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의 진실/진실밝히기

[스크랩] 판펌]한학수와 최승호는 황박사님에게 무릎꿇고 사죄해야한다

淸潭 2008. 1. 30. 17:57
 
정신분석학적으로 본 황우석사태(6)
편집부 기자, 2007-04-28 오후 9:35:21 
소설가 이하천 선생님의 칼럼, '정신분석학적으로 본 황우석 사태' 오늘은 그 여섯번째 시간으로 "한학수와 최승호는 황박사에게 무릎꿇고 사죄해야 한다!"편을 게재합니다.


The Psaaion of the Christ라는 책을 보면 예수의 마지막 4일 간이 매우 상징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2000년 전 예수는 구시대를 청산하고 새시대를 열고자 했다. 그러나 결국 당시 사회의 대제사장들과 군중이 결탁해서 예수를 죽여버렸다.

요즈음 말로 하면 기득권 세력이 자신들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그런 일을 벌렸다는 얘기다. 예수의 정신을 현대신학의 용어로 풀어보면, 예수는 Old Being과 New Being의 관계에 대한 큰 틀을 인류에 제시하고 갔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사건은 쉽게 말하면 단지 새질서를 말한다는 이유로 생사람 때려잡은 얘기다.

이런 예는 역사에 늘 있어왔다. 단지 예수가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케이스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 안에서 새로운 존재를 추구하는 생명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인간이 위대하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러나 언제나 New Being이 되려면 비싼 댓가를 치뤄야 했고 Old Being이 되면 이익이 왔다. Old Being은 편안하고 익숙하고 경제적이지만, 정신병의 대부분이 이 Old Being의 조건에서 나온다.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모든 정신병자로부터 도피성을 보았다. 그들의 특징은 낫고자 하는 의지가 없고 아픈 게 그들에게 현실을 피해 숨을 곳이었기 때문에 저 깊은 무의식에서는 자신들에게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보았다.

예수는 몸과 마음의 병이 다 같은 곳에서 온다고 보았다. 예수가 물었다.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그렇다면 일어나서 걸어라."

이 말은 인간의 육체적인 병이나 정신적인 병 모두 낫고자 하는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일매일 예수를 죽이는 사회

우리사회는 매일매일 예수를 죽이는 사회다. 다른 말로 하면 한국인의 맑은 마음에 매일매일 황사가 내려와 앉는다는 표현이 된다. 무엇이 옳으냐 그르냐의 잣대를 놓친 값비싼 댓가를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에서 Old Being은 차원이 없다는 게 특징이다.
무엇이 옳으냐 그르냐의 잣대로 질서를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무엇이 이익이냐 손해냐로 틀을 짜 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어떤 심각한 사태에 대해 네티즌들이 들고 일어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생각한다. 예수의 중심개념은 하느님 안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하고 그래야 삶의 단계마다 New Being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현대감각으로 말한다면 바로 인간의 정신을 언어를 도입해서 한단계 씩 격상시켜 나가는 것을 말다. 그래서 우리는 독서가 중요하다는 말을 한다.

역사적으로 우리사회도 예수의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지만, 결국 죽여버리거나 약화시키거나 소외시켜 왔다.

인간에게는 근원적으로 예수의 마음이 깔려 있다.

나는 종교적인 언어를 싫어하기 때문에 종종 이 마음의 상태를 인간에게 근원적으로 깔려 있는 ‘긍정성’이라고 표현한다. 온갖 부정성이 우리 마음 속에서 날뛰어도 결국 이 긍정성을 어떻게 끌어올리느냐에 따라 한 개인의 삶이나 사회는 보다 폭넓고 보다 깊은 마음의 평화를 찾아갈 확률이 높다.

우리사회는 지금 이 부정성과 긍정성의 비율이 50대 50 정도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그토록 난리를 겪고 있다. 폴 투르니에((Paul Tournier)는 인간은 누구나 약하고 상처받기 쉽다고 보았다. 단지 사람에 따라 강하게 보일 뿐이고 강하게 반응할 뿐이라는 얘기다.

