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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작법/현대시조 쓰기 10계명

淸潭 2020. 2. 6. 13:16

시조 작법/현대시조 쓰기 10계명

 

 

시조의 형태

시조의 형태(혹은 형식)는 단형시조(평시조), 중형시조(엇시조), 장형시조(사설시조), 양장시조(2장시조), 옴니버스시조(시조의 각종 형식을 아우른 混作 연형시조), 동시조(童時調) 등 여섯 종류가 있다. 또한 시조의 내용면에서는 서정시조, 서사시조, 교훈시조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가. 평시조의 형태


평시조는 시조의 중심이 되는 형식으로서 3장 6구 12음보로 구성된 시형식이다.
시조는 어느 종류를 막론하고 초장, 중장, 종장 3장의 형식미학을 갖추고 있다. 평시조(단형시조)는 각 장이 2구 4음보의 율격을 갖추며 종장 첫 구가 1음보 3음절로 고정된 삼장시(三章詩 혹은 삼행시)이다. 평시조의 특성은 간결한 형식미와 단시로서의 서정미학을 구현해내는데 있다고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시조라고 하면 평시조를 가리키며 과거 학자들은 그 형식을 3장 6구 45자 내외로 규정하고, 이에서 몇 자를 가감할 수 있는 신축성 있는 형식이라 하였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첫 어절) (둘째 어절) (세째 어절) (네째 어절)
      3              4             3                  4
         (첫째 구)                   (둘째 구)
             7                                7
                          (초 장)

                             14


 산천은     의구하되      인재는     간데 없네
(첫 어절) (둘째 어절) (세째 어절) (네째 어절)
       3             4               3               4
         (세째 구)                   (네째 구)
               7                              7
                         (중장)
                            14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첫어절) (둘째 어절) (세째 어절) (네째 어절)
      3             5               4               3
       (다섯째 구)                (여섯째 구)
               8                              7
                         (종장)
                            15

-길재(吉再)의 시조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3         4            4             4

소치는 아해들은 상기 아니 일었느냐
    3        4                4          4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
     3             5               4           3

-남구만(南九萬)의 시조

예문으로 든 길재(吉再·1353~1419)의 시조 ‘오백년 도읍지…’와 남구만((南九萬·1629~1711)의 시조 ‘동창이 밝았느냐…’는 이른바 ‘교과서적 평시조의 형태’를 오롯하게 갖추고 있는 작품이다.

한 잔 술 등불 아래 못 달랠 건 정일레라
세월이란 풀섶 속에 팔베개로 지쳐 누운
당신은 귀뚜리던가 내 가슴에 울어 쌓네.

- 정완영의 ‘가을 아내’ 부분

문갑에 쌓인 고요 닦으면 날이 서고
청댓잎 어른대다 달의 몸을 찌를 때면
병풍 속 잠자던 수탉 홰 울음을 울었다.

- 이상범의 ‘民話 그리고 民畵’ 부분

저 강에 가라앉은 울창한 대나무 숲
단단한 마디처럼 상처가 새겨지고
따숩던 마을 언저리 침몰한다 노을이…

- 장수현의 ‘강, 침몰하는 노을’ 부분

정완영의 ‘가을 아내’나 이상범의 ‘민화 그리고 민화’, 장수현의 ‘강, 침몰하는 노을’ 역시 평시조의 전통적 율격을 한 치 오차도 없이 고스란히 담아낸 단아(端雅)한 시조 작품이다.

시골집 아랫목에 상전으로 자리했지
찐득한 진을 모아 속으로만 삭혔는데
정겹고 구수한 나를 왜 모르고 싫어할까.

- 천숙녀의 ‘청국장’

천숙녀의 ‘청국장’도 초장, 중장, 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3장 시조이다. 유머감각이 넘치는 이 작품은 투박한 뚝배기에 담긴 청국장처럼 정겹고 구수한 작자의 ‘멋’이 곁들어 있는 평시조이다.

