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서예실

'붓장이' 김종춘씨

淸潭 2007. 3. 9. 15:53

▶한국의 名人◀'붓장이' 김종춘씨

 

'붓장이' 김종춘씨

(울산=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50년 넘게 붓을 손으로 붓을 만들고 있는 울산시무형문화재 3호 '모필장' 보유자 김종춘 씨. 그는 붓 제작 만으로는 수지가 맞지 않아 부업으로 먹도 만들고 있다. 울산시 울주군 두동면의 작업실에서 김씨가 기자에게 먹의 제조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울산=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배운 게 없어서 붓을 만들고 있지만 붓을 만드는 일은 항상 즐겁습니다"
울산시 울주군 두동면 산자락의 허름한 작업장에서 울산시 무형문화재 3호 '모필장' 보유자인 김종춘(65)씨가 얼굴에 숯검정을 묻힌 채 웃고 있었다.

   "왜 붓이 아닌 먹을 만들고 있느냐"고 묻자 전통공예가의 어려운 현실을 대변하듯 "붓만 만들어서는 경제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곳은 김씨가 3년 전 먹을 만들기 위해 마련한 작업장이다. 그의 필방 '죽림칠현'은 울산시내 성남동사무소 인근에 위치해 있다. 겨울철에 김씨는 주로 두동면의 작업장에 살다시피 하며 먹을 만든다.

   그러나 모필장인 그의 본업은 붓을 만드는 일이다.

   1993년부터 울산에 살고 있는 김씨는 울산지역에서는 꽤 유명한 '붓장이'다.

   그는 경북 청도가 고향이다. 붓을 만들기 시작한 게 6.25 직후라고 하니 붓 하나만을 만들며 살아온 세월이 반 세기가 훌쩍 넘었다. 열 다섯 살 소년은 온 나라가 전쟁으로 쑥대밭이 된 폐허 속에서 먹고 살 길이 막막해 붓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당시 경남 밀양에는 국내에서 가장 큰 붓 만드는 회사가 있었다고 한다. 김씨는 붓 장인으로 이름을 날리던 고(故) 김형찬씨로부터 기술을 배웠다. 볼펜 등의 필기구는 매우 희귀했고 주된 필기구는 붓 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밀양에서 열심히 붓을 만들던 김씨는 더 나은 환경에서 붓을 만들기 위해 광주, 목포, 대구, 서울 등 전국 각지를 전전했다. 전국 각지에서 붓을 만들어 납품해 큰 어려움 없이 살아왔지만 대구에 있을 때는 화랑을 겸업하며 그림에 손을 대 큰 손해를 보기도 했다.

   이후 1970년대에는 서울로 옮겨 망우리에 작업장을 만들었다. 제자 10여명과 함께 붓을 만들어 대신당, 동신당, 구하산방 등 인사동의 유명 필방들에 납품했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1993년 울산에 정착했다.

   이후 그의 필방 '죽림칠현'은 15년 가까이 울산-영남지역 서예가와 동양화가들이 붓을 구하기 위해 들르는 '산실'이 됐다.

   "요즈음 인건비도 올라가고 수요도 적어서 젊은이들이 붓을 만들려고 하지 않아요. 필기구가 발달하고 서예가들도 붓 한번 장만하면 몇 년씩 아껴서 쓰는데 수요가 생겨날 턱이 없지요"
휘하에 부리던 제자들도 이제는 떠나고 없지만 그는 여전히 50년째 붓 만드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김씨의 노련한 손끝에서 나오는 정교함은 여전히 명필과 명화를 탄생시키는 출발점이 되고 있다. 그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무척 강했다.

   "붓은 80여 종이 있어요. 쓰임새가 그 만큼 다양하다는 뜻이죠. 오래 붓을 만지다 보니 새롭게 개발한 붓도 있지요."
붓은 재료에 따라 크게 양모붓, 황모붓, 장액붓으로 나뉜다. 양모붓은 너구리 등털, 황모붓은 족제비 꼬리털, 장액붓은 노루겨드랑이 털로 만든다. 40년 전 내몽골의 야생말 꼬리털로 만들기 시작한 '삼마필'도 있다.

