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고 참담합니다. 어떻게 스님들이 저런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애들하고 남편한테 절에 같이 다니자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상계동 박영순 씨)
“방송을 보고 어제 법당에서 밤을 지새웠습니다. 부처님께 부끄럽고 신도들에게 부끄러워 눈물로 참회했습니다.”(논산 ㅂ사 비구니스님)
MBC가 10월 16일 오후 11시5분에 방영한 PD수첩이 불교계를 충격으로 몰아넣고 있다. ‘위기의 조계종, 그 청정의 길은?’이란 제목으로 50여 분간 방송된 이 프로그램에서는 세속화된 불교계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교구본사 주지가 말사를 놓고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 씩 돈을 받고 ‘임대’하며, 그 돈으로 교구본사 주지선거 때 수억 씩 뿌려대고, 그것도 모자라 후보 스님에게 약을 먹여 납치한 뒤 알몸의 여자와 같이 있는 음란한 사진을 찍어 협박하는 등 세간에서도 상상하기 힘들 파렴치한 일들이 보도됐다. 특히 본사 주지가 룸살롱에 가서 하루에 수백만 원 씩 뿌리고, 11개월 만에 술값으로 6000~7000만원을 썼다는 내용이 공개되기도 했다. 특히 선거 기간 중 작성된 녹취록에 담긴 스님들 간의 대화에서 출가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시정잡배의 모습만 있을 뿐이었다.
‘00놈 너, 죽여 버려 이 새끼. 야 이 새끼야. 죽으면 너 공갈협박죄가 아니여, 임마. 너 법 좋아하고 언론 좋아하니까. 너 까불고 다니지 말어. 나한테 맞아 죽으니까 이놈의 새끼 너, 이 싸가지 없는 새끼가 아주 죽여 버려. 너 000 너 죽여 버려!”
PD수첩 진행자의 말처럼 ‘배경은 고즈넉한 산사였지만 들리는 소리는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이라는 게 이 방송을 시청한 불자들의 한결 같은 반응이었다.
PD수첩의 충격적인 장면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종단 상층부는 총무원장 중심의 집권세력과 동국대 이사회 중심의 반대세력으로 나뉘어 파벌싸움으로 일관함으로써 위기를 수습해 갈 의지와 능력을 보여주지 못함을 신랄하게 보여주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이자 동국대 이사와 불교방송 이사장을 맡고 있는 영담 스님의 인터뷰 내용 또한 충격적이었다.
“(영담) 스님더러 최고의 정치승이라고 하던데요?”(PD)
“고맙네요, 최고로 쳐주면. 어차피 종교정치도 정칩니다. 산중에서 수행하고 살지 않고 사판에 나와 있기 때문에 이건 전부 정치승입니다. 정치하려면 최고로 잘해야지요.”(영담 스님)
PD수첩은 이어 “취재진 앞에서 상대 계파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쏟아내는 비판은 신랄하고 거침이 없었다”는 말과 함께 영담 스님의 말을 계속 전했다. “아까 정치꾼 얘기가 나왔는데 참 의리 없는 집단이 종교집단입니다. 상품 가치가 없다 그러면 과감하게 쳐버리는 게 종교집단입니다.” 이같은 영담 스님의 발언에 대해 PD수첩은 거꾸로 “(전 동국대 이사) 장윤 스님이 이사직에서 해임되는 과정에서 영담 스님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냐?”고 물었고, ‘제228회 이사회 회의록’ 때 영담 스님이 “확 숨통을 끊어놔야”한다는 발언을 하지 않았느냐고 반론했다.
이에 대해 영담 스님은 “그렇죠, 확 목을 따야 된다고 그랬죠. 설죽이면 되치기 당하니까. (종교집단 혹은 불교계는) 봐주고 이렇게 ‘같이 가자’ 이런 게 안 통하는데예요. 완전히 목을 따야 합니다.”
이에 PD가 “스님께서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라고 질문을 했고, 영담 스님은 “사람에 따라서 그런 표현을 쓴다”고 답변함으로써 ‘출가자로서 도덕성과 위의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몰지각한 발언’이라는 비판이 끊이질 않고 있다. PD는 특히 영담 스님과의 인터뷰 마무리로 ‘출가 40여년. 영담 스님의 꿈은 언젠가 산속 수행승으로 돌아가는 것’임을 소개하기도 했다.
PD수첩이 제작의도에서 표현한 이번 보도는 “권력의 화신이 된 승려들”이 마곡사, 관음사, 동국대 등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이에 대해 수동적으로 대처하는 종단 지도부의 무기력함 또한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번 PD수첩 방송 내용과 관련해 MBC 홈페이지에서는 ‘출가해 세속의 인연을 끊었다는 비구,니 길을 가는 승들의 행태가 시정잡배들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위선과 기만으로 똘똘 뭉쳐 그 악업이 하늘을 찌른다’(WISETV) ‘불교가 망해야 이 나라가 바로 선다’(DHDON) 등 불교계를 비판하는 글들이 잇따르고 있다.
이러한 비판의 목소리는 불교계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서울에서 포교당을 운영하는 스님은 “이번 방송은 앞으로 포교에 엄청난 타격을 줄 것”이라며 “특히 영담 스님의 발언으로 일선에서 봉사나 포교를 하는 스님들도 모두 정치승이라는 오명을 벗기 어렵게 됐다”고 강조했다.
종회의원 정범 스님은 “MBC 방송 목적과 의도를 비판하기에 앞서 불교계의 뼈를 깎는 참회와 자정 노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초선의원 스님도 “종단 지도층이 바뀌지 않으면 조계종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며 “영담 스님 등 문제 있는 스님들이 더 이상 종단에서 발을 붙일 수 없도록 종회차원에서 3분의 2 동의를 얻어 징계를 추진할 것을 제안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번 PD수첩 보도와 관련해 총무원 기획국장 원철 스님은 “19일 예정된 봉암사 결사 기념대 법회를 통해 불교계의 결연한 자정의지를 보이고 그것을 계기로 조계종의 수행종풍을 되살리는데 역점을 둘 것”이라며 “영담 스님 발언 내용 등은 기념대법회 이후에 다시 논의될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921호 [2007-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