자, 이런 사회에서 어떤 문제에 대한 공중파 방송을 결정할 때는 지극히 조심을 해야 한다. 50대 50이라는 이 심리적 비율을 저변에 깔면서 보다 복잡하게 사태를 보려고 노력하면서 여기서 살릴 것은 무엇이고 내려 앉힐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사회적 부모의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피디수첩은 자신들의 현단계 역사적 위치가 긍정성을 서서히 끌어올리고 부정성을 서서히 내려앉혀야 하는 입장인지를 모르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런 상태에 권력이 주어지면 나타나는 특성이 바로 경박성이다. 황우석박사에 대한 방송만 보아도 경박성의 극치를 이룬다.

사물감각만 발달해 있고 인격감각이 너무 낮은 수준이라는 말이다. 범죄와 음모에 걸려든 황박사, 일생을 성실하게 한 길로 걸어온 황박사, 그래서 결국 세계최초로 줄기세포 원천기술인 배반포 기술을 갖게 된 세계적 과학자인 황박사를 그렇게 빠르게 내려 앉히는 것을 보며 우리사회가 얼마나 무서운 사회인지도 알았다.
 


황박사는 게임판을 바꿀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인류의 역사를 바꿀 수 있는 과학자라는 것이다. 이런 판은 사람들이 평소에 안하는 극단의 행동도 할 수 있도록 만든다.

여기에 어마어마한 범죄가 끼어들 소지가 있다는 것을 우리사회는 진작에 알았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좋다고 들까불지만 말고 진중하게 완벽한 대비를 했어야 했다.

이런 면을 연구에 몰두해야 하는 황박사 개인에게 맡겨 놓았다는 것도 우리사회가 저지른 큰 과오라는 생각이다. 우리사회는 너무 겉치레로 황박사를 도왔다는 얘기다. 피디수첩은 차라리 이 큰 과오에 대해서 다루었어야 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를 경고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국민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을 것이고 자신들의 언론정신에도 엄청난 기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거꾸로 이 복잡한 범죄사건을 단순하게 황박사만 내려앉히려고 구도를 잡았다. 정말 한번 묻고 싶다. 황박사만 내려앉히면 그대들과 국가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를? 도대체 이 큰 국가적 사안을 일개 피디들이 나서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었는지 정말 그 무지와 용기에 감탄을 할 뿐이다. 누가, 도대체 누가 그런 어마어마한 권력을 주었나? 정말 묻고 싶다.

제보가 들어왔더라도, 또 이상한 것이 발견되었더라도 검찰과 과학계에 그 문제를 넘겼어야 했던 것 아닌가? 무엇이 그대들을 그토록 광분하게 만들었는지 정말 그 이유를 묻고 싶다.

정의감? 정말 그렇게 이 사회의 모든 질서를 받아들이며 살면서 정의감을 내세울 만큼 정의감이라는 것을 만만하게 보았나? 적어도 현단계에서 정의감이라는 표현을 떳떳하게 내세우려면 엄청난 개인적 희생이 따르는 삶을 살아왔어야만 한다. 그래서 그런 말은 함부로 쓰면 안된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정의감 보다는 한 건 크게 힛트를 치려는 마음이 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 또다시 상을 받으려는 움직임이 보였을 때 나는 분명 개인 서신으로 한학수PD와 최승호CP에게 경고했다. 이 서신을 어머니의 마음에서 쓴다고 밝혔고, 현시점에서 상을 받는 것을 거부해 달라고 말했다.

" '나는 분명 정의감에서 이 일을 시작했고 아직도 그렇다고 확신을 하고 있지만, 이 사건이 아직 재판에 계류 중이기 때문에 재판이 끝나고 나서 모든 것이 확실해 졌을 때 그때 가서 상을 받겠다.’라고 어른으로서의 성숙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래야 어린 사람들에게 합리적인 자세를 배우도록 하는데 어른으로서의 책임감 있는 판단력을 보여주는 것이 될 것이다.”

