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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만도 못한 인간

淸潭 2007. 9. 27.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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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저녁 채널을 돌리다가 문득 시청하게 된 어느 프로그램.

MBC의 닥터스라는 프로그램인데 보아하니 가난하여 의료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불우한 병자들을 찾아

치료해주는 프로그램인 것 같다.

 

어제는 11살짜리 낙도에 사는 어느 소녀의 사연이 소개되었다. 

남해바다 어느 낙도에서 할머니와 당뇨로 꼼짝 못하는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어린 소녀.

 

엄마는 생후 2개월 만에 딸을 버리고 도시로 나가 새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고

아빠도 역시 소녀가 채 한살이 되기도 전엔가 집을 떠나 나름대로 새 가정을 꾸리고 살면서

부모 모두 딸을 10년이 넘도록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내리는 날에도 소녀는 선착장에 나가 들어오는 배를 쳐다보며 자신을 버리고

각자의 새출발을 위해 오래 전에 떠나버린 엄마 아빠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종이배를 띄우며 허전함을 달래는 소녀. 엄마 아빠의 사랑이라곤 받아본 기억조차 없는 아이.

왜 아빠는 동생만 데리고 살면서 자신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가,

왜 엄마는 나를 버렸을까 정말 속이 상한다고 말하던 소녀의 또렷한 말이

내 가슴에 못이 되어 박혀온다

 

아이는 시력이 극도로 나빠 한쪽눈은 이미 실명상태고 나머지 한쪽눈마저 책을 눈에 붙이다시피

가까이 대고 읽으려해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딱한 상황이다.

책과 눈과의 거리는 기껏해야 2,3 센치가 될까말까 하다.

 

그래도 안보인다며 읽지 못한다. 그 장면에서 눈물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집 떠난지 10년이 넘어도 딸과는 완전히 인연을 끊은 채 각자 살아가는 소위 엄마와 아빠라는 자들에게

왠지모를 분노가 치솟는다.

 

게다가 아이는 선천적으로 목젖이 갈라진 채로 태어나 말을 해도 새는 바람에 주변에서

잘 알아듣질 못한다. 그래서 소외받고 자란 어린 소녀.

 

결국 아이는 목젖을 하나로 잇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하게 되나 더 이상 나빠질래야 나빠질수가 없는

최악의 시력은 개선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의사의 소견이다.

가난하여 치료도 못받는 상황에서 부모의 얼굴도 모른채 살아온 기구한 운명의 소녀.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는 말에 할머니는 객지에 사는 아들과 연락해 딸과의 상봉기회를

어렵사리 마련하지만 너무나 오랜 세월 떨어져 살아왔다는 서먹한 상황때문에 결국 부녀간에

말 한마디도 나누지 못한다.

 

아비란 자에게 욕이 나올 지경이다. 한 병실에서 같이 있음에도 멀뚱히 서있는 아빠라는 자, 

젖먹이때 헤어진 딸에게 따스한 포옹조차도 하기 어려울만큼 낯선 딸이었던가..

 

끈질긴 전화 끝에 겨우 병원에 나타난 아비라는 자는 결국 딸에게 따스한 말한마디 없이 

수술동의 서류에 싸인만 하고 바쁘단 이유로 병원을 서둘러 떠나버린다.

 

아버지란 존재의 중요성을 각인시키며 의사도 그와 대화해보지만 아비라는 자는 새 가정이 깨질까봐

어린 딸에게 극도의 거리감을 주고있다.

오랜 시간 비정상적인 신체조건으로 살아온 어린 딸에게조차도 희망을 주는 단 한마디 말도 꺼내지 않던

아비라는 이름의 남자. 개 만도 못하고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란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어미라는 자도 낙도에서 서울까지 수술받으러 온 딸이 궁금하지도 않는지 바빠단 핑계로

병원에 모습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쓸쓸히 돌아서는 할머니의 푸념속에서 소녀를 향한 측은지심에 연속 손등이 젖은 눈가로 간다.

