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07.28 20:38 / 수정 : 2008.07.29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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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12' 이후 신군부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다. 그 무렵 군 장성들이 모인 한 파티에서 가수 윤형주가 '두 개의 작은 별'을 불렀다.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에서 한껏 고조됐던 좌중의 분위기는 그 다음 가사에서 갑자기 싸늘하게 변했다고 한다. "별이 지면 꿈도 지고 슬픔만 남아요…."
1980년 5월 31일 신군부의 주도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가 발족했고 보안사령관 전두환(全斗煥)이 상임위원장을 맡았다. 이 막강한 기관은 사실상 정권 장악의 전(前)단계였다. 국보위는 7월 9일 고위 공무원 232명을 숙정했고 30일에는 과외 금지 조치를 발표했으며, 8월부터 11월까지 '불량배 소탕'을 명분으로 3만8000여명을 군사시설 '삼청교육대'에 수용했다. 삼청교육대는 상당한 인권유린이라는 논란을 낳았다. 8월 8일에는 AP통신이 "미국은 전두환 장군이 합법적으로 대통령이 된다면 지지할 것"이라는 미국 관리의 말을 보도했다. 그 익명의 관리는 존 위컴(Wickham) 미8군 사령관이었음이 나중에 밝혀졌다.
- 1981년 3월 3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12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전두환 대통령과 부인 이순자씨가 참석 인사들의 박수에 답례하고 있다.
- 이제 전두환을 견제할 세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대통령 최규하(崔圭夏)는 8월 16일 하야 성명을 발표했고, 국무총리서리 박충훈(朴忠勳)이 보름 동안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했다. 22일 예편한 전두환은 유신헌법에 의해 9월 1일 제11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11일, 김대중(金大中)에게 내란음모죄 등으로 사형이 구형됐다. 29일, 국보위의 주도로 마련된 헌법 개정안이 공고됐다. 새 헌법은 통일주체국민회의가 대통령선거인단으로 바뀌었을 뿐 '대통령 간접 선거'라는 점에서는 유신헌법과 비슷했지만 '대통령 임기는 7년이되 중임(重任) 불가'라는 점이 달랐다. 현직 대통령이 이미 전두환인 상황에서 국민들이 제5공화국 헌법에 높은 찬성률을 보인 것에는 '유신 대통령보다는 7년 단임이 낫다'는 뜻이 있었다고 훗날 사람들은 분석했다.
- 제5공화국 헌법 공포를 보도한 1980년 10월 28일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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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헌법이 공포되던 10월 27일, 계엄군이 '비리 조사'를 구실로 전국 사찰에 투입돼 승려들을 연행·폭행하고 서류를 압류한 '10·27 법난(法難)'이 일어났다. 11월 하순에는 전국 신문·방송·통신사 45개사의 매체를 없앤 언론통폐합이 단행돼 TBC는 KBS에, 신아일보는 경향신문에 흡수 통합됐다. 전두환이 선거인단 5271명 중 90.2%의 지지로 제12대 대통령에 취임한 것은 해를 넘긴 1981년 3월 3일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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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 9월 1일 제11대 전두환 대통령의 취임식을 담은 대한뉴스 동영상. 이 시리즈의 다른 동영상도 마찬가지지만, 이 동영상을 여기 게재하는 것은 역사의 한 장면을 다시 되돌아본다는 의미일 뿐, 결코 특정인에 대한 찬양이나 비하의 목적에서가 아님을 밝힙니다. 동영상 내레이터의 발언 내용은 본 기사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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