   붓은 또 용도에 따라 글씨붓, 동양화붓, 사군자붓, 채색붓 등으로 나뉜다고 한다. 동양화붓은 힘을 실어야 하기에 털 길이가 짧은 반면 사군자붓은 흘림이 좋아야 하므로 털이 긴 것이 특징이다.

   "손이 참 많이 갑니다. 붓 한 자루에 150번 가량 손길이 가지요. 많은 정성을 들여야 좋은 붓이 탄생합니다."
붓 제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털을 구하는 것이라고 한다. 좋은 콩이 좋은 메주를 만들 듯이 털의 질이 붓의 완성도를 가늠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내몽고 염소털을 찾아 중국 황저우(黃州) 지방에 다녀왔다. 좋은 붓의 재료로 쓰이는 염소털은 1㎏의 가격이 80만원에 달한다.

   "보드랍고 반짝거리는 내몽골산 새끼염소의 수놈 털을 최고로 칩니다. 3월에는 좋은 털 구하러 중국. 몽골 등지를 돌아볼까 합니다"
모필장 김씨의 좋은 털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었다.

   김씨는 털을 고르는 빗과 붓대를 자르고 깎아내는 칼, 그리고 작업을 할 수 있는 받침대 등 단출한 기구만을 가지고 50년째 수작업으로 붓을 만들어 왔다. 그가 설명하는 붓 제작 공정은 이렇다.

   일단 만들 붓의 크기에 맞게 털을 자른다. 자른 털을 넓은 판에 널어놓고 골고루 섞은 뒤 왕겨 태운 재를 뿌려 다리미로 가열, 동물성 기름을 제거한다. 다음에는 털 뭉텅이를 잡고 빗질과 체질을 해 결을 고르게 하는데 이 과정에 가장 손길이 많이 간다고 한다.

   그리고 정리한 털을 저울에 달아 붓의 크기를 최종 결정한다. 황모 세필의 경우 털 무게가 1g도 안되는 것도 있고 삼마대필은 715g에 이르는 것도 있다.

   다음에는 털 다발의 바깥으로 다른 털을 물에 적셔 돌리는데 이렇게 하면 붓의 겉면이 반듯해 진다. 김씨는 이를 '치마를 돌린다'고 표현한다. 이어 털 한쪽을 실로 묶어 한 묶음씩 붓대에 끼운다.

   마지막으로 적당한 길이로 대를 잘라내고 풀을 먹여 털끝을 뾰족하게 하면 붓이 완성된다. 워낙 품이 많이 들기 때문에 한 달에 300개를 만들기 힘들다.

   부인 박금식(59)씨도 수시로 김씨의 일을 거들고 강원도에 살고 있는 큰딸 근애(34)씨가 틈틈이 아버지의 붓 제작기술을 익히고 있다. 그는 딸을 '모필장' 이수자로 등록할 예정이다.

   "50년 가까이 붓을 만들며 늙다 보니 이제는 세상사 굳이 욕심낼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는 '문방사우'(文房四友)를 다 만들어 보겠다는 '욕심'이 있다. 지금은 붓과 먹을 만들지만 언젠가 벼루나 종이도 자신의 손으로 만들겠다는 꿈이 그의 얼굴을 빛나게 했다.

   숯검정을 묻힌 채 차 한잔을 권하는 그의 두동면 작업실 한 켠에는 그와 호형호제하는 동양화가 박영근씨가 그려 선물한 그림 '산마웅필'(山馬雄筆)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큰 붓을 잡고 있는 김종춘씨의 모습이 뛰노는 말처럼 역동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림 속 '붓장이' 김씨의 두 눈은 그가 만든 붓으로 '화룡점정의 명작'을 만들어내는 작가들의 출발점 처럼 느껴졌다.

   yongl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