담벽 틈 비집는 대한 무렵 바람소리
겨울도 몸져눕고, 동장군도 물러서면
모퉁이 휭 하고 돌아 저벅저벅 오실 봄.

- 하정화의 ‘봄 마중’

시조는 쉽게 쓰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문학적 깊이와 무게를 실어야 하는 것이다. 시의 행간에 작자가 체험한 인생의 무게, 삶의 철학을 담아내야 한다는 말이다. 하정화의 ‘봄 마중’은 많은 이야기를 압축한 작품이다. 특히 종장 <저벅저벅 오실 봄>은 젖은 신발을 끌고 오는 봄비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단아한 평시조다 .

풍지에 바람 일고 구들은 얼음이다
조그만 책상 하나 무릎 앞에 놓아 두고
그 위엔 한 두 숭어리 피어나는 수선화

투술한 전복 껍질 발 달아 등에 대고
따뜻한 볕을 지고 누어 있는 해협 수선
서리고 잠 들던 잎도 굽이굽이 펴이네

등에 비친 모양 더우기 연연하다
웃으며 수줍은 듯 고개 숙인 숭이숭이
하얀 장지문 위에 그리나니 수묵화를

- 이병기의 ‘수선화’

‘수선화’의 세째 수 종장을 눈여겨 보기 바란다. 이른바 시조의 ‘생명’이라고 불리는 종장 첫 어절이 석 자(3)가 아니라 두 자(2)로 마무리돼 있다.

‘다만 한근심은 상대부(桑大夫) 드르라’ ‘어부 생애는 어렁구리 디낼로다’ ‘님이 보신 후제야 노가디다 엇더리’ ‘님아 님아 온 놈이 온 말을 하여도 님이 짐작 하쇼셔’ ‘구월산중 춘초록이요 오경누하에 석양홍인가 하노라’ 등 이런 예는 고시조 작품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거니와 실제 시조를 창작하고 있거나, 관련 학문을 연구하고 있는 일부 시인 및 학자들이 강조하는 ‘종장 첫 어절의 석 자 불문율(不文律)’ 주장은 다소 무리가 따르는 것이다. 나무는 알되 숲은 모르는 소치라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가람 선생의 ‘수선화’ 세째 수를 시조가 아니라고 치부해버리는 일은 시조 가락을 이해하는 온당한 태도가 못된다. 흔히 서양 사람들은 수치 개념을 얘기할 때 ‘한 자’면 ‘한 자’, ‘두 자’면 ‘두 자’ 자로 잰 듯이 엄격성을 띄고 있는 반면, 우리의 수치 개념은 ‘두서너 자’ ‘서너 자’ ‘너댓 자’식으로 융통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조의 경우 한 자가 넘쳐도 좋고 한 자가 부족해도 허용되는 것이다. 한시(漢詩)의 율격처럼 평측(平仄)ㆍ각운(각운)을 철저하게 지키는 게 아니라 시조는 융통성을 지닌 우리 민족성처럼 엄격한 자수보다는 운율(韻律)과 가락, 내재율을 중히 여기고 있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종장 첫 어절의 ‘석 자 규칙’이 무너졌을 경우 자유시와 시조의 변별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말이다. 세계에서 유일한 형식 장치인 시조의 개성을 고수하고, 나아가 3ㆍ5ㆍ4ㆍ3이라는 절묘한 가락을 지키자는 것이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조시인들의 공통적 견해이자 묵계(黙契)인 셈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신인’으로 데뷔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조의 형태를 잘 체득해야 한다. 시조의 정격(正格)이 몸에 배도록 혹독한 단련과 고도의 트레이닝 과정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적어도 문단 데뷔 4~5년차까지는 철저하게 정형을 지키고 종장 첫 어절의 석자를 고수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이다.

