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경스님 '숲 열어 마음의 쉼터 만들렵니다'
<한겨레 2006/8/16/수/종교&수행28면>
선승에서… 환경운동가로… 이젠 화계사 주지로
지난 6월 수경(57) 스님이 서울 강북구 수유동 삼각산 화계사 주지를 맡았다. 화계사는 전 세계에 120여개 국제선원을 세우며 화두선을 전한 숭산 선사가 2년 전 열반하기 전까지 살던 곳이자 그의 외국인 제자들이 참선하는 국제선원이 있는 곳이다.
불교환경연대 대표로 환경운동가인 그가 어떻게 서울의 대표적인 사찰 가운데 하나인 화계사 주지를 맡게 된 것일까.
주지자리 둘러싼 내분 해결사로 와 오직 기도만
그러자 동요하던 신자들이 하나둘씩 뒤따라
그야말로 ‘함이 없는 무위’의 해결이었다.
화계사는 숭산의 뜻을 잇고자 하는 신자들의 열망이 어느 곳보다 강하다. 그런데 화계사 후임 주지 자리를 놓고 내분이 일자 신자들이 숭산의 출가 본사인 충남 예산 덕숭문중에 내분을 수습하고, 숭산을 뜻을 이을 수 있는 스님을 주지로 보내줄 것을 청했다고 한다. 그래서 와병 중인 방장 원담 스님을 대신해 실질적으로 덕숭총림을 이끄는 수좌 설정 스님이 수경 스님을 ‘해결사’로 파견한 것이다. 수경 스님은 1966년 열여덟살의 나이로 덕숭총림 수덕사에 원담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덕숭문중 출신이다.
화계사에 온 그는 주지 자리를 둘러싼 내분을 수습하는 데 지금까지 환경운동가로서 대중의 호응을 끌어내기 위해 시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해결 방식을 취했다. 그는 절 운영과 살림을 다른 스님들에게 맡겨두고, 전임 주지 등이 그대로 법회도 열도록 한 채 자신은 오직 기도만 했다. 그러자 동요하던 신자들이 하나둘씩 그의 뒤에 앉아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함이 없이 한 무위’의 해결이었다.
지난 12일 화계사엔 찌는 듯한 무더위에도 수많은 신자들이 대적광전과 공양간에 붐벼 활기에 넘쳤다. 때마침 점심 공양 때었다. 상당수 사찰에서 스님들은 신자들보다 한두 가지 ‘특식’을 더 갖춘 상을 받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는 대중들과 똑같이 식사했다. 대중과 호흡을 맞춘 그가 만들어갈 화계사가 궁금하다.
“삶과 일의 스트레스에 지친 서울 시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마음의 쉼터’다. 화계사에서 명상을 하며 마음을 쉬고, 자신을 성찰할 수 있게 하겠다.”
그의 반짝이는 눈에서 이미 구상이 절반은 현실이 된 듯하다. 화계사는 일주문에서부터 주변에 3만평의 숲이 있다. 조계종 종립학교인 동국대학교를 설립할 때 화계사가 동국대에 기증한 땅이다. 국립공원이어서 건축행위를 할 수도 없어 그냥 놀고 있는 땅으로 인근 주민들의 산책 코스로 이용되고 있을 뿐이다.
“일주문에서 절까지 포장 걷어내고 차는 못들어오게 해
경내를 맨발로 걸어다니며 쉴 수 있도록”
그의 변화무쌍한 삶이 선물할 또다른 변화가 기대된다.
수경 스님은 현재의 아름다운 숲을 그대로 둔 채 서울 시민들에게 이를 활짝 개방해 이곳에서 걷기명상 등 짧은 시간에 심신을 쉴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미 동국대의 내락도 얻었다. 숲속 명상 프로그램은 숭산을 잇는 외국인 선승들이 이끌게 할 계획이다.
“일주문에서부터 절까지 도로 시멘트 포장도 모두 걷어내고, 차는 일체 경내로 들어오지 못하게 할 생각이다. 그래서 절 경내에서도 맨발로 걸어다니면서 쉴 수 있도록 하겠다.”
일주문 밖에 임대해준 주차장 부지 500평이 있어서, 이를 활용하면 일주문 안으로 차를 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 대적광전의 4층에 있어서 다소 시끄러운 국제선원을 좀 더 조용한 곳으로 옮겨 외국인 수행자들의 참선을 도울 생각이다.
수경은 원래 운동가와는 거리 먼 산사의 선승이었다. 출가 이후 선방에서 무려 35안거를 났다. 선방에 가더라도 최고참에 속한다. 그런 그가 지난 2000년 “생명이 다 죽어간다”는 도법 스님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지리산살리기 국민행동 상임대표를 맡으며 ‘앉아있는 선승’에서 ‘행동하는 운동가’로 변신했다.
선승의 기질에서 나오는 듯한 그의 파격은 환경 운동에서도 바람을 일으켰다. 그는 스님이면서도 해인사가 최고 최대 청동대불을 조성하려하자 속물주의 상징이라며 비판해 해인사 스님들이 실상사에 와 난동을 부리는 사태를 경험했고, 북한산 사패산 터널을 막기 위해 6개월 간 홀로 천막을 치고 터널공사를 막기도 했다. 또 2003년엔 문규현 신부, 김경일 교무, 이희운 목사 등 이웃 종교 성직자들과 함께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해 전북 부안에서 서울까지 800리길을 3보1배로 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그 때 ‘고장난’ 다리 때문에 지금도 지팡이에 의지해 절룩거리며 걷고 있다.
환경운동을 하면서도 여름과 겨울이면 안거에 들어가 참선 정신했던 그는 지난 겨울엔 1년간 산문을 폐쇄한 채 정진하는 경북 문경 봉암사에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3개월 간 직접 불을 때 밥을 해서 선승들을 먹이는 공양주를 했다.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삶이다.
특유의 친화력과 카리스마로 그의 주위엔 늘 사람이 모인다. 하지만‘수경은 이런 사람이다’는 사람들의 단정은 그의 변화와 파격에 빗나가고 만다.
출가한 지 40년 만에 처음으로 주지직을 맡은 그가 또 세인의 상상을 뛰어넘어 화계사를 서울시민들에게 어떻게 되돌려줄 지 흥미진진하다.
삼각산/글·사진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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