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암집 제15권 / 시(詩)
물고기를 풀어 주다〔放魚行〕
노복이 도성에서 붕어를 사 와서는 / 僕夫買鯽來長安
내일 아침 반찬거리 삼으라고 말하는데 / 要我朝廚佐盤飡
한 마리는 제법 크고 한 마리는 좀 작은 게 / 一者頗大一差小
입은 아직 뻐끔대고 비늘도 온전하네 / 口猶呀呷鱗猶完
어리석게 떡밥에 눈멀지만 않았다면 / 向非智昏口中餌
어찌 몸이 낚싯대에 걸려들고 말았으랴 / 那由身掛沙頭竿
먹는 것에 정신 팔려 몸조심을 않았으니 / 咎在謀口不謀身
비록 솥에 들어간들 무얼 원망하겠는가 / 縱入烹燔何怨嘆
세상 사람 다 그러니 너를 어찌 탓할까만 / 世人皆是汝何誅
토막 쳐서 먹는 것은 인의 단서 아니리라 / 因是劊刌非仁端
노복에게 명하여서 한 손으로 들어다가 / 乃命僕夫一擧手
네모난 너른 못에 놓아주게 하였어라 / 放之方塘五畝寬
깊은 곳엔 연이 있고 얕은 곳엔 갈대 있어 / 深有蓮兮淺有葦
살랑살랑 헤엄치면 작은 물결 일어나니 / 掉尾搖鬣生微瀾
어어 양양 구태여 분별하지 않더라도 / 圉圉洋洋不須辨
살리기를 좋아하는 내 마음을 다하리라 / 好生吾自吾心殫
숲에서 나는 새는 주살 맞을 염려 있고 / 藪上飛鳧畏矰繳
가지 위의 참새는 탄환 맞을 일 많으니 / 枝頭黃雀多彈丸
물고기야, 떡밥 물어 사람에게 잡히는 일 없게 하라 / 魚兮愼勿貪餌爲人得
또 잡히면 오후정에 들어가게 될 것이니 / 再罹恐入侯鯖盤
[주-D001] 어어(圉圉) …… 않더라도 :
어어는 물고기가 어릿어릿하는 것이고, 양양(洋洋)은 유유히 헤엄치는 것이다. 춘추 시대 정(鄭)나라 대부 공손교(公孫僑)에게 어떤 사람이 산 물고기를 선물하였는데, 그는 못을 관리하는 하리(下吏)에게 주며 못에 놓아기르라고 하였다. 하리가 물고기를 삶아 먹어 버리고는 거짓으로 보고하기를 “처음 물고기를 놓아주자 어릿어릿하더니, 조금 지나자 유유히 헤엄쳐 갔습니다.”라고 하였으나, 공손교는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제 살 곳을 얻었구나! 제 살 곳을 얻었구나!”라고 하였다. 《孟子 萬章上》 물고기를 연못에 풀어놓는 상황이 비슷하여 인용한 고사이지만, 여기서는 물고기가 연못에서 과연 잘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주-D002] 물고기야 …… 것이니 :
오후정(五侯鯖)은 쉽게 맛볼 수 없는 진미(珍味)로, 한(漢)나라 때 누호(婁護)라는 사람이 다섯 제후 집의 대표적인 음식을 함께 넣어서 만든 요리이다. 《西京雜記 卷2》 떡밥을 탐하다가 낚시꾼에게 잡혀 죽고 마는 물고기처럼, 사람도 과도한 탐욕을 부리면 패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자 하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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