이러한 시조의 형식상 특징을 일컬어 가람 이병기(李秉岐)는 ‘정형시(整形詩)’라고 규정하였고, 노산 이은상(李殷相)은 ‘정형이비정형 시(定型而非定型 詩)이며, 비정형이정형(非定型而定型)의 시형(詩形)’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잘 정형(定型)된 시형이라든가, 정형시(定型詩)이면서 정형시가 아니며 정형시가 아닌듯 하면서도 정형을 갖춘 시라고 한 그 배경에는 자수율(字數律)을 기준으로 삼은 주장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지침은 창작을 부당하게 구속하게 만든다"고 하였듯이,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평시조의 형식규정은 맹점이 많은 것이다. 1930년 도남 조윤제 박사가 평시조 2천7백59수를 표본조사한 결과 초장 율격이 3·4·4(3)·4와 일치하는 작품은 47%(1천2백98수), 중장 40.6%(1천1백21수), 종장이 3·5·4·3과 맞아떨어진 작품은 21.1%(7백89수)로 나타났다. 이것을 확률론의 공식에 따라 계산하면 초·중·종이 평시조의 정형과 일치하는 작품은 고작 4%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도출해낸 것이다.


조동일 서울대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전체의 4% 정도에 해당하는 것을 정형으로 삼는다면 평시조는 그 실상과는 사뭇 다르게 이해되고, 시조 창작의 방향도 왜곡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제 평시조는 자수율보다는 내재율(리듬)을 중시해야 한다.

참고로 "평시조 변형"의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모처럼
지는 꽃 손에 받아
사방을 두루 둘러본다.

지척엔
아무리 봐도
놓아 줄 손이 없어

그 문전
닿기도 전에
이 꽃잎 다 시들겠다.

- 김상옥의 "그 門前"

마루가 햇빛에 쪼여 찌익찍 소리를 낸다. 책상과 걸상과 화병, 그밖에 다른 세간들도 다 숨을 쉰다. 그리고 주인은 혼자 빈 궤짝처럼 따로 떨어져 앉아 있다.

- 김상옥의 "빈 궤짝"


목숨을 끊은 양 누워 슬픔을 새김질해도
내 귀엔 피 닳는 소리 살 삭이는 소리
산, 너는 죽어서 사는 너무도 큰 목숨이다.

그 황토흙 무덤을 파고 슬픔을 매장하고 싶다
다시는 울지 않게 천의 현을 다 울리고 싶다
풀 나무 그것들에게도 울음일랑 앗고 싶다.

어느 비바람이 와서 또 너를 흔드는가
뿌리처럼 해도 누더기처럼 덮여오는 세월
깊은 잠 가위눌린 듯이 산은 외치지도 못한다.

-이근배의 "내가 왜 산을 노래하는가에 대하여"

깊은 암벽 두드리자 숨은 모닥불 일어서고

날 선 돌작살에 끌려 온 선사의 바다

겨울밤
내 꿈하늘 가른다
우우우우 고래떼

- 송선영의 "겨울 암각화 - 반구대"

여기서 김상옥 선생의 ‘그 문전"이나 ’빈 궤짝‘, 그리고 이근배 선생의 ‘내가 왜 산을 노래하는가에 대하여", 송선영 선생의 ’겨울 암각화 - 반구대‘를 주의 깊게 살펴보기 바란다. 이들 작품을 편의상 ’평시조 변형"이라고 가정했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평시조 변형"이란 말은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고쳐 말하면 이들 작품이 ’교과서적 평시조 형태"에서 약간 벗어나 있을 뿐이지 ‘넓은 의미의 시조 개념"으로 보면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시조의 정형 규칙에 의한 자수개념으로 따지면 그 정격에서 한 두자 넘치거나 모자라는 것, 혹은 율격이 약간 흐트러진 점뿐이지 ’평시조 변형"이라고 규정 짓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굳이 ‘평시조 변형"이라고 구분한 것은 ’교과서적 평시조"와의 변별성을 살피고 그 장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뿐이다.


