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세상사는 이야기

의사가 밝히는 병원서 '5분 진료'할 수밖에 없는 이유

淸潭 2007. 7. 10. 09:08

병원가도 정작 만나기 어려운 의사들의 항변

 

최근 우연히 유방암 수술을 받은 40대 후반의 여성을 만났는데, 화를 풀지 못하고 있었다. 서울의 모 병원에서 지난달 암 수술을 받은 그녀는 수술 경과를 들으려고 병원을 다시 찾았다가 의사로부터 딱 세 마디만 들을 수 있었다고 했다. “괜찮아요?” “며칠 후에 오세요.” “나가세요.” 진료실에 들어서서 나오기까지 3분도 채 안 걸렸다고 했다. 항암치료는 어떻게 하고, 방사선치료는 언제 받는지에 관해 의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에 관한 설명은 대신 간호사로부터 들었다.


▲ 박인숙·서울아산병원 소아심장과 교수

그녀는 “비싼 선택진료비를 내고 진찰받는데, 왜 내가 간호사에게 설명을 들어야 해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궁근종 수술을 받은 30대 초반의 여성도 같은 얘기를 했다. “왕복 10시간 걸려서 병원에 왔는데 고작 5분도 의사를 못 만나요”라고 했다. 김해에서 부산으로 가 KTX를 타고 서울까지 오가며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이런 환자들의 하소연을 들을 때마다 나도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우리의 의료 현실이 어쩔 수 없다고 답변해 주지만 그런 말로 위안이 될까?

사실 내가 진료하는 어린이 심장병 환자도 5분 간격으로 예약이 차 있다. 의사가 심장병이나 암 같은 중대한 질병을 5분 내에 환자나 보호자에게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의사들은 그러기를 강요받는다.


의사생활 33년 가운데, 미국 텍사스의 아동병원에서 14년간 의사생활을 할 때는 30분이나 1시간마다 환자를 진료했다. 아이들의 심리상태, 학교생활, 가정생활까지 요모조모 물어보며 상담하고 치료를 하는 것이다.

1987년 귀국한 뒤 처음에는 나도 미국에서 하던 식으로 했다. 심장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하던 여중생 심장병 환자의 어머니를 상담하던 일이 생각난다. 딸과 함께 진료실에 들어오면서 딸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어머니를 붙잡고 함께 울었다. 그러다 10여 분을 넘기자, 진료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환자들이 “왜 진료시간을 안 지키느냐”고 항의하는 소리였다. 나도 불안해지고 그 어머니는 어쩔 줄 몰라 황급히 일어섰다. 환자가 묻는 대로 자세히 설명해주고 하소연도 듣고 싶지만, 우리의 상황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다른 쪽에서는 왜 진료 예약시간을 지키지 않느냐고 항의하니 답답했다.

나와 함께 일하는 의사 중 한 명은 그래도 고집스럽게 환자를 10여 분 이상 진료를 한다. 환자들의 말을 일일이 들어준다. 이 때문에 그는 진료를 마치는 시간이 다른 의사들보다 2시간 이상씩 긴 오후 7시다. 환자들 사이에선 친절한 의사로 손꼽히는 그 의사는 병원에선 오히려 ‘이해 못할 의사’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고 한다.

이같이 5분짜리 진료가 되는 이유는 한마디로 환자 수가 많아야 병원을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주는 보험수가는 환자 1명당 고작 1만5580원(초진)이다. 이처럼 적은 금액으로 여유 있게 환자를 받다가는 병원은 도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환자가 대학병원에만 몰리는 것인데, 설령 환자가 아무리 대학병원으로만 몰려도 의사 수가 많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하지만 어느 병원도 의사를 그렇게 채용할 여력은 없다. 비영리기관인 우리나라 병원들은 외국과 달리 기부금도 못 받고 정부가 지정해준 건강보험 수가로만 운영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진료환자 수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하는 병원들도 나온다. 의사들을 5분 진료로 내모는 것이다. 대학병원의 ‘5분 진료’ 같은 의료의 질을 개선하려면 사소한 질병으로 환자들이 대학병원에 오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아야 한다. 정부는 대학 병원의 진료비를 차등화해 ‘5분 진료’가 아니라 환자와 의사가 여유 있게 인간적으로 만나도록 해야 한다.


[박인숙·서울아산병원 소아심장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