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의 어법연구 4
1. 내 그럴줄 알았어!!
나는 최근에 되는 일이 없었다.
안되는 놈 자빠져도 코가 깨지고,
바둑에서 하나 잘못 놓은 돌 때문에 대마가 잡히듯이
사주에도 없는 백전백패를 당했다.
그래도 끝까지 우리 어머니는 "네가 세상을 잘못 만나서 글타"고
자식을 잘 알고 계속 변함없이 두둔하고 계시지만
아내의 빈정거리는 " 내 그럴 줄 알았어!!"하는 이 자조섞인 말은
나를 더 화나게 만든다.
하지만 내가 나를 못믿는데 어찌 내 아내가 믿어 주겠는가.
가만히 있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지만
글타고 계속 가만히 있기는 너무 갑갑해
어쩌다 꿈쩍 한 번 하면 사고를 치고 마는 현상이 되고 마니
아내에게 "내 그럴 줄 알았어!!"하는 말을 또 듣게 되고 만다.
알써 가만히 있으면 될꺼아냐....하고 하지만...
산 목숨 어찌 가만히 있어야만 하는가...
그럴 줄 알면서 왜 자꾸 그럴 줄 안다고 하까....
그러니 삶이 모순덩어리이다.
2. 이젠 살만한가보다.
육체와 정신은 정말 떨어질 수가 없다.
오도가도 더이상 갈 데가 없으면 술집밖에 더 있는가.
허구헌 날 지겹게 술퍼먹고 다니는 그 왠수...잉간...
맨정신에 집에 있으면 차라리 형무소가 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답답하다.
그래서 독립운동 하듯이 뛰쳐 나가봐야
해지고 어두우면 백기 들고 기들어 와야 되지만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술로 인한 대군을 이끌고
당당하게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면 술취한 놈 대꾸해봐야 지만 손해니까
그땐 내 아내가 져준다.내 해달래는대로 다 해준다.
어느덧 나는 뻗는다.
죽음에서 겨우 일어나서 꿀물을 마시고 나면
천당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이 소리요
꿀물보다 더 단 소리다.
"이그..이제 살만한가보다!!"
3. 반반 섞었으면 딱 좋겠다.
이 말은 분명 한 쪽이 싫어서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누가 날 흉보면 얼른 얼버무리기도 한다.
통닭을 시킬 때도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시키듯이
양 쪽을 다 선호하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체념도 섞고, 포기도 섞고,
두리뭉실 범벅을 만들며 살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물론 결혼초야 내가 좋아서 결혼을 했으니
나의 지랄같은 성격도 매력으로 보였었으나
요즘은 입맛이 입맛인지라 변해서
누구라도 튀어 나오면 잽싸게 비교분석하고
결국 나를 제물로 잡아서 믹서해 버린다.
왠수같은 잉간이라 하지만
그래도 다행히 결론은 항상 반반이었다.
그래, 난 아직 반은 살아있다.
누구는 반커녕 보니까 아주 바닦에 짖익이더라..
요즘은 반이라는 말이 그래서 줄창나게 생각난다.
반평생 살았으니 반이지만
사람 사는 것도 반반 오십보백보며
반반하게 살아봐야 얼마나 번번하겠냐...
이제 반이니 아직도 반이 있다.
반이라는 어감이 싫지도 않고 좋지도 않다.
반반이라는 말은 장삿꾼얘기이면서도
가장 타협적인 말이다.
그래...그래 ....그래....
난 끄나풀을 잡고 사는 심정이다.
아무거라도 내게 잡히면 죽는다.
그러나 막가는 인생은 아니다.
난 행복하다.
아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자존심을 못버리면 할복을 해야한다.
자존심을 버리고 항복하면 행복이다.
지지고, 볶고, 술 퍼먹고, 줘 터지고
황복으로 술국을 끓이면 행복이다.
아~ 이젠 덤으로 사는 인생.
불행하지 말자.
내 아내의 마지막 말을 정리할 때쯤이면
난 아마도 진정 해피할꺼야....
행복은 어짜피 내 것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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