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슐린' 이름 지은 샤퍼, 혈당조절 선구자 조슬린 센터, 대한당뇨병학회 김응진 박사
당뇨병 환자에게 삶의 희망을 준 가장 위대한 발견은 1921년 인슐린의 발견이다. 인슐린의 발견으로 제1형 당뇨병 환자의 생명을 살리게 되었고 현재도 인슐린은 당뇨병의 가장 중요한 치료약제로서 공헌하고 있다.
당뇨병은 진행함에 따라 만성 합병증이 발생하는 병이다. 하지만 철저한 혈당조절과 혈압조절을 통해 만성 합병증의 발생을 예방할 수 있다는 증거가 DCCT(당뇨병 조절과 합병증 연구), UKPDS(영국의 전향적 당뇨병 연구) 등의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이러한 연구는 당뇨병의 관리에 중요한 방향을 제시하였다.
한편 10여년 전부터는 극히 제한된 제1형 당뇨병 환자에서 췌도 이식 수술을 시행하기 시작하였고, 면역거부 반응 등의 문제로 성공률이 낮았으나, 2000년 캐나다의 샤피로 박사팀은 새로운 방법을 고안하여 성공률을 획기적으로 증가시켰다. 이 외에도 당뇨병을 연구하는 많은 의사 및 관련 전문가에 의해 여러 가지 치료약제와 방법이 개발되고 있다. 당뇨병은 다양한 원인과 병태생리를 나타내어 어느 한 가지 치료 방법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복합적인 병이다. 따라서 인슐린 발견 이외에 획기적인 치료방법을 개발하기란 쉽지 않으며, 또한 당뇨병 관리는 의사와 관련 전문가 팀에 의해 이루어지는 다각도의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여 한 사람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1. 프레드릭 G 밴팅 (캐나다·1891~1941)
1891년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밴팅은 1916년 토론토대학에서 의학 학사학위를 취득한 후 1918년부터 1919년까지 군의관으로서 1차 세계대전에 참여하였다. 1920년부터 1921년까지 런던의 웨스턴 온타리오대학에서 정형외과학 시간강사로 근무하면서 1922년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일찍이 밴팅은 당뇨병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당뇨병은 이전에는 나우닌, 민코스키, 오피에, 샤퍼 등의 연구를 통해 췌장의 랑게르한스 소도(小島)에서 분비되는 단백질 호르몬의 결핍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샤퍼는 이를 인슐린이라 명명하였다. 인슐린은 체내 포도당의 대사과정을 조절하며 이의 결핍이 체내 혈당의 상승을 일으켜 소변으로 과량의 당 배설이 초래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었다. 하지만 췌장에서 인슐린을 분리, 정제하려는 노력은 모두 실패하였는데, 이유는 췌장의 단백분해 효소(트립신)에 의해 인슐린이 모두 파괴되기 때문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하던 밴팅은 모제스 바론의 논문에 주목하였다. 내용은 췌관을 실험적으로 묶었을 때 트립신을 분비하는 췌장세포들은 변성이 일어나는 데 반해 랑게르한스 소도는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점에 착안하여 밴팅은 췌관을 결찰(結紮)하면 인슐린의 파괴 없이 트립신을 분비하는 세포의 파괴가 일어나며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여 트립신 분비세포의 파괴를 유도하면 정상적인 랑게르한스 소도에서 인슐린을 추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밴팅은 가설의 검증을 위하여 토론토대학의 생리학 교수인 매클레이드와 상의하였고 1921년 그의 연구시설을 빌려 의대생이었던 찰스 베스트와 함께 실험을 시작하였다. 이들은 수십 차례에 걸친 동물실험을 거듭하였고 결국 92번째 개의 췌장에서 인슐린을 추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생화학자 제임스 콜립은 이 물질을 순수하게 정제하는 데 성공하였으며 정제된 인슐린은 임상에서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였다. 그 공로로 밴팅과 매클레이드는 192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다.
2. 조슬린 당뇨병 센터
미국 보스턴의 조슬린 당뇨병 센터는 인슐린이 발견되기 25년여 전인 1898년 설립되었으며 당뇨병 연구, 치료 및 환자에 대한 교육에 선도적 역할을 해왔다. 조슬린은 하버드 의대와 제휴하여 여러 방면에서 중요한 업적을 이루었다.