나는 분명 이런 뜻을 전달했다.

그런 말을 한 것은 그들에게도 피해갈 길을 터줘야 된다는 사회상처치유적인 차원에서 했다. 또 자라나는 젊은이들에게 이곳에서는 상을 주고 저곳에서는 연구재개를 시키는 혼란보다 질서감각을 줘야 한다는 차원에서 했다.

그런데 결국 그 경고를 듣지 않고 뻗히다가 상을 주는 쪽에서 주지 않겠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최승호와 한학수는 전형적인 운동권 정서의 소유자들이다.

내부에서 고발하고 비난하고 죽여버리고 과거를 청산하자는 8,90년대 운동권 정서를 가졌다는 얘기이다. 그게 타당한 면이 있다. 그러나 이들이 간과한 것은 이미 시대가 변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감지하지 못했다. 거대한 시대적 물결은 이미 이들의 수준을 넘어섰다. 그들은 철저하고 우수한 면이 있고 야성이 있다. 그러나 개인적 천재들은 시대를 넘어서는 데 실패를 했다. 이들은 분명 한계가 있는 개인적 우수성을 딛고 피디수첩이라는 막강한 권력 시스템을 업었다. 이들에게 황박사가 걸린 것이다.

그렇다면 최승호와 한학수가 뭘 모르나?이들은 죽이는데만 능하고 살리는 것은 모른다. 말하자면 지금은 세계와 경쟁하면서 대결해야 할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우리 끼리 살아도 되는 줄 알고 이 국제경쟁을 해야 하는 사안을 고발하고 비난하고 죽여버렸다.
그래서 그들을 나는 천재적 바보라고 부른다. 황박사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은 시대를 읽는데 많은 관점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이 천재바보들은 자신들이 한 잘못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우리나라의 방향을 옳게 잡아주고 있다고 상을 몇 번이나 받으려고 한다. MBC도 자신들이 살아야 하니까 이 사람들에게 상까지 끌어다 주면서 모든 것이 끝난 사건으로 마무리를 지으려 하고 있다.

이번에는 개인 서신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경고장을 보낸다. 매일매일 부처님이시든 예수님이시든 자신들에 맞는 곳을 찾아 마음을 다스리면서 자신들이 사회적 부모의 마음을 잃지 않도록 해달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방송제작에 임하라고 권고한다.

방송제작하는 게 무슨 권력인 줄 착각한 것에 대해서도 반성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월화수목금금금 노력해온 황우석박사와 그 연구팀들에 대해 무엇을 잘못했고 무엇을 잘했는지에 대해 위대한 영 앞에서 매일 매일 물어보길 바란다. 그대들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이 방법을 권고한다.

그리고 황박사 앞에 가서 정중히 무릎을 꿇고 사죄하기를 권고한다.
 


무엇을 빌어야 할까?

바로 황박사가 범죄와 음모에 걸려든 줄 모르고 또 공적인 정신으로 일처리를 한 것을 모르고 과학자인척 수사관인척 한 죄, 미즈메디에 쏟아부을 폭탄을 황박사에게 쏟아부은 죄, 40%라는 지분을 받았으면서 책임은 없다는 태도를 보인 미즈메디를 나몰라라 한 죄, 김선종을 취재하면서 황박사를 죽이러 왔다고 취재윤리를 위반한 죄, 결과적으로 범인으로 드러난 김선종의 말을 듣고 황박사에게 집중 폭격을 가한 죄,

우리가 지켜내고 발전시켜야 할 것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호도한 죄, 학제간 연구가 무엇인지 모르고 총책임자라는 것에만 집착한 죄, 이 사건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것인지 모르고 단세포적으로 판단한 죄, 이 사건을 다루면서 일반논문에 적용하는 잣대를 갖다 댄 죄, 방송의 힘만 믿고 우리사회를 만만하게 본 죄,