김상옥 선생의 ‘빈 궤짝"을 다시 보자.
<마루가 햇빛에 쪼여/ 찌익찍 소리를 낸다// 책상과 걸상과 화병,/ 그밖에 다른 세간들도 다 쉼을 쉰다// 그리고 주인은 혼자/ 빈 궤짝처럼 따로 떨어져 앉아 있다.>
빗금 하나(/)는 구와 구의 구분으로, 빗금 두개(//)는 장과 장의 구분으로 구획 지어 읽으면 이 단형 시조의 이미지는 훨씬 더 선명하게 다가올 것이며, 시조의 가락 또한 낭창거리는 리듬을 탈 것이다. 이처럼 시조는 융통성이 많은 자유로운 시인 것이다. 음수율이나 음보율만 가지고서는 도저히 그 율격을 잴 수 없는 정형시인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 민족의 공동체의식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신명처럼 독특한 내재율이 살아 있는 형식 체험의 시인 것이다.

 

 

현대 시조 쓰기 10계명


1. 소녀(少女) 취향을 벗어 던져라.

너무 앳되고 여린 감성을 버리고 눈 높이를 높여라. 모든 예술 작품은 ‘지식(知識)의 열매’다. 문학은 작자의 소양, 지식, 인격 등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쏟아 넣는 지식의 산물(産物)이다.

2. 상식을 초월하라.

발상(發想)을 전환하라. 의식의 혁명→패러다임의 변화. 흔히 산문은 있되 시가 없는 경우가 있는데, 직설법(直說法)을 삼가하고 은유법(隱喩法)과 상상력(想像力)을 동원하여 ‘詩’를 담아내야 한다. 상식을 초월하는 자만이 소기의 목적을 거두리라.

3. 패기를 살려라.

‘신인’의 무기는 패기다. 덜 다듬어져도 좋으니까 하늘을 찌를 듯한 패기를 살려라. 남의 눈치를 살피지 말고 대담하게 대시하라. 기성 시조시인 작품에 과감하게 도전하라. ‘혁명’을 일으킨다는 각오가 없다면 감히 시조에 도전하지 말라.

4. 소재의 참신성. 시조의 소재는 얼마든지 널려 있다.

그러나 그 소재 가운데 상큼한 소재,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소재, 눈이 번쩍 뜨일 소재를 찾아내는 것이 ‘신인’의 사명이다. 사물을 ‘새롭게 파악하는 안목’을 가진 자만이 참신한 소재를 발굴해 낼 것이다.

5. 스케일이 웅장해야 한다.

한편의 시조를 5~6수 끌고 갈 수 있도록 스케일이 웅장하고 서사구조(敍事構造)를 갖출 수 있는 소재를 천착하라. 우렁찬 목소리가 ‘울림’의 폭도 큰 것이다.

6. 치열한 시정신(詩精神).

시조 작품은 언어의 유희(遊戱)가 아니다. 시혼(詩魂)이 깃들지 않고, 시혼이 살아있는 작품이 아니면 아예 손도 대지 말라.

7. 고정관념을 버려라.

(새 술은 새 부대에) 수평적 사고(水平的 思考)→사물을 거꾸로 보기, 뒤집어 보기, 통찰력·분석력을 가지고 거시적(巨視的) 안목과 미시적(微視的) 안목에서 사물을 들여다 보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8. 개성을 살려라.

자기 목소리, 자기 스타일을 유지하라. 독특한 개성, 톡톡 튀는 ‘문체(文體)’를 가진 자만이 이 세상에 끝까지 살아남은 문인이 될 것이다.

9. 정보(情報)를 가공(加工)하라.

신문·잡지를 열심히 읽고 그때그때 시사문제, 사회적 이슈, 사회적 모순, 비리문제 등을 시조 문맥(文脈) 속에 풀어내라. 기성 시조시인의 작품을 열심히 읽고 상대의 장점을 내 것으로 만드는 지혜를 터득하라.

10. 시조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라.

시조를 위해 미쳐야 한다. 노력 없이 목적 달성을 바란다는 것은 무위도식과 같은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시조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라. 투자한 만큼 거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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