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한 순간이라도 청정한 마음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염(念)하면 한 보리도량(菩提道場)이 이루어지니 칠보(七寶)로 보배탑을 조성하는 것보다 그 공덕이 더욱 수승합니다. 보배탑은 마침내 부서져 티끌이 되지만 한 순간 염불하면 아미타불의 원력으로 정각(正覺)을 이루게 되고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極樂世界)에 왕생(往生)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육자(六字)의 뜻을 설명드리자면, 우선 나무는 범어(梵語)로 나모(Namo), 나마스(Namas)이며 귀의(歸依), 귀명(歸命)으로 목숨을 바쳐서 돌아간다는 의미입니다.
귀의의 뜻을 세부적으로 나누어보면,
첫째, 나의 신명(身命)을 바쳐서 부처님께 돌아간다.
둘째, 나의 신명을 바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른다.
셋째, 나의 신명을 바쳐서 생명의 근원에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또 아미타불에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데,
첫째, 아미타바(Amitaba)로 무한한 광명의 바다, 즉 무량광(無量光)이고,
둘째, 아미타유스(Amitayus)로 영원한 생명의 바다, 즉 무량수(無量壽)이니 아미타불이라는 무량광으로 끝없는 우주 공간과 지혜, 무량수로 영원한 시간과 자비의 상징인 부처님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아미타 부처님은 모든 부처님의 마음이시며 청정한 불성이시며, 진리의 본성이시며, 생명의 실상인 것입니다.
신라시대에 의상 스님(義湘 大師)께서는 아미타 부처님을 원불(願佛)로 모시고 늘 정토발원(淨土發願: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기원함)을 하시면서 서방정토에 아미타 부처님께서 상주하심을 믿고 의지하여 항상 어디서든 서방을 등지고 서거나 앉거나 누운 적이 없었습니다. 한번은 의상 스님의 문도(門徒) 중에서 계(戒)를 범한 제자가 있어서 산문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는 세속에 살면서도 스승인 의상 스님을 흠모하여 스님의 목상(木像)을 조성하고 조석으로 문안을 지성껏 드렸는데 하루는 스님께서 그 소식을 접하시고 제자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진실한 마음으로 나를 섬겼다면 나는 일생 동안 아미타 부처님께서 계시는 서쪽을 등지지 않고 살아왔으니 목상이라도 그리 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제자가 의상 스님의 상을 움직여 서쪽을 등지게 돌려보시니 목상이 스스로 움직여서 다시 서쪽을 향했습니다. 의상 스님과 대중스님들은 그 제자의 정성을 가상하게 여겨서 죄를 용서하고 다시 산문에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의상 스님께서 그토록 그리워하시던 극락정토가 어떤 곳인지 박(薄)한 수준이지만 아는 대로 말씀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극락정토는 아미타 부처님의 본원(本願)으로 건립된 정토인데 불법(佛法)이 수승하고 안락한 국토로서 탁(濁)하고 괴로운 것이 없는 맑고 즐거움만 있는 세계로 영원한 낙토(樂土)입니다. 때로는 안양(安養), 안락(安樂), 안온(安穩), 묘락(妙樂), 무위(無爲), 청정토(淸淨土), 서방정토(西方淨土), 불회(佛會), 열반성(涅槃城), 진여문(眞如門),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밀엄국(密嚴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라고도 하는데 사바세계에서 서쪽으로 십만 억 국토를 지나가면 있는 불국정토입니다.
또한 유심정토(唯心淨土) 유심미타(唯心彌陀)라 하여 정토가 다 이 마음 안에 있는 것으로 일체만유(一切萬有)가 모두 일심(一心)이 지어낸 것이라고 하는데 특히 선종(禪宗)에서 강조하는 이법(理法)입니다.
원효 스님(元曉 大師)께서는 유심안락도(遊心安樂道)에서 “중생의 심성(心性)은 융통자재하여 장애가 없고 허공과 같이 태연하고 대해(大海)와 같이 심연(深淵)하다. 그러므로 본체(本體)가 평등하고 본성(本性)이 윤활하여 별상(別相)이 없고 동정(動靜)도 없다. 혹 진풍(盡風)으로 오탁(五濁)이 생긴다 하여도 각(覺)으로써 말할 때는 예토(穢土)와 정토, 생사와 열반이 모두 일심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려 극락세계는 마음 쓰기에 따라서 지금 이곳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 나라는 선종의 영향력으로 유심정토사상을 중요시하여 정토수행의 요지(要旨)로 삼는 데 비하여 처음 불교가 전래되었던 가야시대나 삼국시대에는 서방의 극락세계에 왕생하기 위해서 염불을 했던 기록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일연 스님(一然 大師)께서 쓰신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보면 “신라 경덕왕 때 욱면(勖面)이라는 귀진(貴珍)의 여자 노비가 있었는데 욱면은 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에 동참한 귀진을 따라서 미타사(彌陀寺)에 다니면서 졸리면 손바닥에 구멍을 뚫고 실을 걸어서 나무에 매놓고 지성껏 ‘아미타불’을 염했다. 그런데 하루는 기도 도중에 욱면의 몸이 솟구쳐 법당 지붕을 뚫고 서쪽 하늘로 올라가다 소백산에 이르러 신 한 짝을 떨어뜨리고 그 산기슭에 육신을 남기고 왕생극락하였다. 후에 사람들이 신이 떨어진 자리에 보리사(菩提寺)를 짓고 육신을 남긴 자리에 제 2보리사를 짓고 법당의 이름을 욱면등천지전(勖面登天之殿)이라 하였는데, 욱면이 날아가면서 뚫린 열 아름이나 되는 미타사 법당의 구멍은 눈비가 내려도 젖지 않았다.”고 적혀 있습니다.
또 “혜공왕 때에는 금강산 건봉사에서 만일회를 열어 2백여 대중이 모여서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다 그 중 31명의 스님께서 기도 회향일에 서방의 극락세계를 향하고 앉아서 합장한 채 열반에 드셨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 후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분들이 아미타 부처님을 의지해서 편안하게 살다 편안하게 가셨으니 염불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급한 것이 또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 좋은 염불을 누가 말린다고 안 할 것입니까? 그저 부지런히 최선을 다해서 염불할 뿐입니다. 염불만 열심히 하면 업장도 소멸되고 복도 자라고 도(道)도 통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도 “나는 일찍이 수행할 때에 염불로써 무생법인(無生法忍)에 들었다.”라고 능엄경(楞嚴經)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부디 대중들께서는 일념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셔서 세상 가운데 밝은 빛이 되고 모든 생명들 가운데서 향기로운 연꽃으로 피어나십시오.
항상 염불하는 이 몸이 연화대가 되어서 아미타 부처님을 모시고 다니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영원히 서방정토를 향해 정진하십시오.
부디 극락왕생합시다.
- 아미타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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