당뇨병 조절의 팀 모델(team model)을 제시함에 있어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다. 교육을 통해 당뇨병 환자 스스로가 자신의 병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하도록 강조하였고 또한 치료에 동참하게 하였다. 이러한 선진적인 치료모델은 20세기 초 센터의 설립자인 조슬린 박사 및 그의 동료들에서부터 시작되어 왔다. 조슬린은 당시 당뇨병 치료 방법으로 널리 행해지던 알렌의 기아요법(startvation diet)에 대해 찬성하였으나 급격한 금식이 산증(酸症)을 비롯한 여러 합병증을 악화시킨다는 것을 발견하여 천천히 절식을 유도하였으며 팀 모델의 장점을 살려 알렌을 능가하는 임상 경과를 보였다.
또한 조슬린 센터는 혈당의 엄격한 조절이 당뇨병 관련 합병증을 막는 중요한 수단임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조슬린 스타일의 당뇨병 조절법은 약 60여년간 논란을 일으키며 일부에서는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DCCT 이후 엄격한 혈당 조절이 당뇨병 관련 합병증을 유의하게 감소시킨다는 가설은 사실로 확립되었다.
프리실라 화이트 및 그의 동료들은 임상 진료 지침을 발전시켰다. 이로 인해 20세기 중반 당뇨병 임산부에 있어 50%에 불과하던 신생아 생존율은 현재 96%로 비약적인 향상을 보였다. 조슬린 센터는 당뇨병 관련 주요 안(眼) 합병증의 치료 수단인 레이저 응고술(Photocoagulation)의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인슐린의 작용, 췌도세포의 조절작용 및 혈관 조직 내 손상 기전에 대한 중요한 연구성과를 이루었다.
3. 췌도 이식
인슐린이 발견되기 전인 1893년 영국의 윌리엄스가 양(羊)의 췌장 조각 일부를 사람의 피하조직에 이식하였으나 실패한 바 있었다. 이후 췌장 및 췌장 조직의 일부를 이식하여 당뇨병을 치료하고자 하는 시도가 계속되었다. 1966년 미네소타대학의 켈리 등은 최초의 췌장 이식을 시도하였다. 췌장 이식은 1977년까지 약 60차례 시행되었으나 성적이 매우 저조하여 단지 2사례에서 성공하였다.
사람 췌장의 무게는 80g 정도로, 췌장 내에는 약 100만개의 췌도가 존재한다. 췌도 이식은 췌장 이식에 비하여 시술이 간편하고 반복적으로 시행할 수 있으며 이식 거부반응을 줄이고 이식편의 생존율을 올리기 위한 시험관 내 조작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의 장점을 살려 1976년 미네소타대학에서는 만성 췌장염 환자의 통증 완화를 목적으로 췌장 절제 후 췌도를 분리하여 간 문맥을 통한 최초의 췌도 자가이식을 시행하였다. 췌도 자가이식은 주로 만성 췌장염이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며 1990년부터 2000년까지 총 140예가 시행되었고 이식 1년 후 이 환자의 47%에서 정상 혈당치가 나타났다.
동종 췌도 세포 이식은 충분한 췌도 이식원의 부족과 면역 거부반응의 발생으로 자가췌도 이식에 비해 그 성적이 매우 낮았다. 하지만 다양한 면역 억제제의 개발과 함께 췌도 분리 및 이식과정의 발전이 있었으며 2000년 캐나다 앨버타대학의 샤피로를 비롯한 에드몬튼 그룹은 인슐린 치료에도 불구하고 혈당조절이 불량하며 빈번한 저혈당 증세나 저혈당성 혼수를 경험한 7명의 환자들에서 동종이식을 시행하였으며 모두 성공하여 췌도 이식의 신기원을 열었다.
4. 한국 당뇨병 치료의 선구자
우리나라에서는 지금도 을지대학병원에서 당뇨병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김응진 박사가 당뇨병 치료의 선구자다. 박사는 서울대학병원에 근무하다가 1959년 미국 미네소타대학에 교환교수로 가서 여러 합병증을 동반한 당뇨병 환자를 경험하고 국내 당뇨병 분야가 불모지임을 절감하였다. 귀국 후 우리나라에도 당뇨병 환자가 많을 것으로 생각해 우선 당뇨병 선별검사를 시행하여 많은 환자를 발견하였다.
그는 또한 우리나라 최초로 ‘당뇨병의 식사요법’이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이러한 수년간의 노력으로 1968년 10월 4일 대한 당뇨병학회를 창립하였다. 당뇨병학회는 30여년간 발전을 거듭하여 우리나라 당뇨병 환자의 관리에 많은 향상을 가져왔다. 또한 김응진 박사는 대한당뇨병학회에 자비로 ‘설원 연구비’를 제정하여 후학의 당뇨병 연구활동에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당뇨병의 완치를 위한 병태생리적 원인에서부터 합병증의 발생예방 및 치료 등에 이르기까지 세계 여러 의료진과 관련 전문가의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우정택 경희대 의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