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세상사는 이야기

가을전어와 노인

淸潭 2006. 9. 17. 22:09
 

가을 전어와 노인
 

 


告白과 回想





가을 전어와 노인

나도 늙어 가는걸까 ?

1.

얼마전 아내가 전어를 먹고 싶다기에
저녁식사를 겸해서 단골 일식집으로 가서 전어회를
한접시 시켜 먹었으나 전어회가 얼마나 비싼지
접시위에 모양내고 멋만 부리고 나와서
먹었는지, 안먹었지,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다.
며칠전 아내는
전어를 제대로 먹고 싶다고 전어를 시장에서 사왔으면 했다.
그래서 퇴근길에 부전시장 회센타로 가서
전어회를 썰어가서 집에서 먹기로 했다.

2.

결혼을 한 후 퇴근시간이 다 되어가면
아내에게 전화를 하는 것은 젊을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변함이 없으나 그 내용에는 차이가 있다.
젊고 잘 나갈 때는 저녁에 손님과 저녁 약속이 있으니,
술 접대 약속이 있으니, 먼저 저녁 먹으라는 내용이었다.
그 중에는 사업상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었지만
다른 이유로 그럴 때도 많았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1999년 이후
아내의 소중함을 가슴깊이 느끼게 된 후부터는
아내가 다시 친구처럼, 연인처럼,
때로는 누나처럼, 엄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의 그런 변화를 아내는
...젊고 잘 나갈 때는 마누라가 그렇게 애교를 부려도
무뚝뚝하게 하더니 이제 나이들고 힘 빠지니까
사람이 변했다...라고 타박한다.

그 또한 부인할 수는 없다.
내가 나이가 들어가고 있음을 확연히 느끼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가면 갈수록 아내가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퇴근 후면 가능한 아내와 같이 외식하고
쇼핑하고, 영화보고 산책을 하는 시간들이 늘어났다.

예전에는 퇴근할 때 아이들이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물어보고
그것을 사가지고 가는 것이 즐거웠는데
지금은 아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물어보고 사들고 간다.
그것이 행복해졌다.

3.

횟집 주인이 내가 주문한 전어회를 장만하는 동안
수족관에서 살아 움직이는 전어떼를 나의 곁에 서서
바라보는 노인 두사람이 있었다.
노인 두사람은 서로 무엇인가를 한참 의논을 하고는 물었다.

...전어 1kg에 얼마요 ?
...17,000원입니다.
...와...비싸네, 비싸서 묵겠나 ?
...다른데 가면 kg에 25,000원 합니다.

노인들은 전어가 맛있겠는데 하며 입맛을 다시면서도
선뜻 사지를 못하고 돌아서 가려고 했다.
이때 횟집 주인이 노인들을 불러 세웠다.
...드시고 싶으시면 만원어치를 썰어 드릴께요...
...오천원치는 안될까?
...에이, 전어는 그렇게 못팝니더...

노인들은 못내 아쉬운 발걸음을 옮기며 떠나갔다.

순간적으로 나의 가슴에 무엇인가 와 닿는 것이 있었는데
그 노인들을 불러 세울 수 없었다.
노인이라 하더라도 점잖게 양복을 입은 두 분에게
자칫 결례를 범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4.

두 노인이 떠난 후 고개를 숙이고 무심히 회를 다듬던
주인 아주머니가 독백을 하듯 입을 열었다.

...에이구, 할아버지들이 얼마나 드시고 싶었을까 ?
그냥 오천원어치라도 드릴껄 그랬나 ?

그 아주머니는 당신의 부모님을 떠 올리는 것 같았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자기가 먹고 싶은 것도 못 사먹어요.
등골 빠지게 일해서 자식들 키우고, 공부시키고,
나이들어 조금 모아 놓은 것 있으면 결혼시키는데 써버리고
자식들 장사 밑천 대주고 나면 그냥 빈털털이 되는거지...
그렇게 키워논 자식들이 부모 마음을 아나...
저거 마누라, 저거 새끼밖에 몰라, 부모는 안중에도 없어...
요즘 젊은 것들은 더해...
그런거보면 자식들 다 주지 말고 조금이라도 남겨 놓았다가
당신들 먹고 싶은 것 사 드시면 좋을텐데....

5.

두 노인이 전어 만원어치에다
소주 한병 곁들여서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깊은 아쉬움이 밀려오는 순간
그것이...
나이 들어감이,
남의이야기가 아니고 내게도 다가오고 있는
멀지 않은 미래라는 생각이 머리를 치고 지나갔다.

나는 나의 노인 모습을 늘 이렇게 상상해 왔다.
심플한 디자인의 벤츠를 직접 운전하며 해안길을 달리고
바다가 보이는 언덕위에 내가 직접 설계한 집을 지어서
마루가 넓은 서재에 앉아 내가 돌아본 세상들을
차근 차근 정리하며 마무리 할 것이라고....
그러나 현실은 꼭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도 그 두 노인처럼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며
먹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살다가
삶을 마감할 수도 있을거라는...

사실 더 한 욕심을 부릴 필요는 없지만
지금 이렇게 최선을 다해 일 할려고 하는 것은
꿈꾸는 노후를 위해서 일지도 모를 일이다.

6.

다듬은 전어회를 넘겨주던 아주머니가 한마디 더 했다.

...그 영감님들 내일 또 오시면 그냥 조금 썰어 드려야겠어요.
...그러세요, 그러면 제가 다음에 와서 그 돈을 드릴께요.

가을 전어
먹고 싶은 전어를 바라다 보고만 가는 노인들의 모습이
쉽게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노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의 의지로는 피할 수 없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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