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漢詩

노구탄(老嫗嘆)

淸潭 2025. 2. 25. 20:08

노구탄(老嫗嘆)

사가시집 제29 / 시류(詩類)

 

동쪽 집의 할멈은 나이가 지금 팔십이라 / 東家老嫗年八十

백발이 얼굴 덮고 얼굴엔 검버섯이 피었네 / 白髮被面面梨黑

소녀 시절에 깊은 궁중에 뽑혀 들어가서 / 小小膺選入深宮

비단 짜고 수놓는 재주가 천하에 으뜸이라 / 織錦刺繡天下獨

손수 오색의 화려한 곤룡포를 지어 바치고 / 手獻五色袞龍袍

지존께서 한 번 웃고 돌아봐 주심을 입어 / 至尊一笑賜顔色

화려한 모자 옥비녀에 구슬 신까지 신고 / 花冠玉簪復珠履

온몸을 공작 수놓은 비단으로 감쌌으며 / 渾身綺縠金孔雀

내탕에선 은사로 날마다 만전을 내리었고 / 內帑頒恩日萬錢

촉금과 월라가 상자에 항상 가득했었네 / 蜀錦越羅滿箱篋

좋아한 이 없는 여자가 누굴 위해 모양내랴 / 女無悅己誰適容

하룻밤 새 비단 부채에 가을바람이 일었네 / 一夜綺扇生秋風

가을바람이 이는 걸 어찌할 수 있으랴 / 生秋風可奈何

이 몸도 낙엽처럼 시들어 떨어질 수밖에 / 此身零落如葉同

비록 나이 들어 얼굴은 쭈글쭈글하지만 / 年紀雖耄顔盡皺

눈은 밝아서 길쌈하는 일을 폐하지 않누나 / 眼明不廢紡績功

서쪽 집의 이팔청춘 꽃다운 아가씨는 / 西家小娘年二八

빨간 치마 남색 적삼에 흰 버선을 신고 / 茜裙藍衫白布襪

아침이면 연지 찍고 분단장 곱게 꾸미고 / 朝來脂粉迷塗抹

다시 붉은 꽃잎 비벼 손톱에 물들이어라 / 花紅染爪甲

비파를 배워서 능숙하게 타진 못하지만 / 學得琶琶不成聲

젊음 하나 갖고 온갓 교태를 다 부리면서 / 猶倚韶華嬌且黠

동쪽 할멈 한 번 보고는 죽어라 웃으면서 / 一見東嫗抵死笑

어이해 늙으면 얼굴까지 추해지는가 하네 / 何事年衰兼貌惡

아 아가씨야 할멈을 보고 웃지를 말거라 / 嗚呼小娘莫笑嫗

인생은 양정을 얻는 이가 흔치 않나니 / 人生兩井不多得

천금을 갖고 청춘과 바꿀 수도 없거니와 / 千金不得博靑春

백금을 갖고 백발을 살 수도 없는 거란다 / 百金不得買白髮

그대는 못 보았나 북망산 밑 장사 행렬 구름 같은데 / 君不見北邙山下葬如雲

태반은 요절한 아이의 무덤이라 하는구나 / 云是太半殤兒墳

 

[-D001] 내탕(內帑) :

왕조 시대 임금의 사재(私財)를 넣어두던 곳집을 이른다.

[-D002] 촉금(蜀錦)과 월라(越羅) :

촉금은 촉() 지방에서 생산된 비단을 가리키고, 월라는 월() 지방에서 생산된 비단을 가리키는데, 모두 아름답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D003] 좋아한 …… 모양내랴 :

《사기(史記)》 자객열전(刺客列傳)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위하여 죽고,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이를 위하여 모양을 낸다.〔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고 한 데서 온 말이다.

[-D004] 하룻밤 …… 일었네 :

가을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옴으로써 부채가 버림받게 된 것을 이른 말로, 전하여 여자가 늙어서 총애를 잃는 것을 비유한다. 한 성제(漢成帝)의 후궁(後宮) 중에 재색(才色)이 뛰어났던 반 첩여(婕妤)가 한때는 성제의 총애를 독차지했다가 뒤에 조비연(趙飛燕)으로 인해 총애를 잃고는 스스로 자신을 깁부채〔紈扇〕에 비유하여 원가행(怨歌行)을 지어 노래했던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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