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수경 스님
사부대중 여러분! 저는 오늘 자비문중에 귀의한 수행자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 벅찬 환희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땅에 아직 자비와 정의가 시퍼렇게 살아있다는 것을 장엄하게 보여 주는 보살의 진면모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나 평화로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국민들의 절규를 철저히 외면하고, 인간적 자존감마저 짓밟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하지만 먼저 우리는, 이런 세상을 만든 공업 중생으로서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입니다. 불자들만이라도, 아니 최소한 스님들만이라도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았더라면 세상이 이 지경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부대중 여러분! 지금 우리 사회는 대통령 한 사람의 비뚤어진 가치관이 어떻게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는지를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대기업과 부자 위주의 정책은 빈부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소위 이명박식 자본주의를 표현하는 ‘실용주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 자본주의’라는 것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교육자율화라는 이름으로 한창 뛰어놀 초등학생들에게도 살인적 경쟁을 부추깁니다. 부모의 경제력이 곧 성적으로 결정되는 교실을 만듦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의 꿈과 희망마저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네티즌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마저 꽁꽁 틀어막고 있습니다. 방송의 공익 기능을 부정하고, ‘민영’이라는 명분으로 공영방송 체제를 허물어 오로지 상업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방송 체제 구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권력과 언론의 유착이 아니라 ‘권력과 언론의 일체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 기도는 군부 독재 시절의 ‘언론 탄압’보다 더 위험합니다. 언론의 공익적 기능을 마비시키는 데 궁극적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경쟁과 효율을 구실로 공기업 개혁을 들먹이지만 제사람 자리 나눠주기에 더 혈안입니다. 수돗물마저도 민간에 넘겨 ‘물’조차도 마음대로 먹기 힘든 세상을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물값이 오를 것은 뻔하고 그 이익은 기업에 돌아갈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에게 서민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오로지 대기업과 부자들만 있을 뿐입니다. 경제 살리기를 명분으로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른 대기업 총수까지 다 풀어 주었습니다. 이것이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는 ‘기업 프렌들리’의 실체입니다.
사부대중 여러분! 현재의 국정 난맥상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는 여러분도 잘 알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입니다. 국민과의 소통은 아예 기대를 접더라도 총리와 장관들마저도 대통령과 소통을 포기하고 눈치만 살피는 형국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검찰과 경찰이 대통령 1인의 시녀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절대 권력자가 임명권을 쥐고 흔드는데, 누구보다도 권력 지향적인 검찰과 경찰의 수뇌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의사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국민에게 현상금을 거는 토끼몰이식 강격 진압밖에 없을 것입니다.
의회를 장악한 여당도 대통령 눈치 보기에만 급급한 모습입니다. 사법부마저도 가파른 보수적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들이 소위 말하는 헌법기관인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삼권 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습니다.
사부대중 여러분!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 최소한 인간적 품위와 자존을 지키려는 국민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마치 ‘난폭한 주인이 노예 부리듯’ 국민을 대합니다.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과 그를 옹호하는 세력들은 선거 절차를 거쳤다는 것만으로 반민주성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다 알다시피 오늘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는 87년 6․10 항쟁에서 흘린 민중의 피와 땀의 결과입니다. 현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6․10 항쟁도 당시 정권의 입장에서는 명백한 불법 시위였습니다. 이명박 식 법률 해석에 따르면 현 정부 또한 불법 행위의 기반 위에 서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지금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 피와 땀으로 이룬 민주주의의 성과에 무임승차하고는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명박 정부는 국민에게 준법을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대통령 자신은 물론 ‘강부자’, ‘고소영’으로 표현되는 내각의 구성원 대부분은 온갖 탈법과 편법을 저지르면서 오늘의 부와 권력을 차지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어떻게 국민들이게 ‘준법’이라는 이름으로 무조건적 복종을 강요할 수 있습니까? 이명박 대통령은 독재 권력의 비참한 말로를 보여 준 전두환 노태우 씨에게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변신술은 참으로 용렬하기 짝이 없습니다. 촛불 정국 때 두 번이나 국민 앞에 사과를 한 일이 아직도 생생한데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돌변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이명박 정권과 한몸을 이룬 기득권층의 면면을 살피면 답이 보입니다.
경제적 최상위층, 족벌 재벌, 극우 보수 언론, 권력 지향적 관료, 정부 권력 기관,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는 국회의원 그리고 일부 극우 보수 개신교 집단입니다. 특히 일부 보수 개신교 집단은 이명박 대통령의 배제와 배타의 분열주의를 강화시킵니다. 지난 부시 미 대통령 방한 때 자발적 시민들이 모인 반대집회보다 소위 맞불 집회를 연 개신교 목사의 동원 군중을 더 크게 바라보면서 천군만마를 얻은 듯 득의양양하는 모습은 측은지심마저 느끼게 했습니다.
사부대중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선과 종교편향을 규탄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만 그것이 궁극의 목표일 수는 없습니다. 개신교 편향에 대해서 지나친 피해의식을 가져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의 의도에 휘말리는 일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편향된 국정운영을 함으로써 자신의 지지기반을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국민을 분열 시키는 것으로 정국을 돌파하고 공포 정치로 국민을 억압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우리들의 이 모임은 불교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한 참회와 발원의 도량이어야 합니다. 한 번 냉정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이 모임 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사과를 하고, 어청수 경찰청장이 물러난다 한들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대통령이 근본적으로 국정 운영 철학을 바꾸지 않는 한 독선의 내성만을 키울 것입니다. 촛불 사과 이후 더욱 국민을 적대시하는 태도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이 기회에 주변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자영업자들은 IMF때보다 더 어렵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갈수록 늘어나는 비정규직은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습니다. 서민들의 가계 또한 날로 힘들어지는데 사교육시장은 춤을 춥니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대책은 찾아 볼 길이 없습니다. 오직 경제를 강조하며 대기업과 부자 위주의 정책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수출 주도형 산업 구조에서 대기업의 중요성을 100%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중소기업이나 하청업체, 비정규직 종사자들과의 임금 격차와 이에 다른 상대적 박탈감은 성장론의 비인간적 실체를 말해 줍니다. 이런 양극화의 심화 과정에서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는데도 감세 정책을 펴겠답니다. 이런 정책은 결과적으로 대기업에도 부자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내수시장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현재 이명박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을 견제하는 데 불교계가 앞장을 서야 합니다. 불사를 구실로 적당히 정권과 타협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불조를 욕되게 하는 일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민주주의와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대작 불사일 것입니다.
이번 모임을 계기로 불교계는 오로지 부처님 가르침에 입각하여 온 생명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이명박 대통령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진심어린 대국민 사죄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더 늦기 전에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대통령도 살고 국민도 살 길입니다. 국민과 대통령이 적대감을 가진 상태에서 대통령의 권력이 무슨 소용입니까? 대통령을 부정하는 국민 또한 행복할 수 없습니다.
부디 이명박 대통령은 결자해지의 차원에서, 기득권층과 일부 극우 보수 개신교 세력의 그늘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근본주의적 개신교 장로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의 대통령으로 환골탈태하시기 바랍니다.
사부대중 여러분! 저는 오늘 이 모임 이후, 더 이상 불자들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위하여 오체투지의 길을 나설 것입니다.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서 지리산에서 계룡산을 거쳐 묘향산까지, 수행자로서 제 삶을 반조하고 이 땅 모든 생명의 평화를 기원하는 오체투지의 기도를 할 것입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 길을 갑니다.
부처님의 자비가 온 누리에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