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록太古錄 게 송 (偈頌)
고정(古鼎) - 용천 온장로(龍泉溫長老) 호(號)
위음왕불(威音王佛) 저 쪽, 공겁(空劫) 전부터
무쇠처럼 단단한 어떤 것이 있었네
입을 벌렸으나 묵묵히 말이 없어
세 아승지겁 걸릴 행을 이미 마쳤네
온몸을 불구덩이 속에 던져버리니
뱃속에는 만난 음식, 그 향기 방에 가득하네
무심히 다리를 옮김에 싸늘하더니
배와 창자 기울여 선열(禪悅)을 토해낸다
납승들은 여기서 잔뜩 배부르니
부처님의 자손들은 지금도 끊김 없다
절암(節庵) - 하무시자(霞霧侍者)
하산(霞山)의 언덕에서 늙은 그대
눈 서리 모르면서 서리와 눈을 지냈네
달이 뜨면 달 그림자 쫒고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맡겨두네
소슬한 바람소리 가장 가까운데
좋은 소식 듣더라도 누설하지 말아라
맑고 빈 그림자 속을 잠깐 스쳐가려거든
그 가운데 아무 것도 없음을 알아차리라
모든 것 놓아버리고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
무엇 때문에 금가루를 눈에 넣으랴
안다 모른다는 생각을 두지 않아야
비로소 좋은 시절 보게 되리라
덕산(德山)의 방망이를 꺽어버리고
임제(臨濟)의 할[喝]을 부숴버려서
어디 가나 누구에게도 속지 않으면
그때서야 바람과 달을 마주하리라
바람만 있고 달이 없으면 좋은 광명이 없고
달만 있고 바람 없으면 좋은 설법 없으리라
좋은 바람도 있고 좋은 달도 있거니
내 집의 법(法)놀이 끊이지 않네
철우(鐵牛)
계묘년 봄에 종서당(宗西堂)이 나를 찾아 가지산(迦智山)으로 와서 여름 안거를 지냈는데 그의 행동을 보니 치밀하고 조용하여 도를 받을 만한 자질임이 분명하였다. 가을이 되어 하직을 고하면서 호(號)를 구하기에 '철우(鐵牛)'라 하라 하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젓번 해제(解制) 때, 대중에게 날마다 하는 공부를 물었더니 서당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전에는 부처의 소리와 부처의 모양을 알고자 힘썼지만 이 회중에 와서 본분의 가르침을 받은 뒤로는 전에 했던 공부가 모두 없어졌습니다. 다만 냉정하게 조주스님의 무(無)자를 참구할 때에는 마치 모기가 쇠로 만든 소를 무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 말을 따다가 호를 짓고, 다음의 게송을 지어 주고는 "철우를 호되게 채찍질해서 땀을 내게 하면 곧 조주스님과 만나게 될 것이다. 열심히 하여라"라고 하였다.
그저 어리석고 완고하여 뒤를 돌아보지 않는구나
아무 것도 모르니 어찌 사자의 외침을 두려워하랴
자지 않고 자면서 천지 사이에 편히 누웠으니
모래 같은 대천세계에 가거나 머무르지 않는다
몇 번이나 봄을 지내고 가을을 지냈지만
여여(如如)한 그 바탕은 고금이 없다
활활 타는 겁화(劫火)도 그것은 불사르지 못하나니
꽃다운 풀을 틔우는 빗발에 그 뿔은 어렴풋하구나
어둔하고 뒤뚱대는 이 소걸음을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이 세상에 아무도 그를 끌고 가지 못한다
가엾다, 소 치는 이는 고삐를 놓쳤거니
어떻게 할 수 없은 지 이미 오래 되었다
나는 지금 소 치는 이에게 권하노니
갈 때는 빨리 타고 뼈가 저리도록 채찍질하라
뼈가 저리도록 땀내고 피를 내면
가주(嘉州)의 큰 석상(石像)이*이 와서 구원을 청하리라
구원할 수 없어도 어찌할 수 없는데
한산(寒山)은 손뼉치며 크게 웃나니
그때 부디 종사를 찾아보면
결정코 고삐를 잡고 한가히 태평가를 부르리
----------------------------------------------
* 가주(嘉州)의 큰 석상(石像) : 당(唐)나라 현종(玄宗)황제 때, 사문(沙門) 해통(海通)이 가주의 대강(大江)에 높이 18장(丈)되는 미륵불의 석상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