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누라 길들이기
유유상종이라고 나무꾼 허서방과 민서방은
하고한 날 함께 어울려 산에 나무하러 가고 장에도 다니지만
서로 마주 보고 한숨 토하는 게 일이다.
두사람 모두 엄처시하라
마누라 흉보는 시간이 나무하는 시간보다 더 많은 것이다.
장에 가서 나뭇짐을 팔고 주막에서 술이라도 한잔 걸치고 나면
다리를 분질러서라도 마누라를 길들이겠다고 호기를 부리지만,
막상 집이 가까워지면 입의 술냄새를 없애기 위해
저고리 주머니에서 생마늘 한쪽을 꺼내 씹는다.
오늘도 산에서 도끼질을 하다 말고 민서방이 털썩 주저앉아
곰방대를 뽑아 물며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술 한잔 마시고 들어가 내가
여편네 고쟁이라도 벗길라치면 술냄새 난다고 걷어차면서,
하루 종일 산에서 나무하고 녹초가 되어 들어간 날은
내 바지를 내리고 자기 멋대로 하네그려."
허서방도 톱질을 하다 말고 한마디 했다.
"말도 말게.
우리 마누라는 이제 내 위에 올라타네.
하늘 같은 남편 알기를 개떡으로 보니, 이거 원."
마누라의 악다구니에 기가 질린 민서방이
어느 날 문을 걸어 잠그고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마누라가 피식 웃었지만 민서방은 죽어 버리겠다며
온종일 곡기를 끊고 이불을 덮어쓰고 누웠다.
"제가 안 먹고 배겨?"
마누라가 콧방귀를 뀌었지만 민서방은 나 오지 않았다.
민서방은 밤이 되면 저고리 주머니에 감춰 뒀던
생밤과 대추를 먹고 물을 한모금 마셨다.
이틀이 지나자 마누라가 동요하기 시작했다.
"순덕이 아빠, 문 좀 열어 보시오."
밖에서 문고리를 흔들었고,
열살 먹은 맏딸 순덕이는 울기 시작했다.
"순덕아, 엄마하고 잘살아라.
나는 간다."
모깃소리만하게 말하자 그 독한 마누라도 훌쩍거렸다.
급기야 장인, 장모도 왔다.
삼일이 지나 생밤과 대추도 떨어져
민서방이 고민하고 있던 차에 장인이 문을 뜯었다.
장인이 눈물을 흘리며
"내가 잘못 키워서 그러니 앞으로 내 딸년이 자네를 업신여기면
내가 다리를 분질러 놓겠네."
그날 이후로 민서방 마누라는 민서방을 하늘처럼 받들었다.
허서방이 민서방 말을 듣고 무릎을 치며 당장 집으로 가
안방 문을 걸어 잠그고 죽어 버리겠다며 단식을 시작했다.
하루가 지나도 허서방 마누라는 본체만체다.
허서방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아뿔싸.
너무 급하게 서두르느라 비상식량 비축하는 걸 잊어 먹은 것이다.
이틀째 저녁, 마누라가 안방 문 창호지에 손가락 구멍을 몇개 내더니
문밖에 화덕을 놓고 돼지고기를 구우며 부채로 냄새를 안방으로 보냈다.
허서방은 항복하고 나와서 미친 듯이 돼지고기를 집어 먹었다.
그날 밤, 마누라가 조몰락거리니 철없는 그것이 하늘을 보고 곧추서자
마누라는 또 여성 상위로 남편을 깔아뭉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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