그 결과 나라를 뱀들에 둘러싸일 위기에 빠뜨린 죄, 과학도 잘 모르는 그 많은 지지자들을 1년 4개월이나 밤낮으로 고생시킨 죄, 분신자살로 한 명의 목숨을 빼앗은 죄, 또 그 지지자들로 하여금 1억이나 되는 벌금을 받도록 만든 죄, 또 그 지지자들이 없는 돈 있는 돈 다 끌어내서 쓰게 만든 죄...그 죄에 대해 사죄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죄가 바로 우리사회가 일상생활에서 예수를 매일매일 죽이는 죄와 연관된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그래서 앞으로는 예수의 마음을 매일매일 살려내는 쪽으로 방송 방향을 잡기를 바란다. 고발도 그런 인간정신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정신장애가 오지 않는다. 이것도 어머니의 마음에서 보내는 경고장이다.

오해 하지 말기를... 나는 종교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단 종교는 필요한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기 때문에 모든 종교를 존중하고 있는 입장이다. 종교도 결국 실력이라는 것, 비단옷감을 주었는데 멋진 옷을 못 만들고 핫바지를 만들어 내놓는 것도 실력에 속한다는 것까지만 지적해 두고 싶다.

마지막으로 한학수와 최승호는 이 시점에서 세계적 과학자들이 한 말을 다시 한번 기억해 보길 바란다.

존스홉킨스 대학 커트 시빈(Curt Civin)교수는 “아무도 황교수의 업적을 검증할 만한 실력을 갖고 있지 않고, 황교수는 세계 다른 연구자에게 그의 기술을 공유하지 않았다. 2004년 논문의 검증이 안된다하더라도 그것이 논문이 사기임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황교수 연구실을 방문해 본 세계과학자들은 한결 같이 그들이 기술이 있음을 믿고 있다”고 말했고, 하워드 휴스 의학연구소의 토마스 체크(Thomas Cech)박사는 “황우석 교수팀은 미국의 어떤 연구실 보다 훨씬 탁월한 기술적 유능함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다만 드러내놓고 그 말을 하지 않는 이유는 미국이 한국 보다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일 것이다.”고 했다.(판:황우석 과연 죽어야만 하는가.2005.12.31)

여기서 우리가 봐야 될 핵심적인 부분은 바로 세계적 과학자들이 황박사팀 연구실에서 탁월함을 보았고 그들이 기술을 갖고 있음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피디수첩은 이 탁월함에 대한 세계적 인정조차도 범인으로 드러난 김선종과 그 의도가 의심스러운 이상한 제보자의 말을 믿고 자학적으로 깡그리 없애버리려고 했다는 것... 바로 여기에 핵심이 들어있다.

피디수첩은 자신들의 무지와 오만과 편견과 독선과 멍청함과 교활함에 정의라는 당의정을 교묘하게 입혀서 언론권력을 사용해 이 사회에 운동권 정신으로 풀어먹임으로서 황박사를 내려 앉히는데 독극물처럼 작용했다는 것, 그 점을 명확하게 인지하기를 바란다.



1949생. 장편소설 ‘조용히 쓸어라 대지는 깊이 잠들지 않는다’(통나무, 1993), 장편소설 ‘불타는 대지’(증명, 1997), 문화비평집 ‘나는 제사가 싫다’(이프, 2000) 등 작품 발표. 2004년 장편소설 '내가 증오한 사랑'(도서출판 창작정신, 부모성 같이쓰기 운동에 동참 이유하천으로 발간)

스스로 '반골 기질이 있고, 지구력 좋은 쌈꾼'이라고 표현한 소설가 이하천은 현대에 뿌리박혀 있는 여성문제와 양성평등 가부장 문화·언어와 같은 인습에 도전하는 작품을 발표해왔다. 사회적 '특권의식'과 인습에 대해 큰 경계심을 드러내온 이 작가는 '황우석 박사 사태'가 본질적으로 사회 기득세력과 잘못된 인식 구조로 벌어진 일임을 주장하며, 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해 부심하고 있다.


2007-04-28 오후 9:3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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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사내
글쓴이 : 사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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