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돈으로 `먹칠`한 미술대전
수상작 90% 미리 결정 … 심사위원이 며칠씩 합숙 암기
미협 전 간부 등 9명 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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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특수수사과 수사관들이 16일 돈을 주고 대한민국미술대전에 입상한 작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김태성 기자 |
지난해 4월 16일 서울 서초동 O모텔 7층. 그해 열렸던 제25회 대한민국미술대전(미전) 문인화 분과위원장 김모(53.D대학 서예과 강사)씨가 심사위원 8명을 은밀히 소집했다. 이들은 방 4개를 빌려 4박5일간 합숙생활을 했다. 접견실로 사용한 방에서 문인화 출품작 수백점의 사진을 접수했다. 공식 심사기간은 같은 달 19~20일이었다. 불법 '사전 심사'인 것이다. 미술협회가 공정한 심사를 한다며 낙관과 이름을 가린 채 심사위원들에게 출품작을 보여줬지만 소용이 없었다. 공식 심사에서 자신들이 사전에 익혀둔 작품들을 입선작과 특선작으로 찍었기 때문이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16일 출품자에게서 돈을 받고 이들의 작품을 미전에 입상시킨 혐의(업무방해 등)로 한국미술협회 전 이사장 하철경(54)씨와 문인화 분과위원장 김씨 등 9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영장 신청자 중에는 미술협회 전 상임이사 박모씨와 장모.유모.성모씨 등 중견화가 3명도 포함됐다. 조모(60)씨 등 심사위원.미술협회 집행부와 이들에게 돈을 준 작가 등 49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서양화 등 다른 부문에서도 금품이 오간 정황을 잡고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다.
경찰에 따르면 하씨는 협회 이사장으로 재직하던 지난해 4월 후배 이모씨에게서 1000만원을 받고 심사위원에게 압력을 넣어 이씨의 작품을 특선에 입상시키는 등 같은 해 12월까지 모두 4명의 작품을 특선에 입상하도록 한 혐의다.
◆ 입상작 90%를 미리 선정=문인화 부문에선 협회 집행부가 사전 심사로 입상작을 뽑았다. 지난해 문인화 분과위원장 김씨에게 협조한 심사위원은 8명. 문인화 전체 심사위원 11명이니 이들이 입상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체 입상작 504점의 90% 이상이 사전 심사에서 지정한 작품이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김씨는 그 대가로 2000만원을 받아 김모(46.D대학 서예과 교수)씨와 나눠 가졌다.
유모(65)씨와 성모(51)씨 등 중견작가 2명은 2005년과 지난해 1000만~1500만원씩 금품을 받고 미술대전 공모작을 대필해 줬다. 대필은 일부에 손대는 가필과 달리 전체 그림을 대신 그려주는 것을 말한다.
◆ 부적격 회원으로 이사장 당선=현 미술협회 이사장 노재순(57)씨는 지난해 말 이사장 선거 과정에서 작품발표 실적 등이 모자란 부적격자 수백 명을 신입회원으로 가입시켜 표를 끌어 모은 혐의(업무방해)로 불구속 입건됐다. 선거에서 낙선한 김모(53) 후보자도 지난해 12월 광주지회 회원 수백 명의 밀린 회비(1인당 7만5000원)를 대납해 부정 선거를 치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사장 부정선거와 관련해 적발된 미술협회 회원은 46명에 달한다.
관련자는 대부분 혐의를 부인했다. 하철경씨는 "나쁜 짓 한 게 없다. 경찰은 증거도 없는데 진술만으로 나를 모함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재순 이사장은 "1~2년 연한이 모자란 작가들이지만 관례대로 실력을 보고 신입으로 받아줬다"고 해명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 대한민국미술대전=한국 최대 규모의 일반 공모전. 일제 시대(1922~1944년) 조선미술전람회(선전)가 전신. 1949년부터 정부 주도의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라고 불렸으나, 82년부터 한국미술협회가 주관해 왔다. 매년 봄 서예.문인화.비구상 부문이, 가을에 디자인.공예.구상 부문이 열린다. 연간 1억~1억2000만원의 문예진흥기금이 지원되며, 대통령상 수상자에겐 병역특례가 주어진다.
대통령상은 6000만원짜리` 소문도
미술계 `곪은 게 터진 것
"미전 입선에는 300만~500만원, 특선엔 1500만~2000만원을 써야 한다. 병역특례가 주어지는 대통령상을 타려면 상금 3000만원을 반납하고 웃돈 3000만원을 더 얹어줘야 한다. "
대한민국미술대전을 놓고 미술계에서 공공연히 나도는 얘기다. 미전 심사비리 수사결과에 대해 "곪을 대로 곪은 게 터졌다"는 반응도 나왔다. 그만큼 고질적이고 공공연한 비리였다는 얘기다. 2001년에도 미전 입상, 이사장 선거와 관련해 금품이 오간 정황이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이번에 수사가 집중된 문인화 부문에서도 수상자 대다수가 협회 고위간부나 심사위원들의 제자.후배들로 학연.지연에 사례비까지 동원됐다. 수상작의 희소가치도 떨어진다. 지난해 제25회 미술대전서 문인화의 입선과 특선작만 해도 504점이다. 전체 6개 부문을 모두 합치면 지난해 수상작이 총 1618점에 달한다.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전시가 늘어 미술대전 자체가 공모전으로서 제 기능을 못하는 상황이라 이 기회에 없애버리는 것도 방법"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한 "민간 공모전인 미술대전에 대통령상이라는 제도를 다시 만든 것 자체가 과거 국전의 권위주의적 아이디어"라고 비판했다.
경희대 최병식 교수는 "등급을 나눠 수천 명씩 상을 주는 형식은 구태의연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영국의 '터너 프라이즈'의 경우 외부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추천위원회로 선발된 작가들이 전시회를 열어 실력을 가리고 있다"고 말했다.
조현욱.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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