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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판사의 '피고인을 위한 기도'

淸潭 2007. 7. 17. 08:58

어느 판사의 '피고인을 위한 기도'


 

【서울=뉴시스】

법정에 선 판사가 피고인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한가지다. 진실과 거짓을 가려 피고인에게 죄에 합당한 형벌을 내리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8부 차지원 판사는 그러나 푸른 수의를 입고 선고를 기다리며 고개를 떨군 피고인에게 판사가 해줄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더 있다고 말한다.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는 어머니로부터 버림받고,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로부터 이유 없이 몰매를 맞아야 했던 어린 시절의 윤수가 등장한다.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던 삶은 상처와 절망의 응어리로 가득 차 있었고, 결국 그는 세 명을 살해한 사형수로 법정에 선다.

윤수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삶에 기쁨을 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본 판사는 크리스마스날 그에게 카드를 보낸다. 카드에는 "판사인 나 김세중은 당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지만, 인간인 나 김세중은 당신을 위해 기도할 뿐"이라고 씌여져 있다.

차 판사는 16일 대법원 홈페이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형사부에서 근무했던 기간 동안 문득문득 판사 김세중이 생각났다고 회고했다.

몇 차례 절도 전력이 있던 A씨가 또다시 절도범행으로 교도소에서 형을 살게 됐다.

절도범행으로 복역한 후 집으로 돌아갔지만, 누구도 그를 가족으로 맞아 주지 않았다. 그는 하루 종일 집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부모님의 용서를 구했지만 끝내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 후로 친구 집을 전전하며 일자리를 구했지만 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힌 그를 받아주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결국 배고픔에 지친 그는 다시 남의 물건에 손을 대게 됐다.

'절대 다시는 법정에 서지 않겠다. 부모님께 효도하며 살겠다'며 용서를 구하는 A씨의 반성문을 보면서, 차 판사는 문도 열어주지 않았던 부모님에게 효도하겠다며 다짐하는 A씨가 기특하고 안쓰러웠다.

다시 그가 출소했을 때는 그를 따뜻하게 받아줄 누군가가 있기를, 땀 흘려 일해 얻는 기쁨이 무엇인지 그에게 가르쳐줄 일자리가 있기를 차 판사는 기도했다.

남편과 이혼하고 자식들과도 소식이 끊긴 채 여자로서는 고된 버스운전을 하며 살던 50대 중반의 B씨. 운행 도중 횡단보도를 건너던 할머니를 치어 식물인간이 되게 하는 사고를 낸 그녀는 법정에 설 때마다 눈물을 쏟아냈다.

버스 운전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그녀에게는 용서를 대신 빌어줄 사람도, 곁을 지켜줄 이도 없었다. 할머니에 대한 죄책감과 선고될 형에 대한 두려움으로 난생 처음 차가운 수갑을 차고 법정에 선 그녀는 울고 또 울었다.

차 판사는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위해, 식물인간이 된 할머니를 위해 또 기도했다고 전했다.

"법정에는 불우하고 버림받은 흉터투성이의 삶이 있다. 죄를 짓고 용서를 구하는 피고인들, 그러나 용서받지 못하는 그들, 그리고 용서하지 못하는 피해자들과 가족들이 있다"

차 판사는 "판결선고로 상처 입은 그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 내가 판사의 길을 걸어가며 짊어져야 할 십자가"라며 글을 맺었다.

이혜진기자 yhj@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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