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실/역사의기록

조선 3대 천재’

淸潭 2019. 1. 11. 11:20


육당·춘원·벽초…‘조선 3대 천재’의 엇갈린 운명
▷ 백 투 더 1919 에피소드 2 ‘동경삼재’/올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입니다. 3·1 독립선언은 인류가 평등하다는 가치와 세계 평화의 의미를, 피지배 민족인 조선인의 육성으로 전세계에 최초로 알린 선구적 행동이었습니다.

역사적인 해를 맞아 <한겨레>는 100년 전 오늘로 돌아가 1919년판 <한겨레>를 만들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당시에 활약했던 다양한 독립운동가들의 삶도 영상으로 담았습니다.

○··· 100년 전인 1919년. 일본 동경과 서울, 충북 괴산에서 3·1운동을 주도한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후대에 ‘동경삼재’(개화기 조선의 세 천재)로 불리게 된 이들은 육당 최남선, 벽초 홍명희, 춘원 이광수입니다.




내용은 동영상에서 확인하세요

○··· 조선인 유학생이었던 세 사람은 1906년 ‘동양의 런던’이라고 불렸던 동경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서로 책을 소개하고 잡지 기고를 하며 우애를 쌓던 이들은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뒤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듭니다. 이들은 동경에서 일어난 2·8 독립선언부터 조선의 3·1운동까지 비폭력 만세운동을 주도합니다.


 ○··· 이광수와 최남선은 각각 2·8 독립선언서와 3·1일 독립선언서를 작성했고, 홍명희는 충북 괴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죠."홍명희, 최남선 두 분은 나를 아우로 사랑하고 나도 두 분을 형으로 경모했습니다."

이광수의 회고록에서도 드러나듯 세 사람은 서로에 대한 우정이 깊었지만, 일제의 식민 통치가 고조되면서 엇갈린 선택을 합니다.







 ○··· 친일과 항일 사이, 이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해방 이후 이들은 서로의 행적에 대해 어떻게 평가했을까요? 자세한 내용은 영상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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