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실/역사의기록

[사진으로 본 '건국 60년, 60대 사건'] [17] 광부·간호사 西獨으로 가다

淸潭 2008. 7. 7. 16:28
  • [사진으로 본 '건국 60년, 60대 사건'] 독(獨)탄광서 울어버린 박(朴)대통령
  • [17] 광부·간호사 西獨으로 가다
  •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입력 : 2008.07.02 02:47 / 수정 : 2008.07.02 06:12
    • 1963년 11월 14일자 조선일보는 "'루르'에의 길은 고되다"는 제목으로, 곧 서독으로 떠나게 될 광부들이 하루에 10시간씩 휴일도 없는 강행군 실습을 벌이고 있다는 내용을 전했다. 당시 국민 소득 87달러, 인구 2400만 명에 실업자는 250만 명이 넘었으며, 종업원 200명 이상의 기업은 54개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광부 파독(派獨)은 실업 해소와 외화 획득을 위한 돌파구였다.

      2800여 명의 지원자가 몰려 367명이 최종 합격했고, 신문마다 이들의 명단을 사법시험 합격자처럼 지면에 냈다. 대졸자가 20%나 돼 '신사 광부'라 불렸다. 1963년 12월 21일 1진이 출국했다. 지하 1000m에서 30도의 지열이 뿜어져 나왔고 작업 도구는 50㎏이나 됐다. 3년 뒤 이들이 귀국했을 때 대부분 골절상을 겪은 다음이었다. 마지막 출국자까지 합치면 모두 8300여 명의 한국 광부들이 서독에서 일했다.

      간호사의 서독 파견도 이 무렵 시작됐다. 1962년 20여 명의 간호학생들이 파견됐고,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만300여 명의 간호사들이 서독으로 건너갔다. 1973년 서독 전체 병원에서 일하는
      한국 간호사는 6000명이 넘었다. 이들은 노인 환자들에 대한 극진한 간호와 민첩한 업무처리로 현지에서 찬사를 받았다.
    • 서독 요하네스 크랑켄하우스 병원에 취업한 한국 간호사들. 이들은 친절하고 성실해 현지에서 호평을 받았다. 조선일보 DB
    • 1964년 12월 10일, 광부와 간호사 300여 명이 루르 지방의 함보른 탄광회사 강당으로 모여들었다. 서독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이곳을 찾았던 것이다. 당시 통역관이던 백영훈의 회고에 따르면, 광부 밴드가 애국가를 연주했는데 "대한사람 대한으로…" 부분에선 흐느낌 때문에 더 이상 노래가 들리지 않았다. 대통령은 연단에 올랐다. "조국의 명예를 걸고 열심히 일합시다.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해 남들과 같은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닦아… 놓읍…." 연설은 중단됐다. 장내를 가득 메운 울음소리가 전이(轉移)돼 대통령마저 울어 버렸기 때문이다. 영부인과 수행원들도 모두 울었다. 광부와 간호사들의 송금액은 연간 5000만 달러로 한때 GNP(국민총생산)의 2%에 달했다.

    • 서독 파견 광부들의 출발 모습을 기록한 1963년의 대한뉴스. /유석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