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한 지도자 vs 유능한 지도자
좋은 시절의 지도자는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능력이 과대평가된다. 하지만 과대평가되었던 능력이 위기가 닥쳤을 때에는 여실히 드러나기 마련이다. 지도자의 리더십은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지도자의 리더십은 위기에서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서 서있기 때문이다.
솔선수범하는 지도자
지도자가 되기도 힘들지만 지도자 자리를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 대중들은 지도자의 능력만 보기 때문이다. 역사상 위대한 왕 알렉산드로스는 뛰어난 전술가였지만 전투 중에는 먼저 솔선수범해서 앞장서서 나가 부하들의 신임을 받았다.
알렉산드로스 왕의 유명한 전투 중에 하나가 이수스 전투다. 기원전 336년 알렉산드로스는 부왕 필리포스가 죽자 20세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젊고 패기가 넘쳤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내정을 안정시키고 3만5000명의 군사와 전함 160척을 이끌고 정복 전쟁에 나섰다.
당시 강력한 병사를 보유한 페르시아는, 지중해는 물론 인도 서부까지 점령하고 있었다.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 3세는 알렉산드로스 군대를 봉쇄하기 위해 60만 군사를 끌어모았다.
두 군대는 안타키아 부근의 이수스에서 맞붙었다.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 군대의 경계가 허술한 곳을 공격해 적의 야영지를 점령했다. 막대한 병사와 전차를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 군대는 전멸하고 마케도니아인들은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다리우스의 야영지를 점령하여 피신에 성공한 다리우스만 제외하고는 왕족을 포로로 삼았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이수스 전투에서 승리한 후 남으로 내려가 정복 전쟁을 계속했다.
알트도르퍼의 <이수스 전투>는 전투가 최고조였을 때의 장면을 포착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미술 역사상 가장 장엄한 장면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 작품에서 오른쪽 하늘에는 지는 해, 왼쪽 하늘에는 달이 떠오르고 있는데 신화에 나오는 장엄한 분위기를 창조하기 위해 해와 달을 동시에 화면에 그려넣었다. 지는 해와 달 사이 구름이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비스듬히 매달린 대형 패널에 이 장면에 대한 설명문이 걸려있다.
라틴어로 된 설명문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다리우스를 격퇴하다. 10만명의 페르시아 보병과 1만기의 기병이 전사하다. 다리우스는 1000기에 불과한 기병과 함께 도망쳤으나 그의 어머니, 아내, 자식이 모두 포로로 붙잡혔다”고 쓰여있다. 그 외에도 이 작품의 곳곳에 군단의 이름을 나타내는 설명이 붙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패널 아래 고리와 줄이 화면에서 정확하게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가리키고 있다.
화면 전면에 병사들은 창과 칼을 휘두르며 전투를 계속하고 있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다리우스를 생포하기 위해 세 마리의 백마가 이끄는 황금마차를 타고 있다. 공포에 사로잡힌 다리우스는 뒤를 돌아보면 전차를 타고 도망가고 있고 그 옆에는 공포에 질려 도망가는 다리우스의 여자 수행원들과 죽은 페르시아 군인들이 널려있다.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1480~1538)는 고대 전투나 페르시아 양식에 대해 알지 못해 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자신이 잘 아는 알프스나 도나우강 유역의 자연 풍경을 토대로 그릴 수밖에 없었다.
고대의 역사와 후대의 풍경이 어울려있는 이 작품은 기병대, 갑옷, 구름, 창을 든 병사 등 전투 장면이 사실적으로 그려졌지만 공상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이수스 전투> 1529년, 패널에 유채, 158×120, 뮌헨 알테 피나코텍 소장
위험을 먼저 피하는 무능한 지도자
위기가 닥쳤을 때에는 그 어느 때보다 지도자의 빠르고 정확한 판단과 그에 따른 용기가 필요하다. 지도자의 무능력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한 사건을 그린 작품이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이다. 이 작품은 1816년 7월2일에 일어난 실제 사건을 재현했다.
1816년 망명 귀족 출신인 뒤루아 드 쇼마레가 지휘하던 왕실 해군 소속 메두사호가 서아프리카 세네갈로 항해하던 중 풍랑을 만나 배가 난파되었다. 하지만 구명보트가 얼마 없어 승선자 149명은 뗏목에 타야만 했다. 그러나 뗏목에 연결된 보트에 타고 있던 선장은 자신의 안전만 생각해 뗏목과 연결된 밧줄을 끊고 도망갔다.
149명의 사람들은 뗏목에 의지한 채 세네갈 해안에서 굶주림과 공포에 떨다가 12일 만에 아르고스 함대에 발견되어 15명만이 극적으로 구조되었다. 생존자 중 프랑스로 돌아온 코레아르와 사비니라는 두 명의 생존자가 난파 당시 상황을 글로 발표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생존자들의 따르면 난파된 지 이틀 만에 폭동이 일어났고 셋째 날에는 배고픔에 죽은 동료의 시체를 먹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정부는 무능한 뒤루아 드 쇼마레를 메두사호의 책임자로 위임한 사실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 작품에서 파도는 금방 뗏목을 덮치려고 넘실대고 있고 하늘에는 잔뜩 먹구름이 끼어있으며 바람은 뗏목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난파당한 사람들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는데, 그림 왼쪽에 수염을 기른 생존자는 아들의 시체 옆에서 절망에 빠진 표정으로 앉아있고, 뗏목 중앙에는 무릎을 꿇고 사람이 손을 흔들고 있으며, 화면 오른쪽 한 남자가 큰 통 위에 올라가 수평선 너머 배를 발견하고는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천을 흔들고 있다. 생존자들이 천을 흔들고 있는 방향에 있는 작은 배는 뗏목을 구조하기 위한 배를 상징한다.
돛대 근처에서 바다를 향해 손을 들고 있는 남자와 옆에 있는 사람이 두 명의 생존자 코레아드와 사비니다. 구조의 순간, 즉 희망의 순간을 표현하고 있는 이 작품은 죽음을 통해 진정한 절망과 고통을 보여주고 있다.
테오도르 제리코(1791~1824)는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 사건을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 두 명의 생존자들을 만나 당시 상황을 전해 듣고 실물과 같은 거대한 뗏목을 만들었다. 또한 그는 죽은 사람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지역의 병원 시체실에서 시신을 연구하기까지 했다.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
[출처] 무능한 지도자 vs 유능한 지도자|작성자 새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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