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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경주는 메트로폴리스였다”

淸潭 2007. 3. 10. 10:20
  • “신라 경주는 메트로폴리스였다”
  • 경주의 탄생
    이기봉 지음 | 푸른역사 | 383쪽 | 1만4000원
    • 지리학 박사가 신라 경주를 인구와 지리적 측면에서 논쟁적으로 분석했다. 저자는 조선은 작은 나라라는 암묵적 인식을 버릴 것을 주장한다.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적지만, 현재 유럽과 비교해도 남북한 인구 7000만명 수준을 웃도는 나라는 러시아와 독일 정도라는 것이다. 고대사도 마찬가지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경주 인구는 근(近) 18만 가구였다. ‘정통(강단) 역사학계’는 이를 믿지 않는다. 그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삼국지 위서 동이전, (후)한서, 심지어 부여 정림사터 5층 석탑에 새겨진 명문 등을 바탕으로 “이 기록이 틀렸다고 이야기할 근거도 없다”고 지적한다. 경주는 70~80만명(18만 가구×4~5명)이 살았던 고대의 ‘메트로폴리스’였다는 이야기다.

      그의 주장을 역사학계가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일 지는 미지수다. 그는 정림사터 5층 석탑 명문 기록, 그러니까 백제가 망할 당시 인구는 ‘24만호에 620만명’이라는 기록도 무조건 틀렸다고 이야기해서는 안되며, ‘124만호’를 ‘24만호’라고 잘못 적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반대로, ‘620만명’은 혹 ‘62만명’의 오기일 수 있지 않을까? 좀더 엄정하게 사료를 비판하고, 고고학적 자료를 좀 더 활용했으면 좋았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