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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섭받지 않을 권리가 진정한 자유다

淸潭 2007. 3. 10. 10:17
  • 간섭받지 않을 권리가 진정한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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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세기와 고전
    2. 자유·평등·민주주의 ⑩ 이사야 벌린‘자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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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은 자유를 갈망한다. 공부에 지친 학생이나 일에 찌든 직장인 모두 자유를 원한다. 그리고 탈북자는 자유를 찾아 사선을 넘는다. 인류가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긴 이래, 자유는 빵이나 돈보다 더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자유로울 때 비로소 인간은 삶의 주인이 되며 행복을 경험한다.

      자유에 대한 논의는 고대로부터 있어 왔지만, 사상사에서 200여 가지의 자유개념이 발견될 정도로 그 정의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이사야 벌린(1909~1997)이 ‘적극적(positive) 자유’와 ‘소극적(negative) 자유’로 나누어 후자를 옹호할 때, 그 의미가 비로소 잘 드러난다. 그의 논의는 1969년 출판된 ‘자유에 관한 네 논문(Four Essays on Liberty)’과 이것의 2002년 수정·증보판인 ‘자유론(Liberty)’에 자세히 나와 있다.

      자유가 그의 평생 연구테마가 된 것은 그의 삶과 연관이 깊다. 1909년 라트비아에서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난 벌린은 1915년 독일군이 진주하자 러시아로 이주해야 했으며, 그 후 볼셰비키혁명 때문에 라트비아로 돌아왔고, 1920년 공산주의자들의 위협을 피해 결국 영국으로 이주해야만 했는데, 이는 자유를 찾는 여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적극적 자유와 소극적 자유의 차이를 발견한다. 먼저 적극적 자유란 인간이 이성의 명령에 따라 자기를 실현하고 자신이 자기의 지배자가 되고자 하는 자유이다. 여기엔 스토아 철학과 종교에서처럼 개인의 절대적 인격완성이나, 플라톤·헤겔·마르크스에서처럼 유토피아, 국가, 계급의 한 구성원으로서 참여를 통한 사회적 인격실현을 위한 자유가 포함된다. 즉 철학이나 종교가 규정한 의무를 따르거나 사회가 지향하는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자유의 달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벌린은 적극적 자유가 전체주의와 폭력의 위험을 안고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프랑스혁명이나 러시아혁명에서 보여준 것처럼 이것은 자유를 어떤 도덕적 선이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만 간주할 뿐이며, 폭력과 강제가 자유의 실현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소극적 자유는 강제의 부재 상태, 즉 타인에 의해 방해받지 않고 여러 대안 가운데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소극적 자유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 삶이 간섭받지 않는 사적인 영역이며, 이는 사회참여로부터 생기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소극적 자유란 간섭과 착취, 예속의 부재 속에서 자신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이며, 무엇을 하고자 하는 자유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자유로운 행위를 일컫는다.

      혹자는 소극적 자유를 자유의 기회개념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즉 이런 자유는 단순히 그런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만 뜻할 뿐이며, 현실의 여러 조건 속에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참여와 목적 실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비판은 타당하다. 벌린의 소극적 자유는 처음 출발점과 최종 상태에 있어서는 그럴 듯하지만, 자유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벌린은 우리의 일상적 현실이 너무나 복잡하고 유한하며 다원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어느 틀에 맞추어 무엇을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재단해서는 자유 자체를 보장할 수 없다고 본다. 이런 현실 속에서는 오히려 소극적 자유가 도덕적 삶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오직 간섭으로부터의 자유와 끊임없는 선택을 위한 여지가 제공되는 것이 다른 어느 것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벌린이 소극적 자유를 강조한 것은 개인적 자유에 독단적으로 집착했기 때문은 아니다. 도리어 규범에 따른 합의의 요청보다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는 다원주의가 더 진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즉 벌린이 생각하는 자유주의적 질서는 바로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차이를 관용하는 질서이며, 여기선 어떤 하나의 목적을 내세우기보다 그들의 선택을 관용하는 것이 더욱 자유에 가깝다. 이런 점에서 20세기 전체주의에 대항하는 개념으로 제기된 벌린의 자유개념은 다양성과 차이에 주목하는 21세기 포스트모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