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절을찾아

그대…봉암사로 오라

淸潭 2007. 1. 25. 08:38

부처의 법대로 살고자 하느냐

그대…봉암사로 오라

현대불교의 틀 놓은 ‘봉암사 結社’ 60주년… 그곳에 가다

봉암사=김한수기자 hansu@chosun.com

 

봉암사 선원에서 수행 정진 중인 스님들이

 24일 낮 점심공양(식사)을 마치고 선원으로

돌아가고 있다. 봉암사(문경)=김한수기자

 

“아이고, 수행하시느라 얼마나 수고 많으십니까.”

24일 오전 경북 문경시 희양산 봉암사 주지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봉암사 태고선원장 정광(淨光) 스님이 들어서자 반갑게 손을 잡고 서로 이마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정중히 인사를 나누었다. 이날 지관 스님은 이 곳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을 만날 때마다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잡고 “수고한다”고 인사를 건넸다. 진심으로 고마움이 배어나는 인사였다. 이날 총무원장의 봉암사 방문은 ‘동안거(冬安居·음력 10월 보름부터 정월 보름까지 3개월간의 집중수행)’ 기간 중 수행자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조계종 행정의 최고 수장인 총무원장이 이날 안거(安居)기간 중 직접 방문해 특별히 격려한 사찰, 봉암사는 한국 현대불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현재 조계종의 종지종풍(宗旨宗風·종교의 중심되는 가르침과 기풍)의 발원지가 봉암사이다.

1947년 성철·청담스님 등 주축 ‘일제 잔재’ 몰아내

일반신도엔 1년에 한번 ‘부처님 오신 날’ 山門 개방

오직 수행·정진… “대통령이 와도 내다보지 않는다”

가장 큰 배경은 지금부터 꼭 60년 전인 지난 1947년 성철, 청담, 자운, 향곡 스님 등이 주축이 돼 벌인 ‘봉암사 결사(結社)’. 광복은 됐지만 여전히 우리 불교에 일제 강점기의 영향이 남아있던 시절, 20~30대의 수행 열기 가득하던 스님들은 ‘부처님 법대로 살자’며 백두대간의 단전에 해당한다는 이 곳 봉암사로 찾아 들었다. 스님들은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않는다)’ 등의 ‘공주규약(共住規約)’을 정했다. 시주에 기대지 않고 노동하고 수행하겠다는 자급의 의지였다. 규약을 어기면 어김없이 쫓겨났다. 절에 남아있던 탱화도 부처님과 그 제자를 담은 것을 빼곤 싹 뜯어냈다. 가사·장삼 등 복식과 스님들의 식기인 발우도 옛 전통을 살렸고, 신도들이 스님에게 3배(三拜)를 올리는 전통도 세웠다. “밥 값 내놓으라”며 경책하는 등 도반(道伴)간의 수행에 관한 경쟁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

‘봉암사 결사’는 1950년 초반 빨치산들의 출몰 때문에 마감됐다. 그러나 이때 세운 전통들은 지금도 조계종에서 계승되고 있다. 천주교의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현재 세계 천주교의 준거를 만들었다면, ‘봉암사 결사’는 현대 한국불교의 기틀을 마련한 셈. 당시 결사에 참가했던 스님 중 청담, 성철, 혜암, 법전 등 종정만 4명이 배출됐다는 것은 봉암사 결사의 의미를 잘 보여준다. 현 총무원장 지관 스님도 1949년 봉암사 결사의 끝무렵에 동참했다.

 

또 1968년에는 고우, 법련 스님 등 10여명의 선승(禪僧)들이 다시 봉암사에서 결사를 벌였다. 이후로 봉암사는 조계종에선 선풍(禪風) 진작의 상징이 됐다. 1982년에는 조계종 종립 특별수도원으로 지정됐다. 그 후론 1년에 딱 한 번, ‘부처님 오신 날’에만 산문(山門)을 열어 일반 신도들의 방문을 허용한다. 그 외의 기간엔 오로지 수행 정진뿐, 일반 신도의 등록도 받지 않는다. 한때 정부가 희양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 개발하려 했으나 봉암사 스님들뿐 아니라 전 조계종단이 나서서 반대해 무산시킨 바 있다.

 

 

총무원장의 방문 덕분에 24일 취재진에게 잠시 문을 열어준 봉암사는 60년 전 선배 스님들의 수행열기가 시퍼렇게 살아있었다. 기자들에게 허용된 공간은 주지실과 대웅전 그리고 식당뿐, 태고선원쪽은 얼씬도 못하게 했다. 총무원장 스님이 방문했음에도 주지·선원장 스님 등 소임자들만 마중 나왔을 뿐, 수행자들은 그저 정해진 일과를 따르고 있었다. 지관 스님도 전혀 섭섭한 눈치가 아니었다. ‘대통령이 와도 내다보지 않는다’는 명성 그대로였다. 현재 정진하는 스님들은 70여명. 대부분 선승들은 3개월 안거 기간 동안 하루 10시간씩 참선수행하지만 구참 선승 20명은 ‘10개월 결사’를 벌여 벌써 여덟 달째 매일 12시간씩 정진 중이다. 조계종 중앙종회(의회에 해당) 의장을 지낸 지하(智霞) 스님도 의장 임기를 마치자마자 봉암사에 들어와 3년째 수행 중이다. 지하 스님은 “나이 많아도 참선수행 경력이 적으면 이 곳에선 구박 당한다”며 “그럼에도 수행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계종은 올해 ‘봉암사 결사 60주년’을 맞아 심포지엄을 여는 등 그 의미를 되새기고, 선풍(禪風)을 되살리는 계기로 삼을 계획이다. 그러나 정작 봉암사 주지 함현(涵玄) 스님은 “60년 전 스님들의 결사는 획기적인 일이었다”면서도 “그러나 기념은 종단에서 할 일이지, 우리는 수행할 뿐”이라고 말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봉암사결사'가 빨치산들의 출몰로 끝나게 된 배경을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조선일보 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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