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인곡당(법장스님)

[법장스님법문] 정성을 다하여

淸潭 2008. 3. 2. 18:54

정성을 다하여

 

화엄경(華嚴經)에 이르시기를, “믿음(信)은 도(道)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로서 모든 선(善)의 뿌리를 길러낸다”고 하셨습니다. 진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수행문(修行門)으로 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재산이 됩니다.
금일 대중 가운데 지금은 비록 어리석은 불자(佛子)이나 스스로 어리석은 줄 알아서 부처님을 굳게 믿고 그 가르침을 따라서 부지런히 수행하면 훗날 기필코 도를 이루어 대자유인(大自由人)이 될 것이요, 또 지금은 복과 명예와 지식이 있는 불자(佛子)라도 스스로 지혜롭다고 자만해서 남을 업신여기고 수행을 게을리 하면 영원히 중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믿음과 겸손은 흐린 물을 맑게 해주는 마니보주(摩尼寶珠)와 같아서 우리의 탁(濁)한 업(業)을 씻어주는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보배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맑은 물에만 산천초목의 모습이 그대로 비춰지고 깨끗한 거울에만 우리의 모습이 생긴 그대로 비춰지는 법이니 기도를 할 때는 오직 번뇌 망상 없는 천진(天眞)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간절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한 순간만이라도 오직 관세음보살님을 생각하면 관세음보살님께서는 우리의 업을 다 아시기에 우리의 업장(業障)을 소멸해 주시지만, 만일기도(萬日祈禱)를 하면서도 믿음이 얕고 뜻이 바르지 않거나 정밀(精密)하게 이어가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원(願)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본래 도(道)에는 멀고 가까움이 없고 부처님의 가피에는 빠르고 더딤이 없으나 기도드리는 불자들에게 간절함과 안일함이 있기 때문에 기도성취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기도자 개인에 따라 업에도 차이가 있고 원에도 차이가 있고 정성에도 차이가 있다 보니 자연히 사람에 따라 차이가 다르게 보이고 절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명호(名號)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경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이지 근본에는 털끝만치도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게으르고 어리석은 불자님들이 공연히 무리를 지어서 영험(靈驗)을 운운하며 도깨비불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몰려다니는 것입니다.
영명 스님(永明禪師)께서는 “믿기만 하고 알지 못하면 무명(無明)이 더욱 자라고, 알기만 하고 믿지 않으면 삿된 소견이 더욱 자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가르침을 잘 생각해 보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려면 믿음과 앎이 서로 겸해져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를 하더라도 경전을 읽고 배우면서 정진해야지 바른 원에 바른 행을 이루는 것이지 무조건 각자의 생각만으로 기도를 하면 자신에만 치우치는 어리석음에 빠지게 됩니다.
저는 오늘 ‘관세음보살님’에 대하여 법화경(法華經)의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의 말씀을 토대로 하여서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보문품에 보면 부처님께서 무진의보살(無盡義菩薩)님에게 이르시기를 “관세음보살님은 사바세계의 중생이 고통이 있을 때 일심으로 관세음보살님의 명호를 부르면 관세음보살님께서 당신의 명호를 부르는 자의 마음을 잘 관찰해서 모든 고통을 제거해 주신다”라고 하셨습니다. 또 언제 어디서나 관세음보살님께 일심으로 공양(供養)드리고, 일심으로 예배(禮拜)드리고, 일심으로 칭명(稱名)하면 칠난(七難)과 삼독(三毒)을 소멸하고 이구(二求; 자·녀)를 성취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칠난의 소멸이란,
첫째, 화난(火難)으로 불을 만나도 불의 난을 당하지 않고,
둘째, 수난(水難)으로 큰 물 바다, 강에서도 물의 난을 당하지 않고,
셋째, 풍난(風難)으로 폭풍을 만나더라도 바람의 난을 당하지 않고,
넷째, 험난(險難)으로 험악한 지중에 이르더라도 난을 당하지 않고,
다섯째, 귀난(鬼難)으로 일체 악귀, 잡귀, 귀신을 만나더라도 난을 당하지 않고,
여섯째, 옥난(獄難)으로 일체 감옥에 갇히는 난을 만나더라도 화를 당하지 않고,
일곱째, 적난(賊難)으로 많은 도둑들을 만나더라도 화를 당하지 않는 것을 말하며,
삼독의 소멸이란 첫째, 탐심(貪心)이 마음 속에 꽉 차 있더라도 관세음보살님께 기도하면 탐심이 저절로 없어지는 것이며, 둘째, 음욕(淫欲)이 많은 사람이라도 관세음보살님께 기도하면 음욕이 저절로 없어지는 것이며, 셋째, 어리석음(疑心)이 많다고 하더라도 관세음보살님께 기도하면 어리석음이 다 없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관세음보살님께 정성을 드리면 온갖 두터운 업장이 소멸될 뿐만 아니라 자녀를 원하면 복덕이 구족하고 단정한 남아(男兒)나 효순한 여아(女兒)를 얻을 수 있으니 이를 일러 이구를 성취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는 관음신앙(觀音信仰)이 뿌리가 깊어서 전하여지는 영험설화(靈驗說話)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우선 제가 사는 덕숭산 수덕사(德崇山 修德寺) 대웅전(大雄殿)의 창건연기(創建緣起)도 관음영험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덕사는 관세음보살님께서 수덕(修德) 각시로 화현해 오시어 화주(化主)가 되어서 건립하신 것입니다.
