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편안한 그곳이 명당
21세기와 고전
3. 한국의 전통과 근대 ⑥ 이중환 ‘택리지’
최창조 풍수연구가·지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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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의 지도 '아국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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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학계의 택리지에 관한 평가는 “조선시대 최고의 인문지리서”라는 말로 요약된다. 왜정 때 ‘조선팔도비밀지지’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이래 풍수지리서라는 오해도 없지 않았다. 대동여지도라는 출중한 지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전으로 추앙받는 지리서는 이 책 밖에 없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그 이전에 출간된 관찬지리서(관에서 만든 천편일률적인 체계의 지리서)와 달리 독특한 시각과 체계,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한국 지리학계에 이처럼 독특하고 탁월한 책은 없었다.
여기에는 우리 땅에 관한 정보는 물론, 어디서 사는 것이 좋은지에 관한 내용도 들어있다. 나는 이번 서평을 쓸 기회를 얻은 김에 오히려 이 책의 문제점을 몇 가지 제시할 생각이다. 아무리 문제점을 지적하더라도 택리지의 평가가 달라질 수는 없다는 확신이 있기에 마음 놓고 쓴다. 택리지가 조선 최고의 인문지리서라는 사실에는 전적으로 동감임을 먼저 밝혀두고 얘기를 풀어보자.
청담 이중환(1690~?)이 곳곳에서 드러내는 편견은 꽤나 심한 편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함경, 평안 두 도는 살만한 곳이 못 된다. 강원도 동해안은 경치가 좋아 자제들이 놀이가 습관이 되어 학문에 힘쓰는 자가 적다. 전라도는 주민이 노래와 여자를 좋아하고 사치를 즐기며 행실이 가볍고 간사하여 학문을 중히 여기지 않는다. (충청도) 청풍은 주민이 많아 늘 말이 많고 사람들이 경박해서 살 만한 곳이 못 된다.” 이런 식이다. 요즘 이런 표현을 했다면 이민이나 가야 할 처지에 빠지고 말 것이다. 땅이란 그저 무대일 뿐 그 결실은 사람에게 달려있다는 점이 완전히 무시된 주장이다.
청담이 사대부들에 대하여 원한을 가지고 있음은 이 책의 앞뒤에 실려 있는 해설, 논문과 서문 발문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것이 여과 없이 드러난 대목도 마음에 거슬린다. 게다가 호남에 대한 통념에 휩쓸려 있으면서 영남에 대해서는 “경상도는 지리가 가장 아름답다”는 식으로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 또한 공연한 폄하와 다를 바 없는 편견이다.
내가 이 책에서 느낀 가장 아쉬운 점은 청담이 살 만한 곳으로 지목한 곳과 그 이유에 있다. “원주는 두메산골과 가까워 난리가 나면 피하기 쉽고 또 서울과 가까워 태평한 시절에는 벼슬길에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서울의 사대부들이 여기 살기를 좋아한다.” “충청도 내포는 큰 길목이 아니기 때문에 임진년과 병자년 두 차례 난리를 치렀어도 적군이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비옥한 평야인데다 생선과 소금이 흔하기 때문에 부자가 많고 대를 이어 살아오는 사대부 집안이 많다.” 이것은 일반적인 지식인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나라에 환란이 들면 나아가 싸우고, 평온한 세월이 오면 낙향하여 자연을 즐기겠다는 원칙에 너무나 어그러지는 사고방식 아닌가. 곳곳에 드러나는 이러한 택리(擇里)에 관한 그의 생각이 일신의 평안만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는 것 같아서 하는 얘기다. 경기도 광주에 관한 그의 소견은 이런 인식의 극치가 아닐는지. “성 밖의 산 밑에는 살기가 감돌고 있다. 만일 사변이 생기는 날이면 반드시 전쟁을 치러야 할 지역이다. 그래서 광주 온 고을은 살 만한 곳이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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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조 풍수연구가·지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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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차 강조했지만 택리지의 우수성은 재언을 요하지 않는다. 위에서 지적한 그의 편향된 사고는 그의 생애와 시대가 만들어낸 것이라 이해는 한다. 그러나 사대부라면 모름지기 시대를 앞서가는 혜안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말하자면 나의 희망을 피력한 것일 뿐이다. “거처한다는 것은 내 몸을 편안케 하는 것이며 이는 곧 외적인 것이지만 마음에 즐거운 것은 여기에 있지 않으니 곧 내적인 것이다. 내외적인 것의 분별을 능히 살펴 마치 빈 배와 같은 몸으로 경우에 따라 편안하게 여긴다면 모두가 구석자리를 다투어 앉을 것이니, 또 어찌 살 곳을 반드시 가릴 것인가.” 이미 그는 일찍이 택리의 불필요성을 감안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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