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절을찾아

25만 ‘인텔리 신도’ 거느린 능인선원의 비밀 5

淸潭 2006. 12. 18. 14:36
25만 ‘인텔리 신도’ 거느린 능인선원의 비밀
눈높이 설법, 유리알 회계로 강남 도심 ‘태풍 포교’
 

▼ 능인선원의 촘촘한 조직은 어떻게 만들어졌습니까.

“사람이 많이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자원봉사 조직입니다. 사실 ‘조직’이라기보다는 ‘울타리’ 같은 것이지요. 신도들의 필요 때문에 생긴 자생적 조직이라고 할까요. 막스 베버도 현대사회는 시스템 사회라고 하지 않았나요. 제가 간섭하는 부분도 없고 간섭할 일도 아닙니다. 저는 누가 어느 조직에 있는지 다 알지도 못합니다.”

▼ 회계가 투명한 것으로 유명하더군요.

“외부 공인회계사로부터 결산 감사를 받고 그 결과를 공개합니다. 최소한의 양식이 있다면 치부(致富)를 할 수는 없지요. 중이 재산을 가져 뭣합니까, 물려줄 것도 아닌데. 정말 어항 속의 금붕어처럼 살고 있습니다. 취재해서 알겠지만 신협도 그렇고 모든 조직이 크로스 체크가 됩니다. 회계도 컴퓨터 프로그램이 알아서 하고요. 전체가 공동책임을 지는 것이지요. 신자들도 명예가 있으니까 알아서들 잘할 겁니다.”

연꽃은 탁한 연못에서 핀다

능인선원 포이동 법당은 1995년 완공 당시 재단법인 능인선원과 사회복지법인 능인선원으로 등록한 까닭에 대한불교 조계종 소유의 사찰이 아니다. 또 이곳의 불교대학을 졸업해도 조계종에서 인정하는 각종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능인선원은 조계종단과 낯을 붉힌 일도 있다. 조계종단은 능인선원 포이동 법당을 조계종 재산으로 환수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조계종 총무원의 한 관계자는 “능인선원은 조계종 소유로 돼 있지는 않지만 원장스님이 조계종 스님이라 현재의 상태를 말하기가 애매하다”고 했다. 대신 능인선원은 공터에 이름만 남아 있던 북한산 국녕사를 100여억원을 들여 복원한 후 조계종에 헌납했다. 따라서 국녕사는 능인선원의 지원이지만 조계종에 분담금을 내는 공식적인 조계종 사찰인 셈이다.

▼ 포이당 법당의 조계종 복속을 놓고 말이 많았지요.

“포이동 선원은 불자의 출연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불교의 재산이자 신도들의 재산입니다. 모든 인간이 자연을 공유하듯, 능인선원도 모든 불자의 것이지요. 법당을 조계종 재산으로 옮기려 해도 현재는 법적으로 불가능하게 돼 있습니다. 포이동 선원은 조계종의 종헌, 종법에 따라 재단의 이사장은 반드시 조계종 스님이 하고 이사의 절반도 조계종 스님이 맡도록 되어 있습니다. 얼마 후 상좌스님이 많이 나오면 이사의 정족수를 채울 것이고 제가 세상을 떠나면 조계종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것입니다.”

능인선원과 지광스님은 참선을 수행의 기본으로 하는 기존 불교의 관점에서 다소 벗어나 포교와 전법 중심으로 수행을 하다보니 불교계 일각으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지광스님은 “부처가 되는 길에는 참선이라는 한 가지 수행법만 있는 게 아니다”고 잘라 말한다. 스님은 1994년 서의현 조계종 총무원장 체제가 무너질 당시 종단개혁 세력으로 동참한 바 있다.

▼ 지나치게 신도 교육과 포교에만 열중한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저도 산중에서 몇 년을 살았지만 참선은 수행을 위한 방편이자 수단일 뿐입니다. 수행에는 참선뿐 아니라 염불도 있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요. 그런데 요즘 참선이 목적시되다보니 그것만 최고로 여기는 풍토가 있습니다. 저는 우리 삶 자체가 선(禪)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의 경지라는 것은 불의의 경계, 나와 남이 하나가 되는 경계, 화두를 타파하는 경계, 번뇌와 망상을 깨는 경계를 가리키는데 이는 삶 자체가 선적인 삶이 아니면 오를 수 없는 경지입니다. 어디 진리가 산중에만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연꽃은 탁한 연못에서 핀다’고 하셨습니다. 연꽃이 어디 산에만 피는 것입니까. 불교도 이제 종교의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대지(大志)는 대지(大地) 위에 있다’

서울대 윤원철 교수는 “능인선원은 스님과 신자의 수직적 관계를 수평적으로 바꿨을 뿐 아니라 전통 사찰에서 고집하는 참선 일변도의 수행에서 한걸음 나아가 전법과 포교 중심으로 사찰을 운영함으로써 불교의 도심화, 대중화에 성공했다”며 “개신교, 가톨릭 교회의 운영방식 중 좋은 점만을 벤치마킹함으로써 도심의 불자들이 불교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능인선원의 일요법회와 가정법회, 새벽법회는 교회나 성당의 그것과 닮았다. 능인선원의 이런 포교 모델은 불교 내에서뿐만 아니라 종교학 차원에서도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능인선원을 대상으로 해 쓴 논문도 여러 편 나와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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