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이상국후집 제2권 / 고율시(古律詩)
병을 치료하는 시 / 李奎報
내가 지난 가을 8월 30일부터 병이 들었다. 단독(丹毒)과 같은 것이었는데 지금까지 1백 30여 일을 앓았다. 여러 의원들이 주는 약이 모두 효험이 없었는데 우연히 항간에서 권하는 말을 따라 바닷물을 가져다 목욕을 하니, 그날 밤부터 가렵지 않고 딱딱한 모래알 같은 것도 모두 없어졌다. 그래서 이 시를 지어 여러 의원들에게 보여주어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였다.
지난해 가을 팔월 그믐에 / 去秋八月晦
붉은 소름 온몸에 돋았네 / 紅粟被渾體
단독 같은데 단독은 아니고 / 如丹復非丹
옴은 아니면서 옴인 듯하네 / 匪疥直如疥
긁으면 매우 시원하지만 / 爬梳味甚佳
그 뒤엔 배나 저리고 아프네 / 梳罷酸痛倍
통증이 다하면 굳은 모래같이 되더니 / 痛定成硬沙
빛깔은 짙은 먹물을 뿌린 듯 / 色似濃墨灑
다시 가려워 참기 어려우니 / 癢發又難忍
긁어 보니 진물이 솟아나고 / 抓作微汁潰
곧 이어 두드러기 되니 / 須臾還痱㿔
두꺼비 등과 무엇이 다른가 / 何異蝦蟆背
뭇 소인과 비유하건대 / 比如衆小人
처음의 달콤한 말 듣기 좋으나 / 初以甘言快
웃음 속엔 칼이 감추어 있어 / 笑刀藏其中
군자에게 해만 될 뿐이듯 / 覆爲君子害
찾아본 의원마다 효험은 없고 / 謁醫皆不效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였네 / 棄置無可奈
우연히 항간의 속언을 듣고 / 偶聞俚俗言
바다에서 소금물을 가져다 / 鹹水取於海
한 번 씻으매 가려움은 금방 낫고 / 一浴癢立除
두 번 목욕하니 몸이 맑고 편하네 / 再浴體淸泰
이제사 세상의 의원들이 / 迺知世上醫
의술에 한결같이 어두운 걸 알았네 / 爲術一何眛
영서의 파도만은 못하더라도 / 不及靈胥濤
남은 여세만도 오히려 힘입을 만하네 / 餘威猶可賴
멀리 오 대부를 생각하며 / 遙向伍大夫
머리 숙여 재배하노니 / 頓首敢再拜
사람 구제하는 것 참으로 이와 같으면 / 濟人苟如此
충분도 아마 거의 풀어졌으리 / 忠憤庶可解
[주-D001] 영서(靈胥)의 파도 :
《문선(文選)》 좌사(左思) 오도부(吳都賦)에 “영서는 오자서(伍子胥)의 귀신을 말한다. 그는 춘추 시대 초 나라 사람으로 오 나라에 와서 초 나라와 월 나라를 쳐 공이 있었으나 참소를 만나 물에 빠져 죽게 되었다. 그 후 강해(江海) 사이에 사는 사람들이 그 귀신을 두려워하여 물을 건너려면 모두 그 사당(祠堂)에 제사를 지냈다.” 하였다.
[주-D002] 오 대부(伍大夫) :
춘추 시대 초 나라의 오자서(伍子胥)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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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