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의 깨달음 4수 〔晩悟 四首〕/ 서형수(徐瀅修)
명고전집 제1권 / 시(詩)
첫째 수
공명심이 인생 망침 안 것도 오래지만 / 名心久識誤人生
늙고 쇠한 정력으로 무슨 일을 이루랴 / 窮老疲精底事成
만년 되어 깨닫네 이젠 어쩔 수 없음을 / 晩覺如今無賴爾
자식이나 가르치며 농사에나 힘써야지 / 會須敎子業農耕
둘째 수〔其二〕
한대(漢代)의 유학자들은 한 가지 경서 연구에 평생을 바쳐 / 一經專治盡平生
《예(禮)》학으로 《시(詩)》학으로 각자 일가 이루었네 / 名禮名詩各自成
경서(經書) 중 한 가지를 전문으로 연구하여 명망이 높았던 한(漢)나라 유학자들을 두고 한 말이다.
당송 이후엔 이러한 학문 풍토가 사라졌으니 / 唐宋以來無此學
번듯한 유자(儒者)의 복색이 외려 주경야독에 부끄럽네 / 儒冠却愧帶鋤耕
송나라 공연지(孔延之)가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가난하여 낮에는 책을 끼고 다니며 농사짓고 밤에는 관솔불 아래 책을 읽었다. 그는 평소에 오직 주돈이(周敦頤)ㆍ증공(曾鞏)과만 사이가 좋았다.
셋째 수〔其三〕
사서(史書) 경서(經書) 섭렵한 지 반평생이 되건마는 / 緯史經經到半生
《시고변(詩故辨)》 한 편을 완성하기 어려웠네 / 一篇詩故苦難成
내가 모장(毛萇)ㆍ정현(鄭玄)ㆍ주희(朱熹) 등 여러 학자가 풀이한 《시경》 ‘각 편의 요지[篇旨]’를 취합하여 《시고변》이라고 이름하였다.
작업도 하다 말다 하긴 했지만 재주가 낮아서인데 / 工雖作輟才緣下
이런 사람이 그래도 설경에 종사하누나 / 似此人猶事舌耕
가규(賈逵)가 경서의 문장을 입으로 외어 사람들을 가르치자 배우는 이들이 바친 곡식이 쌓여 창고에 가득하였다. 사람들이 이를 두고 가규가 근력으로 농사지어 얻은 것이 아니라 하고 마침내 ‘설경(舌耕)’이라고 하였다.
넷째 수〔其四〕
재주라곤 터진 버선 솔기의 실밥처럼 하찮은 것뿐이니 부끄럽구나 내 인생이여 / 能如襪線愧吾生
옛말에 “한팔좌(韓八座)의 기예는 터진 버선 솔기의 실밥과 같아서 한 가닥도 긴 것(한 가지도 장점)이 없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그의 기예가 모두 대충 섭렵한 것이지 충실하게 터득한 것은 없다는 말이다.
성취가 있다지만 없느니만 못하네 / 不愈無成號有成
장독이나 덮다가 울 가에 던져질 몇 권의 책들은 / 覆瓿擲籬多少卷
유가 글귀 모은 품이 삯품팔이 밭일을 한 것 같구나 / 儒家裨販卽傭耕
넷째 수〔其四〕
우환 겪고 돌아오니 늙어 버린 내 인생 / 憂患歸來老此生
남은 인생 생계는 어떻게 꾸려갈꼬 / 殘年活計問何成
논엔 벼가 풍족하고 산엔 고사리 풍성하니 / 水田足稻山饒蕨
내 오두막에 편히 살며 소작이나 부치리 / 吾卧吾廬課佃耕
[주-D001] 만년의 깨달음 :
【작품해제】 앞 시와 유사한 시기 가을의 작품이다. 다섯 수 모두 평성 ‘경(庚)’ 운의 평기식 수구용운체 칠언절구이다.
【校】 제목 원주의 ‘四首’는 교정고 가필사항이다. 이 시는 본디 5수로 지어졌으나 교정고에서 원래의 넷째 수를 삭제하도록 함에 따라 이와 같이 변경한 것이다.
[주-D002] 첫째 수 :
성취 없는 인생을 돌아보며 자식 교육과 농사짓기로 만년을 계획하는 내용이다.
[주-D003] 둘째 수 :
한 가지 경서(經書)를 전문으로 연구하여 일가를 이루었던 한대(漢代)의 학문 풍토가 당송 이후에 사라진 데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였다.
[주-D004] 【校】 경서(經書) …… 말이다 :
교정고 가필사항이다.
[주-D005] 帶鋤耕 :
‘호미를 끼고 다니며 농사일을 한다’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특히 경서(經書)를 연구하는 학자가 가난하여 농사일을 병행함을 일컫는다. 그 사례로 《한서》 〈예관열전(兒寬列傳)〉의 예관(兒寬)을 들 수 있다. 그는 천승(千乘) 사람으로, 《상서(尙書)》를 연구하며 구양생(歐陽生)을 섬기고 또 공안국(孔安國)에게 학업을 전수받았다. 가난하여 품팔이로 농사일을 했는데, 경서를 끼고 다니며 호미질을 하다가 잠시 쉴 때면 소리내어 읽곤 했다고 한다.
……………………………………………………………..
끝.
'글,문학 > 漢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웃사람 5수 〔隣人 五首〕 (1) | 2025.02.02 |
---|---|
농부의 탄식[農夫嘆] (0) | 2025.02.01 |
新年(신년) / 稼亭 李穀(가정 이곡) (0) | 2025.02.01 |
의고(擬古) 6수 / 신흠(申欽) (0) | 2025.02.01 |
가을 마음[秋心] 5수 / 丁若鏞 (0) | 2025.0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