 진리의 표현으로 성현에게 올리는 정제된 공양이요, 차는 목마른 자에게 필요한 공양이요, 쌀은 배고픈 자에게 필요한 공양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 공양은 육신에 올리는 공양이요, 네 번째로 올리는 법공양은 육신에만 머무르지 않고 일체 중생들의 망념과 망상을 벗겨내는 진리의 공양이다. 이 네 공양을 한정적인 곳에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곳에 평등하게 태양 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듯이 시방세계 전체에 뿌린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빛을 놓아 장엄한다’고 하는 것이다. ‘법력난사의 대비무장애’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청천벽력같은 진리의 말씀이다. 법의 힘은 실로 무섭고 생각으로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대비(大悲)가 되려면 법에 의지해서 ‘나’가 없어야 되기 때문이다. 내가 있는 유아(有我)법은 바라는 것이 있어 장애가 생긴다. 그 바람이 되돌아오지 않을 때는 원망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너와 내가 있는 상대적인 곳에서는 대자대비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너와 내가 둘로 나누어진 경계, 나는 부처, 너는 중생으로 나누어진 경계에서는 상호 간에 장애가 있기 마련이다. 이런 분별이 있으면 부처상이 있어 아직 참부처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강경』에서는 ‘부처님이 한 중생이라도 제도한 바가 있으면 부처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또 ‘그렇게 말하는 자는 부처를 비방하는 자’라고 극언하고 있는 것이다. 법에 의해서 망상을 없애버린 상태, 즉 나를 위해서 행함이 없는 상태가 되어야만 한다. 진정으로 내가 없어져야만 열반의 네 가지 덕인 상락아정(常樂我淨)이 된다. 이와 같이 일체의 시비분별이 끊어져 하나된 곳에 도달해야만 장애가 끊어진다. 이런 마음으로 시식을 하니 뿌리는 공양의 조그만 알알이 시방에 두루한다. 그래야만 법계에 두루 펼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법계 내의 귀신세계는 이미 귀신세계로서의 가치를 상실한다. 귀신세계가 있는 것은 내 속에 망념 망상이 있기 때문이다. 내 속에 진정으로 망념 망상이 없으면 그가 있는 곳이 바로 그대로 실상세계요, 극락세계요, 피안의 세계인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망령된 몸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허깨비이며 생사가 없는 줄을 알아, 참나가 되어 아집에서 벗어나 극락세계에 가서 즐거움을 누릴 수가 있다. 망상이 있는 자가 극락에 가면 그 극락은 망상 때문에 다시 더러워지거나 이미 그곳은 극락이 아닌 곳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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