또 저 설악산 오세암(五世庵)은 5세의 동자가 한해 겨울 동안 혼자 지낸 도량인데 이는 관세음보살님께서 여인으로 화현하시어 동자에게 밥과 젖을 먹이며 보살펴 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도 늘 관세음보살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살아가는데 제 자신이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로 오늘 이 자리에까지 앉게 된 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몇 년 전에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기적적으로 살아서 병실에 있을 때 일입니다. 그 때 제게 찾아오시는 분마다 쉬기를 권했고 의사선생님께서도 단호하게 절대 안정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관세음보살님께 발원한 것을 이루어야 된다는 집념으로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곧장 주지실로 돌아와서 불사를 계속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수덕사 주지 임명을 통보받고 진산식(晉山式) 날을 정하고 칠일간 관세음보살님께 기도를 드리며 발원하기를 “관세음보살님이시여, 제가 중창불사(重創佛事)를 하다가 살이 녹아내리고 뼈가 달아서 빠져도 제 마음 속에 그려온 수덕사의 불사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결코 물러서지 않겠사오니 업이 많은 이 중생을 어여삐 여기시어 모든 장애를 소멸하여 주시고 불사가 원만하게 회향되도록 가피를 주시옵소서.”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평생을 부처님 덕에 살아온 제가 어떻게 관세음보살님께 스스로 발원하고 맹세한 것을 어길 수 있었겠습니까? 남이야 뭐라 하든 산소호흡기를 꽂아가며 죽을 보온통에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더욱 불사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어차피 떠나야 할 운명이라면 서원을 지키다 가야 한다는 생각과 또 한편으론 병고(病苦)가 단명(短命)과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지내다 보니 불사도 원만히 이루어져가고 건강도 차차 회복되었습니다. 금생에는 비행기를 타서는 안 된다고 의사선생님께서 말씀하셨으나 불사를 위해서 꼭 타야 할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미리) “관세음보살님…” 하며 기도하고 타니 비행기를 타도 별 무리가 없었고, 뜻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 누구보다도 왕성한 활동을 하며 지내게 되었는데 이 모든 것이 관세음보살님의 가호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관세음보살님의 은혜로 덤을 얻어 산다는 생각으로 남은 인생은 관세음보살님을 찬탄하는 불사에 바치려고 합니다.
그럼 다시 관세음보살님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반야심경(般若心經)에 보면 관세음보살님을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님이라고 하는데 왜 그런가 평소 궁금하게 생각하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뜻을 살펴보면 비관자관(悲觀慈觀)으로 중생에 응(應)하시는 덕에 의하여 말하는 연고로 관자재보살님이라고 하며 또한 진관정관(眞觀淨觀)으로 마음을 비추시는 공(功)에 의하여서 관자재보살님이라 합니다.
천수경(千手經)에는 관세음보살님의 신통묘용(神通妙用)을 찬탄한 ‘신묘장구대다라니(神妙章句大陀羅尼)’가 있는데 예로부터 이 다라니를 주력하여서 신통가피(神通加被)를 얻은 분이 많이 계신데 구한말 동학사 조실(東鶴寺 祖室)로 계시던 경봉 강백(鏡峯 講伯) 스님께서는 평생 동안 한 번이라도 들으신 것은 잊어버리지 않는 불망념지(不忘念智)를 얻으셔서 항상 책 없이 강의를 하셨다고 합니다.
기도만 열심히 하면 무엇인들 못 이루겠습니까? 우리가 기도를 열심히 하지 않고 바라기만 하는 것이 꼭 떡 설게 쪄놓고 밥 설게 쪄놓고 상대에게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인사 받으려는 것과 같으니 성취가 원만히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는 처음 시작하는 그 마음으로 끝까지 해야 되는데 높은 사다리에서 처음에는 조심조심 내려오다가 한두 칸 남겨놓고 홀짝 뛰어내려서 발목 삐고 뒤로 홀랑 자빠지듯이 뭔가 좀 잘 되어간다 싶으면 그만 안일에 빠져 기도를 쉬어서 스스로 장애를 일으켜서 고통을 받게 됩니다.
기도란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면밀히 이어서 해야지 조금 하고서 ‘이만하면 되겠지’하고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떡이 설 때는 다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정성을 다하면 법(法)도 통하고 모든 세계의 관세음보살님과도 다 통하게 되어 있으니 나의 정성이 부족함을 항상 살피고 걱정해야지 관세음보살님의 가피가 있고 없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어린아이가 배고파 울 듯이 전후사정 생각 없이 기도만 하십시오.
아무쪼록 오늘 법회에 동참하신 불자님들께서 항상 관세음보살님과 일체 중생에게 정성을 다하는 수행을 하셔서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를 입으시고 지혜와 복덕이 구족하여 지시기를 축원하면서 이만 단에서 내립니다.  

- 관음재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