 

아빠가 돌아간 후 소녀가 말한다.

단 한마디 말도 나누지 못했음에도 소녀는 아빠를 봐서 행복했다고... 그리고 미소를 짓는다. 

지난 날의 잘못을 뉘우치며 10년만에 보는 딸을 안아줄만도 하건만..

 

무엇이 그리도 그의 마음을 비정하게 만들었을까. 행여나 딸을 떠맡게 될까봐,

그래서 자기의 현가정이 깨어질까봐 두려워했을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자신의 새끼가 아닌가. 하다못해 유기견도 동냥해서 제 새끼를 먹여살리려 목숨을 건다.

 

그에게 목숨을 걸라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정을 몹시도 그리워한 어린 딸에게 따스한 말 한마디,

용기내란 포옹쯤은 해줄 수 있지않는가 말이다. 

아빠가 말한번 걸어주길 얼마나 어린 소녀는 기다렸을까.

침묵을 지키는 아빠와의 눈마주침이 어색했던지 소녀도 침대에 앉은채 아빠의 시선을 피한다.

 

하지만 속마음은 내심 아빠가 먼저 손을 내밀어주길 얼마나 고대했을까.. 

핏덩이때 헤어진 딸을 타인보듯 물끄러미 쳐다보고 서둘러 떠나버린 아비라는 자. 

미물보다도 못한 소녀의 부모가 한없이 원망스럽다.

 

어미나 아비나 분명 그 무엇으로든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반드시 받았으면 하는게 솔직한 바람이다.

그 무슨 변명을 들이댈지라도 아이 부모들의 비정한 행위는 절대 합리화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릴 때, 아니 중학생 다닐 때, 하교후에 집에 엄마가 안계시면 엄마가 가실만한 곳들을

다 찾아가보곤 했다.

다른 형제들은 별로 그렇지 않았는데 유독 나는 엄마가 안계신 집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던

한때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로 인해 형제간들 사이에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었다.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다닐 유아기도 아니었건만 사춘기가 되어서도 엄마에 대한 애착이

유달리 남달랐던 내 모습을 생각하니 저 어린 것이야 오죽했을까 싶은 생각에

아이 아빠를 향해 욕 하나 날렸다.

 

개 만도 못한 XX... 그런 자를 그래도 아빠라 여기며 젖먹이때 아빠와 찍은 유일한 사진을 들여다보며

신주단지 모시듯 보자기에 정성스레 싸서 들여다보던 아이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이야,

네 부모가 너로 인해 피눈물 쏟으며 머지않아 네 앞에 무릎 꿇고 통곡할 날이 오길 바란다.

그래야 못받은 부모사랑 속에서 응석부릴 기회가 올테니.

 

찾고 싶었지만 여건이 안되었다고 변명할 기회랑은 먼훗날이라도 주지 말거라.

아비 어미라는 자들은 너를 잊고 새 가정 속에서 희희낙락했을거다.

어른이 되어 재회하더라도 널 생각하며 옷자락으로 눈물 훔친 많은 밤들이 있었다 해도 믿지 말거라.

 

한번도 널 잊은 적이 없었다는 새빨간 거짓말은 더더욱 믿지 말거라.

그들은 낙도를 떠나 온종일 걸려 서울에 온 아픈 너를 모두 외면하였다. 서둘러 떠났다.

바쁘다는 핑계로.

 

훗날 그들이 한지붕이고 살던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아 갈 곳이 없어 널 찾을지라도   

그래도 부모였으므로 너로 인해 가슴에 못 하나 박고 죄인같은 심정으로 살았다는 말은 더더욱 

새겨듣지 말아라.

 

낳아주었다고  모두 부모가 아니란 것을 훗날 깨달을 때가 올 것이다..

부디 행복하거라. 꼭 행복해야 한다..

 


<옮겨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